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렇게 정리 국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황우석 사태는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정부, 학계, 언론, 대중은 모두 자신이 황우석 씨에게 속은 '피해자'임을 자처할 뿐이다. 우리 사회 전체를 극단적인 대립과 불신의 골짜기로 몰아넣었던 사태에 대해 책임을 묻는 사람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도 없다. 10여 년 전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상처만 남긴 채 잊혔듯이 황우석 사태도 그냥 잊혀지려 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황우석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경고음을 내 온 황상익 서울대 교수(의사학)와 김환석 국민대 교수(사회학)를 통해 이번 사태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을 살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두 사람은 전공은 다르지만 모두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이자 한국생명윤리학회 회원으로서 이번 사태의 추이를 누구보다 진지하고 꽁꼼하게 지켜보아 왔다.
다음은 5월 30일 서울대 의과대학 황상익 교수 연구실과 마로니에공원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된 대담 전문.
"왜 황우석 박사가 모든 책임 뒤집어써야 하나"
프레시안 : 지난 5월 12일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돼 황우석 사태는 사실상 정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일단 검찰 수사 결과를 어떻게 봤나?
황상익 : 검찰 수사 결과는 지난 1월 발표된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결과와 대체로 일치한다. 2004년, 2005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은 날조된 것으로 드러났고, 줄기세포는 과거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현재도 그 실체가 없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됐다. 줄기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2000개 이상의 난자가 사용된 사실도 재차 확인됐다.
1번 줄기세포에 대해서 검찰은 깊이 있는 수사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서울대 등에서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처녀생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과학에서 100%는 없지만, '처녀생식'에 의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
김환석 : 검찰 수사 결과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모든 책임을 황우석 박사와 김선종 연구원에게 떠넘긴 점이다. 검찰에서는 거짓말 탐지기를 통한 결과까지 언급하면서 김 연구원이 단독으로 줄기세포를 조작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과학계에서는 황우석 박사나 다른 실험실 구성원들이 사전에 몰랐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황금박쥐'의 일원이었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박기영 전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이나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 등 황우석 사태에 큰 책임이 있는 이들이 검찰 수사 결과를 비켜간 것도 큰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강도 높은 국정조사가 진행돼야 할 텐데, 한나라당 역시 황우석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걱정이다.
"황우석 사태는 무능하고 뻔뻔한 盧정부 실상 드러낸 일"
프레시안 : 황우석 사태에서는 정부-언론-학계 더 나아가 열광한 대중까지 모두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때문에 "모두가 속았다", "다 피해자다", 이런 식으로 빨리 잊고 싶은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정부의 책임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황상익 :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하나씩 짚어보겠다. 2005년 10월 19일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생명윤리를 관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생명윤리 문제가 황우석 씨의 줄기세포 연구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겠다고 대통령이 나서서 엄포를 놓은 것이다. 이 발언은 황우석 사태 내내 사태 해결을 가로막는 장애물 역할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2005년 11월 27일에는 "<PD수첩>의 의혹 제기에 대해 황우석 박사의 진지한 해명이 있었다"고 한 데 이어, 12월 5일에는 더 나아가 "이만 덮자"고 해 진실 규명을 앞장서 막았다.
오명 전 과기부 장관은 더 나아가 "검증이 필요없다"며 황우석 박사 측에서 얘기하는 '새로운 성과를 통한 규명' 주장에 힘을 실어줬고 심지어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보건복지부가 서울대 수의과대학 기관윤리위원회(IRB)의 엉터리 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서 국민을 호도한 것은 압권이었다.
이 과정에서 박기영 전 보좌관 지시로 축소 발표가 있었던 사실도 2월 19일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의 폭로로 드러났다. 더구나 이런 사실은 복지부 장관이 수석 간사로 있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도 전혀 보고되지 않았다.
김환석 :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처신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 황우석 박사 띄우기에 앞장섰고, 진실 규명 과정에서도 장애물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 책임 있는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설사 정부 주장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다들 속았다고 하자. 그렇다면, 무능한 데 대해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만약 노 대통령이 적절한 시점에 빨리 사과를 통해 사태 해결에 나섰더라면 지난 6개월 동안의 혼란은 상당 부분 방지됐을지 모른다. 사람이 분신자살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침묵으로 일관했으니, 무능한 데다 뻔뻔하기까지 하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이러니 그 밑에 있었던 사람들이 반성 없이 활개를 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박기영 전 보좌관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순천대 교수로 복직했다. 진대제 전 장관은 여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고, 김병준 씨는 정책실장을 그만두더니 아예 부총리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데에다, 뻔뻔하기까지 한 정부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려는 것인지….
