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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 "대법원이 시민들 눈을 가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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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 "대법원이 시민들 눈을 가리려 한다"

판결문에 강한 문제제기…"후대에 남겨 책임 물을 것"

7일 대법원으로부터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터널 공사에 대한 판결문을 받아본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일 대법원의 보도자료를 토대로 한 언론보도와 판결문이 큰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판결문에는 2005년 민·관 환경영향공동조사 보고서가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지율 스님은 9일 천성산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했던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내린 판결문이라고 믿을 수 없다"며 "이 기록을 후대에 남겨 그 책임 소재를 다시 묻게 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율스님, 대법원 판결문에 강한 불만 제기

지율 스님은 "이른바 '도롱뇽 소송'의 원고 대리인들은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언론을 통해 도롱뇽 소송 기각에 대한 보도를 접한 지 닷새가 지나서야 판결문 전문을 받아 볼 수 있었다"며 "이미 대법원이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고 언론이 '2조 원 날린 도롱뇽 소송'이라고 하는 식의 비판보도가 나간 뒤였다"고 글을 시작했다.

지율 스님은 "마치 아무런 항거도 할 수 없던 무서운 폭풍이 지나간 후 폐허에 남은 심정으로 이 뒤늦은 판결문을 받아 읽으면서 '법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소수계급의 비밀'이라던 카프카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며 "우리가 기대했던 법은 처음부터 이 세상에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고 법원 판결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지율 스님은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생태계 보존지역, 습지 보존지역 등 10개의 법적 보존지역으로 중복 지정돼 있는 천성산에 대해서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해달라고 주장해왔고 그 결과 2005년 최초로 시추 등의 정밀조사 과정을 거쳐 6개월 간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했다"며 "그런데 민·관 양측이 실시했던 이 정밀 조사 결과에 대해서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단 한 번의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율 스님은 "대신 대법원은 3년 전인 2003년 대한지질공학회에서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와 3인의 연구원이 불과 3일 동안 천성산을 답사하며 실시했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보고서를 판결의 근거로 삼았다"며 "마치 고등법원에서 '비록 3일 간의 짧은 조사 기간과 절차상의 하자는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환경의 최고기관인 환경부에서 보내온 결정이라 번복할 수 없다'며 2심 재판을 종결시켜 버린 것과 똑같은 일이 대법원에서도 벌어진 것"이라고 개탄했다.

실제로 <프레시안>이 대법원의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지율 스님의 주장대로 2005년 새롭게 실시한 민·관 환경영향공동조사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대법원은 애초 2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대한지질공학회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만을 언급하긴 했으나 "새로운 환경영향평가에 준하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적절한 방법이 보완되었다면 더 이상 사업시행의 중지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언급해 언론은 대법원이 2005년에 실시한 민·관 환경영향공동조사 결과도 충분히 검토한 것으로 여겼었다.

지율 스님 "여성과 소수자 이익 대변하겠다던 대법관이…"

지율 스님은 이어서 "민·관 환경영향공동조사가 실시되고 있던 2005년 9월 산림청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천성산 터널 공사에 대해서 50.7%가 '수정보완 후 진행'을 원했으며 '개발계획 백지화 후 보전'도 26%나 됐다"며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왜 대법원이 10억 원 이상의 용역비를 들여 민·관 양측 전문가들이 실시한 최근의 조사 결과는 버리고 3년 전 결과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됐는지 감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율 스님은 "이 대법원의 판결은 그간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주장이 허구로 드러나고 개발의 당위성을 찾지 못하자 시민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 터널을 뚫어도 물 한 방울 새지 않는다고 했던 2003년도에 작성된 보고서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율 스님의 지적처럼 2005년도 보고서가 그 이전에 작성된 보고서와 가장 다른 점은 "터널과 지하수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민·관 양측 전문가가 동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28일 발표된 최종 보고서는 "터널 공사로 다량의 지하수가 유출되고 있다"고 밝혀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율 스님은 "판결문을 서너 차례 다시 읽으면서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영화 <투르먼쇼>의 주인공처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무대 위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며 "이 대법원의 판결문은 도롱뇽 소송의 판결문이 아니라 바로 이 시대를 진단하는 판결문으로 후대에 남겨서 '미래 세대'로 하여금 책임의 소재를 다시 묻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율 스님은 "여성과 소수자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했던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내린 판결문이라고 믿기에는 우리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주심을 맡은 김영란 대법관에 대해서도 섭섭한 심정을 토로했다.

"판결문 후대에 남겨서 '미래 세대'로 하여금 책임소재 묻게 할 것"

지율 스님은 마지막으로 "제게는 이 판결문이 시작을 알리는 무거운 종소리로 들린다"며 "우리의 눈과 발걸음으로 천성산의 역사를 지켜보고 그 기록을 후대에 남길 것"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지율 스님의 주장대로 대법원 판결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지율 스님의 주장에 대해서 대법원 관계자는 "판결문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며 "판결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뤄지는지는 전적으로 대법관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2005년 새로 실시한 민·관 환경영향공동조사 결과를 충분히 검토했지만 판단에 영향을 미칠 만큼 비중을 안 뒀다고 하더라도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은 비판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환경영향공동조사는 지율 스님의 2004~2005년 100일 단식을 계기로 실시됐으며 지하수·지질과 관련한 정밀검사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한편 지율 스님은 해당 대법원의 판결문의 원문을 천성산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했다. (판결문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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