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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는 갈리지만, 우리 모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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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는 갈리지만, 우리 모두 즐겁다"

[화제의 책] 갈레아노의 <축구, 그 빛과 그림자>

답답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일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작 그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축구공에서 떨어지지 않는 현실은 뭔가 잘못됐다. 하긴 근대 축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내내 식자층으로부터 '불신'을 받았다. 우파 지식인들이 축구를 대중의 저급한 쾌락으로 봤다면 좌파 지식인들은 축구가 대중의 혁명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는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가 1978년 월드컵에서 자국의 대표팀이 첫 경기를 하는 바로 그 시각에 '불멸(不滅)'에 관한 강연을 한 것은 이런 불신의 단연 돋보이는 예일 것이다.

그런데 라틴 아메리카의 가장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이자 지금 당장 노벨상을 받는다고 해도 전 세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이로 꼽히는 에두아르노 갈레아노가 낯 뜨거운 축구 예찬을 늘어놓았다. 그는 "좋은 경기가 펼쳐지기만 한다면, 어느 나라 혹은 어떤 클럽이든 상관없이 그 영광스런 기적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천연덕스럽게 고백하며 자신의 '축구 사랑'을 감추지 않는다. 바로 축구에 관심 있는 전 세계인들에게 축구에 관한 가장 매혹적인 에세이로 꼽히는 <축구, 그 빛과 그림자>(유왕무 옮김, 예림기획 펴냄)가 바로 그 고백서다.

'즐거움'에서 '의무'로 변해가는 축구의 서글픈 역사

애초 <축구, 그 빛과 그림자>는 2002년에 나왔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4강까지 진출하는 경이로운 성적을 올렸지만 국민들은 미처 축구에 대한 책에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나온 개정판은 원서에 있는 갈레아노의 에세이 152개에 2002년 월드컵 대회와 관련된 에세이를 덧붙여 낸 것이다. 갈레아노는 2002년 월드컵 대회에 대해서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전 경기를 통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골은 세네갈의 작품이었는데, 지칠 줄 모르는 그들의 움직임은 우리가 종종 잊고 있었던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주었다. 즉 축구는 게임이고, 게임에 임하는 선수들이 진실로 게임을 할 때 비로소 기쁨을 느끼고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 월드컵에서 우리 눈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이미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네갈의 디우프는 게임당 평균 여덟 번에 걸쳐서 갖가지 진기명기를 모두 보여주었다."

이런 세네갈 대표팀에 대한 평가는 갈레아노의 축구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에게 축구는 바로 '즐거움'이다. 그래서 그는 '즐거움'에서 '의무'로 변해 가는 축구의 역사가 서글프다. 또 기업이 '사고', '팔고', '임대'를 하다 결국 '폐기'하는 축구 선수들의 현실이 답답하다. "게임하러 가지"라고 말하던 코치 대신 "열심히 일하러 가지"라고 말하는 감독의 탄생에 씁쓸하다.

"축구의 역사는 '즐거움'에서 '의무'로 변해 가는 서글픈 여행의 역사다. 스포츠가 산업화되어감에 따라, 경기를 하면서 맛볼 수 있는 아주 단순한 기쁨의 미학을 앗아가 버렸다. 지금 이 세상에서 과연 쓸모없는 무익한 것이 어떤 것인가를 잘 규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프로 축구이다. 수익성이 없는 것이 곧 무익한 것이다."

"직접 뛰기보다는 보기 위한 축구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 흥행물은 세계에서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사업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이미 축구 경기를 조직하고 편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기를 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기 위한 것이 되었다. (…) 즐거움을 박탈하고, 환상을 쇠퇴시키고, 대담성을 금지시켜 왔다."

"축구 포메이션이 2-3-5에서 4-3-3, 4-4-3를 거쳐 5-4-1에 이르기까지 변화했다는 것은, 20세기 축구의 역사가 '대담성'으로부터 '두려움'으로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 반세기 전만 해도 0대 0, 딱 벌어진 두 개의 입처럼 득점 없이 경기가 끝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지금은 11명의 선수들이 골문에 매달린 채, 골을 막기 위해, 그리고 골을 넣을 시간도 없이 게임이 끝나 버린다."

아벨란제와 블래터의 '축구 산업'을 고발한다
▲ <축구, 그 빛과 그림자>(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유왕무 옮김, 예림기획, 2002) ⓒ프레시안

1994년 축구 산업은 약 2250억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제너럴모터스(GM)의 1993년 한 해의 매출 1360억 달러와 비교하면 축구 산업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다. 갈레아노는 축구로 하여금 '미(美)' 대신 '돈'을 갈구하게 만든 프로 축구를 증오한다. 그래서 <축구, 그 빛과 그림자>는 프로 축구의 정점에 서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군주' 아벨란제와 그의 후계자 블래터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하다.