"5년 전 사회적 합의 무시…이제라도 줄기세포 연구 재검토해야"
프레시안 :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황우석 사태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재검토 과정도 없다. 일사천리로 막대한 예산이 줄기세포 연구에 투여될 계획이다.
황상익 : 일단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에 제동이 걸린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 많은 에너지를 투여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확대하려는 계획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2000~2001년 과학기술부가 주관한 생명윤리자문위원회에서는 약 1년에 걸쳐 과학·의학계, 윤리학·사회과학계, 시민사회, 종교계가 참여해 생명윤리법 초안을 마련했다. 당시 서정욱 과학기술부 장관은 위원회 출범 때 생명윤리자문위원회에서 마련된 초안을 그대로 받아 법안을 마련할 것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정작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를 잠정적으로 금지하는 초안이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박사와 일부 생명공학계의 눈치를 보면서 시간을 끌더니 결국 2003년 말 엉터리 생명윤리법이 제정됐다. 이 과정에서 황우석 박사에게 온갖 법률적 특혜가 주어진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김환석 : 당시 자문위원회의 생명윤리법안이 규제 일변도였던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의 경우에는 2~3년 '일몰제'를 뒀다. 즉 2~3년 뒤 국내외의 연구 수준을 염두에 두고 재검토하기로 했던 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당시 생명윤리자문위의 안이 아주 합리적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검증이 안 된 연구를 무작정 허용해놓고 보니 인간 난자 2000여 개 이상이 허비됐다. 이 과정에서 관리도 엉망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그렇게 많은 난자를 통해 얻은 기술적 실체가 무엇인지도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황상익 : 대개의 과학기술 연구가 그렇듯이 당연히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선행돼야 했다. 동물 복제 배아 연구도 거의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덜컥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허용해 놓았으니…. 예를 들어 복제 동물도 수많은 과학적,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지 않느냐.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서 인간배아복제 연구를 허용한 것은 처음부터 단추를 잘 못 꿴 것이었다.
이런 내용을 포함해서 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포괄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할 생각이다. 과거에 사회적 합의를 이뤘던 경험을 토대로 줄기세포 연구를 비롯한 생명공학 연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조속히 필요하다.
"과학기술 '착취'의 고리를 봐야 한다"
프레시안 : 이번에 황우석 사태를 통해 잘 드러났듯이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열광도 큰 문제다.
김환석 : 정부가 서둘러서 줄기세포 연구 육성 방안을 발표한 배경에는 그런 국민적 열광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사기로 밝혀지긴 했지만 황우석 박사를 통해서 잠시나마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보유했다'는 환상에 젖어보지 않았느냐. 바로 그런 데에 대한 열망이 계속 남아 있다.
황상익 : 황우석 박사나 연구원들이 조작극을 벌이게 된 데도 이런 국민적 열광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열광이 계속되다 보면 앞으로도 황우석 사태와 비슷한 일이 똑같이 반복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김환석 : 지금이라도 국민들은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과연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연구였는가? 이와 관련해 최근 민주노동당 한 논객의 견해는 꽤 설득력 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왜 세계에서 황우석 박사의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에 환호했을까? 왜 세계줄기세포허브에 전 세계 연구자들이 협력할 뜻을 밝혔을까? 그 이면의 이유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 줄기세포 연구의 시장 전망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초국적 생명공학 자본을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선진국 대다수 국가에서는 난자를 확보해 연구할 길이 막혀 있다. 그런데 황우석 박사와 한국 정부가 나서서 난자를 무한정 공급해 준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물론 그렇게 난자를 제공하는 여성들은 대개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약자인 빈곤 여성으로 드러났지만 말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난자를 구하는 게 여의치 않으면 이제 북한, 중국으로 난자 공급처가 확대됐을 것이다. 황우석 박사가 정동영 의장이 통일 부총리 재직 시절 북한과의 줄기세포 연구 협력을 적극 제안했던 것도 이런 사정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바로 '선진국 소재 생명공학 자본→황우석 박사→빈곤 여성(또는 북한, 중국 여성)'과 같은 과학기술 '착취'의 고리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황상익 : 예를 들어 줄기세포 연구에도 여러 가지 차원이 있다. 황우석 박사가 우위가 있다고 주장했던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배아 복제, 배반포 단계까지의 확립은 줄기세포 연구에서 가장 차원이 낮은 기술이다. 바로 여기에 사태의 핵심이 있다. '분화' 기술과 같은 수준 높은 줄기세포 연구는 선진국에서 독점하고 우리나라는 난자를 공급하는 세계줄기세포허브나 난자를 직접 다루는 수준 낮은 기술에 주력하는 것, 이게 바로 본질이다.
