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경제학계에서 이 협정의 예상효과와 협상에 임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이 협정이 초래할 구조조정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대응준비 없이 무책임하게 협정 체결을 서두르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윤석원 "정부의 동북아 거점론은 환상"
윤석원 중앙대 교수는 15~16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한국국제경제학회 주최로 '개방화의 경제적 파장과 경제정책'에 관해 열리는 세미나에서 "한미 FTA는 우리에게 이득보다 실이 많은 FTA로 판단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세미나에 앞서 13일 공개된 '한미 FTA의 효과와 부작용'이라는 윤 교수의 논문에 따르는 미국의 관세율이 이미 낮은 점 등을 볼 때 한미 FTA가 우리의 대미 수출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논리는 무리한 측면이 있는 반면, 이 협정을 통해 미국의 경제, 사회 시스템이 여과 없이 국내에 들어와 적용되면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만 고착화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이어 정부가 대내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과 그러기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정부는 이해당사자들의 문제제기를 고민하기보다는 매도하면서 한미 FTA의 긍정적인 부분만 집중 홍보하는 오만함을 드러냄으로써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교수는 정부가 한미 FTA의 효과로 집중 홍보하고 있는 '소비자 후생 증대 효과'에 대해서도 멕시코의 사례를 들어 그것이 확실치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을 전후해 멕시코의 농업인구 비율이 25%(1990년대)에서 19%(2001년)로 줄어들고 옥수수의 도매가격이 지난 11년 간 197% 오른 데 비해 옥수수로 만드는 주식인 토르티아의 가격은 같은 기간에 698%나 상승했다는 것이다. FTA의 이른바 후생증대 효과에 정반대되는 이런 현상은 미국의 초국적 기업인 카길 등이 유통망을 장악한 결과라고 그는 지적했다.
아울러 윤 교수는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원산지 인정에 반대하는 게 미국의 입장인 점을 볼 때 한미 FTA는 한반도가 동북아 경제허브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는 것"이라며 "미국 기업에 동북아 거점을 제공해 이익을 향유하겠다는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김세원 "정부의 목표가 무엇인지 불분명"
또 김세원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번 세미나에서 '한국의 지역주의 전략, 그 성공조건'을 주제로 할 기조연설에서 한미 FTA 협상의 주요 분야인 농업 관련 협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농업정책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다.
미리 공개된 기조연설문에서 김세원 교수는 우리 정부가 한미 FTA를 위해 상당히 서두르는 느낌을 주고 있는 반면 정부가 이 협정의 체결을 통해 이룩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미 FTA에 관한 논의가 4~5년 전부터 대두했지만 중요 예상안건 별로 차분하게 협상전략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면서 "특히 국내 산업 구조조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둬야 할 부분이 농업이지만 한미 FTA 협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농업정책이 준비되고 있는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한 "미국 측이 일부 서비스 시장 및 농산물 시장의 개방과 같은 현안 중심으로 접근하는 데 대응해 우리나라도 미국시장 내 진출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공세적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한-아세안 FTA 및 동아시아 FTA와 관련해 "장기적인 차원에서 동아시아 자유무역지역의 설립을 취지로 하는 시장통합적 FTA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아세안과 한중일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전체의 FTA를 추진하기에 앞서 일단 동북아 지역만의 FTA 협상을 완결함으로써 전반적인 FTA 전략의 체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상조 "정부의 개방충격 이용론은 책임회피"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번 세미나에서 발표하기에 앞서 미리 공개한 '개방에 따른 대내외적 위험과 갈등의 조정방안'이라는 논문에서 "구조조정 지원과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재원 확보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한미 FTA는 장기적 기대효과를 실현하기 전에 단기적 갈등과 비용으로 좌초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김상조 교수는 한미 FTA에 따른 추가 개방의 충격은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능력을 갖추지 못한 영세 제조업과 서비스 업체에 집중될 것이며,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또 현 정부가 경제사회 질서의 내부적 개혁이 이해관계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답보 상태를 보이자 개방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함으로써 이것을 내부적 개혁 추진을 위한 동력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현 정부가 한미 FTA를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한미 FTA를 통한 글로벌 스탠더드의 수용은 상당부분 필요하고 또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가 갖는 신자유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한미 FTA는 오히려 국민경제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사회문화 영역의 공공성을 침해할 위험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미 FTA를 밀어붙이고 있는 현 정부의 태도와 관련해 "개방의 충격을 통해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일거에 돌파하려는 발상은 정부의 자기책임에 대한 회피"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김 교수는 한미 FTA는 그동안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기득권 세력의 규제완화 요구를 현실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기존 제도와 새로이 도입될 제도 간의 충돌로 인한 혼란과 법집행 체계의 미비로 인한 갈등을 조정할 정부의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미 FTA에 따른 개방의 충격은 대내적 위험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경태 "FTA 자체가 발전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
한편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이번 세미나에서 '한미 FTA의 효과와 부작용'을 주제로 발표할 논문에서 한미 FTA는 서비스 산업의 육성, 외국인 직접투자의 증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의 조성 등을 통해 성장동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한국이 경제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준비가 안 된 개방은 큰 피해를 낳을 수 있고 FTA를 통한 개방 자체가 경제발전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대외개방과 함께 대내개혁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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