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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체결되면 한국농업 5년 안에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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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체결되면 한국농업 5년 안에 망한다"

'원정투쟁'에 대한 워싱턴 교민들의 반응

7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정부 대표단과 미국정부 대표단 사이의 자유무역협정(FTA) 1차 본협상이 사흘째 계속됐다. 이에 대응해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 원정투쟁단'(단장 오종렬)도 닷새째 워싱턴 시내 일대에서 한미 FTA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갔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워싱턴 한인교민들의 속내는 어떨까?

워싱턴 DC, 버지니아, 조지타운 등 워싱턴 지역 전체에 거주하는 교민의 수는 18만 명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대다수는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르거나, 알아도 관심이 없거나, 원정투쟁단의 반대시위가 행여나 자신들에게 불똥을 튀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미 FTA 반대의 메시지가 좀더 분명하게 미국사회에 전달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원정투쟁단이 좀더 강력한 시위를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교민도 있다.

"왜 한국의 정부와 시민사회가 미국까지 와서 충돌하나"
▲ 원정투쟁단이 워싱턴 시내 거리에서 FTA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프레시안

워싱턴 인근 지역인 버지니아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교민 A씨는 "먹고 살기 바빠 한국과 관련된 뉴스는 잘 보지도 않는다"며 "한미 FTA가 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유명한 워터게이트 센터에서 주류 판매점을 운영하는 교민 B씨는 "원정시위대와 한국정부가 미국까지 와서 충돌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 중심가에서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교민 C씨는 "FTA와 같은 시장개방은 세계적인 추세인데 원정시위대까지 조직해 워싱턴 사회를 시끄럽게 하면 결국 그로 인한 피해는 우리 교민들이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교민 D씨는 "원정시위대가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시위를 했다면 우리 교민사회도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반대하는 시위를 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한인연합회, 워싱턴 교회협의회 등 워싱턴 지역의 32개 한인단체들은 지난달 25일 "국민 모두가 우려하는 원정시위 계획을 중단하고,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한미 FTA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해달라"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 한국일보 워싱턴 DC판 5일자. ⓒ 프레시안

이들은 성명서에서 원정투쟁단의 시위에 참여할 예정인 미국 내 한인단체들에게 "미국사회를 잘 아는 여러분이 나서서 원정시위대를 설득해야 하며, 과격하고 폭력적인 시위로 인한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 바로 여러분들이 동포사회에서 지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정투쟁단의 거리시위가 평화적이면서도 합법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자 이들을 바라보는 워싱턴 교민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워싱턴 교민들 중 다수가 구독하고 있는 <한국일보> 워싱턴 DC판은 5~6일에 연달아 원정투쟁단의 시위에 관한 소식과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톱기사로 전했다. 국내 대다수 언론들이 한미 FTA 협상단의 소식은 전하면서도 원정투쟁단의 활동에 대한 보도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한국일보> 5일자는 '원정시위 반FTA 메시지 전달'이라는 제목의 톱기사에서 "시위대는 이날 워싱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2시간가량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여 당초 우려했던 불법 폭력 사태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 다음날인 6일자 톱기사 '사회에 미치는 총체적 평가를'에서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 본부 원정투쟁단이 (…) 한미 FTA가 양국 노동자,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총체적 평가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며 원정투쟁단의 요구사항과 향후일정 등을 상세히 전했다.

한편 일부 교민들은 거리시위 현장에 나와 원정투쟁단이 시위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칼로스쌀이 안 팔리니 쌀시장 개방해도 된다고?"

[거리 인터뷰] 워싱턴 교민 제임스 송 씨

6일 원정투쟁단의 시위 현장에서 만난 제임스 송(55) 씨는 워싱턴에서 26년간 살아 왔고, 지금은 택시운전사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택시를 몰면서 미국의 관료나 정치인들을 많이 태워봤다고 한다.

송 씨는 "한미 FTA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른 것이지만 이것이 체결되면 5년 내로 한국의 농업이 망하고, 이어 나라 전체가 망할 것"이라며 "그런데도 원정투쟁단의 시위는 너무나 평화적이다"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원정투쟁단의 시위를 지켜본 소감은?