김환석 : 노무현 대통령이 '대표 황빠'가 돼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자극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가능하다. 흔히 신자유주의 착취가 전면화될 때 대중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정부와 자본이 흔히 하는 게 바로 대중의 '애국주의'를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적 특수성? 바로 그것 때문에 엄격한 윤리 기준 필요하다"
프레시안 : 지난 11월 본격적으로 난자 출처를 둘러싸고 문제가 제기됐을 때 국내 대다수 지식인, 언론들이 과학기술 후발국으로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시각을 제기했다.
황상익 : 그런 '현실론'이야말로 현실과 괴리가 있는 주장이다. '현실적'으로 과학기술 활동은 폐쇄돼 있지 않다. 즉 국제적으로 요구되는 법적, 윤리적 기준을 충족하지 않고는 연구 활동이 제대로 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당장 11월에 난자 출처를 둘러싼 문제가 제기됐을 때 국내 과학계가 고립 위기에 처하지 않았나?
연구원으로부터 난자 채취를 한 것을 놓고 '한국적 특수성' 운운한 것도 문제가 많다. 물론 한국적 특수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실험실 내 위계가 훨씬 더 엄격하고, 상위직과 하위직의 관계가 훨씬 더 지배-종속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실험실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이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오히려 좀 더 엄격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서양은 헬싱키 선언과 같은 강제성 없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바로 그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훨씬 더 엄격한 법적, 윤리적 지침이 요구되는 것이다. 2001년 의사윤리지침에서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제시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김환석 : 그런 주장은 박정희 시대 때 '한국적 민주주의', 이런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그런 주장은 민주주의, 인권이 서구 잣대라고 폄훼하면서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논리와 다름 없다. 실제로 '한국적 민주주의', '한국적 특수성' 이런 주장을 할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사회적 약자' 아닌가.
황상익 : 헬싱키 선언이 나온 것은 나치의 생체 실험에 대한 반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체 실험을 나치만 한 게 아니다. 일본제국주의 731 부대가 우리 선조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생체 실험은 그보다 더 끔찍했으면 했지 덜 하지 않았다. 바로 우리 선조가 그런 참혹한 경험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헬싱키 선언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환석 : 이런 주장도 있다. 선진국도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댄다고. 특히 지식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많이 내놓았다. 예를 들어 미국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연방 자금을 지원하지 않으면서도 민간 자금을 통해서는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그러니 황우석 박사를 지켜야 한다고.
진짜 사태의 핵심을 파악하는 지식인이라면 '그러니 황우석 박사를 지켜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게 아니라 아까 앞에서 얘기한 큰 그림을 그리고 대중들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 지금 초국적 생명공학 자본의 거대한 착취 사슬에 우리 정부와 과학계가 이용당하고 있다고. 예를 들어 그렇게 황우석 박사 지키기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초국적 생명공학 자본의 의학, 과학계 성과의 독점을 용인하는 현행 특허 제도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나?
(현행 과학기술 관련 특허 제도의 문제점은 최근 번역된 로리 앤드루스와 도로시 넬킨의 <인체 시장(Body Bazaar)>(김명진·김병수 옮김, 궁리 펴냄)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
"황우석 사태, 한국 지식사회 실상 드러내"
프레시안 : <녹색평론>의 김종철 발행인은 "이번 사태를 통해 국내 지식인의 바닥이 드러났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정부뿐만 아니라 지식사회, 언론계도 반성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황상익 : 과학계는 이번 사태를 통해 어느 정도 반성의 교훈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지식인, 학계 특히 인문·사회과학계는 반성은커녕 "속았다"며 정부와 마찬가지로 뻔뻔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 지식인들의 기회주의적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나 할까. 한때 황우석 박사 편에 서서 한 몫 챙겨보려던 지식인들이 지금은 안면 몰수하고 '황우석 박사 때리기'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지식인 스스로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 전반은 물론이고 지식사회에서 진지하고 생산적인 토론이 없다. 지식사회 내에서 진지한 비판이 없다 보니 잘못한 이들도 반성을 하기보다는 대중이 망각하기만을 기다린다. 20년 전에 군사정권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받아 금강산 댐의 위험을 과장했던 공학자들 중에서 누구도 반성하지 않았고, 책임 추궁도 당하지 않았듯이 이번 사태에서도 똑같은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김환석 : '누가 누구한테 돌을 던지랴', 이런 인식만 팽배하다. 정말 마음 먹고 누군가가 '그 때 그랬던 사람이…' 식으로 정리하는 작업이라도 해서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이런 모습이 계속되면 결국 지식사회에 대한 신뢰만 무너질 텐데….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왜 우리나라 지식사회에서는 진지하고 생산적인 토론이 없는가? 여전히 우리나라 지식사회, 학계가 미성숙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국내 학계는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자율적인 연구 윤리를 비롯한 내부의 규범이 확립되지 못했다.