"1974년 아벨란제는 잔꾀를 부린 끝에 FIFA를 정복했다. (…) 그는 축구의 지형학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축구를 가장 훌륭한 다국적 사업 중의 하나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 무엇보다도 그의 권력은 코카콜라나 아디다스와 같은 대기업과의 제휴로 인해 번창하고 있다. 그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움직인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그런 것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 하는 편이다."

"블래터가 집권하기 2500년 전에 선수들은 발가벗고 경기에 임했지만, 결코 몸에 광고용 문신을 하지 않았다. (…) 그러나 축구 세계의 다양성은 지금 강제적인 획일화 경향에 굴복하고 있는 중이다. 텔레비전으로 인해 축구 산업이 짭짤한 수익을 내는 대중의 스펙터클로 바뀌면서 모두가 똑같은 단일 모델이 강제된다. (…) 자신들의 특색을 잃어버린 그런 모델이 강제되는 것이다. 이런 진부함이 진보(進步)라고 가정된다. (…) 아놀드 토인비가 말했듯이 망해 가는 문명들에 보이는 가장 일관된 특징은 표준화와 획일화로의 경향이다."

갈레아노는 더 나아가 축구의 어두운 기억도 들춰낸다. 아르헨티나 독재 정권은 건재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1978년 제11회 월드컵 대회를 개최했다. 경기장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는 비행기가 멀쩡히 산 사람들을 실어다가 바다 속에 생매장을 시키고 있었다. 그 때 아벨란제는 "마침내 세계는 아르헨티나의 진실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전 세계를 상대로 선언했다.

아벨란제와 블래터의 FIFA는 축구 선수들이 자기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노력도, 또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서려는 움직임도 간과하지 않았다. FIFA는 불복종 선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갈레아노는 공식적으로는 약물 복용으로 퇴출당한 마라도나의 진짜 '죄'가 불복종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마라도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퍼부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축구에는 왜 국제노동기구(ILO)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가? 모든 예술가들은 자신이 벌이는 '쇼'의 효용성을 알고 있는 것이 정상인데, 왜 축구 선수들은 축구로 부(富)를 쌓은 다른 사람들의 비밀 계좌를 알 수 없는 것인가?"

자신의 권리도 지키지 못하게 하는데 이웃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이 용납될 리 없다. 1997년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들이 영원히 절식(節食)을 해야 할 정도로 적은 월급을 받고 있는 교사들의 권리 회복 운동에 대해 경기장에서 지지를 표명하길 원할 때 FIFA의 사주를 받은 아르헨티나축구협회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FIFA는 항만 노동자를 지지하는 문구를 셔츠에 새기는 위반 행위를 한 잉글랜드의 로비 파울러 선수에게 벌금형을 가하기도 했다.

전장을 축구장으로 만들었던, 1915년 크리스마스의 기억

이런 축구의 어두운 기억에도 불구하고 갈레아노는 축구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축구는 한창 전쟁 중이던 영국 병사들과 독일 병사들이 어디선가 날아온 공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전장을 축구장으로 바뀌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바로 1915년 1차 세계대전 때 크리스마스 때 전장에서 예고도 없이 열렸던 마술 같은 축구 경기가 바로 그랬다.

"르완다의 대량 학살 이후 축구만이 유일한 화해 수단이다. 후투족과 투치족 사람들은 여러 클럽의 팬으로 서로 섞여지고, 국가대표와 여러 팀의 선수로서 서로 어울려 함께 공을 차기 때문이다. 독일과 벨기에 같은 강대국들이 통치를 위해 차례로 그들을 분열시켜 놓기 전까지 양 부족 간에 존재했던 상호 존중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틈새를 열어놓았던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축구 사랑을 감추지 않는 갈레아노도 쑥스럽긴 했나보다. 슬쩍 자기 말고도 축구 예찬을 늘어놓은 좌파 지식인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20세기 초였던 그 당시, 축구를 '의식의 마취제'라 비난하는 대신, 오히려 축구를 찬양하는 좌파 지식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 중에서도 이탈리아의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축구를 '야외에서 행해지는 인간적 충실함의 완성본'이라고 찬양했다."

그렇다면 갈레아노가 2006년 월드컵 대회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과 또 열두 번째 선수인 우리 국민에게 주는 덕담은 무엇일까? "모든 선수들이, 최소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다가오는 월드컵에서 아무 소리도 듣지 말고 묵묵히 게임에만 열중해 주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전쟁'과 '축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점에서는 절대로 혼동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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