제임스 송: 원정투쟁단이 이 먼 곳까지 온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시위 방법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꽹과리를 치면서 백악관이나 무역대표부를 빙빙 돌든지, 삭발을 하든지, 더한 행동을 해서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성공적인 시위가 될 터인데, 지금 하는 것으로 봐서는 비행기 값이 아깝다.
▲ '박스차'로 불리는 미국 경찰의 호송용 차량. 박스차가 거리에 출동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원정투쟁단은 미국의 시위문화와 법질서를 최대한 존중해 준법적이고 평화적인 시위를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오늘은 경찰이 박스차(미국 경찰의 호송용 차량)까지 동원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임스 송: 한미 FTA로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미국 경찰에게 잡혀가는 것이 대수란 말인가. 평화적인 시위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강력한 시위로 한미 FTA를 저지할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프레시안: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뜻인가?

제임스 송: 나는 한미 FTA에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FTA는 하나의 큰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오랜 미국생활을 통해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 농업이, 더 나아가 한국이라는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안다.

지금 한국에서 미국산 칼로스 쌀이 저가에도 불구하고 안 팔린다고 해서 미국에 쌀 시장을 개방해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물론 정부가 주도적으로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에 칼로스 쌀을 보낸 것은 미국 정부의 쇼다. 미국의 계략이다. 상품(上品)의 쌀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밥을 지은 지 하루만 지나도 색깔이 누렇게 변질되는, 질 낮고 맛 없는 쌀을 보내서 '쌀시장을 개방해도 우리 쌀은 끄떡없더라'라는 인식을 퍼뜨리려는 것이다.
▲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유기농 쌀. ⓒ 프레시안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쌀 중에는 한국 쌀보다 훨씬 더 질이 좋은 것도 많다. 내가 질 좋은 쌀로 유명한 경기도 이천 출신이라 잘 안다. 미국의 농업기업은 일단 한미 FTA가 체결되고 나면 질 좋은 쌀로 한국시장을 서서히 공략해 들어갈 것이다.

일본의 예를 봐도 그렇다. 미국은 일본이 쌀시장을 개방한 초창기에 질 낮은 쌀을 수출해 일본인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의 질 좋은 고급 쌀들이 일본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농촌은 5년 내에 다 망할 것이다. 여기서는 시속 120km로 30시간을 달려도 계속 곡창지대가 이어진다. 여기서 생산된 값싼 유기농 농산물들을 어떻게 한국 농산물이 당해낸다고 생각할 수 있나.

프레시안: 한미 FTA와 한미 FTA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대한 워싱턴 교민사회의 반응은 어떤가.

제임스 송: 교민들 대부분은 관심이 없거나 반대하는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 대다수 교민들이 관심이 없는 이유는 이들 대부분이 세탁소, 슈퍼마켓 등 자영업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느라 한국사회는 물론 미국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도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외부사회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주일에 교회에 가는 정도인데 이곳의 목사들은 대부분 친기업, 보수 성향이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을 받아 교민들이 보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이곳 미국에 있는 한국인들도 미국을 잘 모른다. 미국은 이익이 나는 곳이 아니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공짜란 것이 없는 나라다. 장관들도 백악관에서 식사를 한 후 자기가 먹은 음식 값을 지불하는 나라다.
▲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유기농 쌀. ⓒ 프레시안

프레시안: 한국정부는 한미 FTA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제임스 송: 한미 FTA로 한국에 이익이 날지 안 날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미 FTA로 한국에 이익이 생긴다고 해도 그 이익을 가져가는 것은 소수의 기득권층뿐일 것이라는 점이다.

프레시안: 원정투쟁단이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대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제임스 송: 당연한 반대다. 미국에서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한쪽에서는 미군에게 한국을 지켜달라고 애걸복걸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온갖 과소비를 하는 한국인들이 한심해보일 수밖에 없다. 자기 나라를 제 힘으로 지키지 못하는 나라를 주권국가라고 할 수 있나. 주한미군 철수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송 씨는 인터뷰를 마친 후 원정투쟁단의 오종렬 단장에게 "당신들은 한미 FTA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비싼 비행기 값을 들여 여기까지 온 것 아니냐"며 "그런데 시위가 너무 평화스러워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오종렬 단장은 "고맙다. 국내외 언론들은 물론이고 교민들마저 우리를 '나쁜 놈'이라고 몰아붙이는 가운데 힘이 되는 소리를 해주었다. 더욱 가열차게 투쟁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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