이런 불구 상태는 국내 학계가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부에 의해 '동원'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어용 지식인'들이 득세하고 그들에 의해서 학계가 주도되면서 지식사회 내부에서 당연히 확립돼야 할 내부의 검증 시스템이나 전문가 윤리가 부재했다. 이러다보니 학계 내부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정부, 언론, 대중과 직접 대면함으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려는 지식인들이 많고 또 그런 지식인이 성장한다.
황상익 : 바로 그렇게 성장한 전형적인 인물이 황우석 박사다. 황 박사가 기를 쓰고 <네이처>, <사이언스>에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려고 했던 것도 그가 2000년대 초까지 정부, 언론, 대중의 인정을 받았는데도 정작 학계로부터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한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사이언스> 발표 전까지 황우석 박사를 학문적으로 높게 평가하지 않았던 국내 학계가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하자마자 황 박사가 '뭔가 있긴 있나 보다'라는 쪽으로 급선회했다는 것이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학계가 존재하지 않다보니 국내 학계 스스로의 평가를 스스로도 신뢰하지 않는 우스운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김환석 : 이렇게 지식사회가 불구 상태니 계속 폴리페서, 텔레페서와 같은 지식인들이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황우석 사태를 계기로 학자의 학문적 발언은 적어도 학계 내부의 검증 시스템과 전문가 윤리의 필터링을 거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더 이상 정부, 언론, 대중을 상대로 한 홍보, 선전, 선동과 같은 '언론 플레이'가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학계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정부, 언론, 대중 앞에 직접 나서려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언론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야 한다.
황상익 : 그런데 정작 그런 역할을 해야 할 언론도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하다. 황우석 사태에서 해결을 가로막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언론과 기자들이 반성은 없고, 더욱이 몇몇은 자기들이 황우석 사태 해결의 공신처럼 나서고 있는 형국이니….
"'선택'과 '집중'식 과학기술정책, 이젠 그만하자"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현재 과기부, 복지부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황우석 사태에 대한 대응을 점검해보자. 연구윤리 확립을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 생명윤리에 대한 강조가 눈에 띈다.
황상익 : 우려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앞에서 여러 차례 얘기했듯이 과기부, 복지부도 황우석 사태를 초래한 당사자들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이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앞에서 언급한 이번 사태에 책임이 큰 언론인, 지식인들이 큰 소리를 치는 것도 이렇게 과기부, 복지부가 아무런 반성 없이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와중에 그들이 개입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김환석 : 생명윤리에 대한 강조만 해도 그렇다. 앞으로 150억 원을 생명윤리 강화에 지원하겠다는데 분명히 한 몫 챙기려는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들 게 뻔하다. 이 과정에서 과연 생명공학 시대에 적절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생명윤리 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이와 관련해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가 한 사람을 딱 찍어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방식이다. 가장 전형적인 예는 구 소련 스탈린 시대의 뤼센코(Trofim D. Lysenko)를 들 수 있다. 뤼센코는 부르주아 생물학과 프롤레타리아 생물학을 구분하면서 스탈린 체제와 결탁해 당시 떠오르던 유전학을 부정하면서 관련 학자들을 숙청하는 데 앞장섰다. 따지고 보면 황우석 사태도 이런 식의 과학기술정책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황우석 사태를 겪고 나서도 또 똑같은 방식으로 하려고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생명윤리를 강화한다고 예산을 배정해놓고 정부 입맛에 맞는 몇몇 학자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다보면 결국 제대로 된 생명윤리 시스템이 구축되기보다는 정부 보기에만 '좋은' 그런 식의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다.
황상익 : 그런 식의 정책을 밀고 나가다보면 앞에서 얘기됐던 제대로 된 '공동체'가 마련될 가능성도 요원하다. 좀 더디더라도 학계에서의 토론과 검증을 통해 연구의 방향이 만들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고 또 학계, 지식사회의 '권위'도 생긴다. 하지만 정부가 딱 찍어서 돈을 쏟아 붓는 식이 되다 보면 결국 또 정부, 언론, 대중에게 영합하는 데 지식인들이 나서게 되는 상황이 될 게 뻔하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도 큰 책임 있어…위원으로서 책임 통감"
프레시안 : 두 분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위원회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김환석 : 6월 중순에 황우석 사태와 관련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최종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일단 생명윤리와 관련된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최종 보고서가 제대로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황상익 : 특히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양삼승 위원장이 황우석 박사 측의 사태 수습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져서 불명예 퇴진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도 황우석 사태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애초 구성될 때부터 이번 사태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많았는데 위원회가 제대로 구실을 하려면 그러한 잘못들이 규명되어야 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으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없느니만 못할 수 있다. 위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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