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팀이 나이지리아전에서 이길 가능성이나 16강에 오를 가능성 말고. 그건 이미 다들 하고 있으니까 재미없지. 우리가 제안하는 프덕프덕배 월드컵 토토는 좀 다른 거다.
차두리가 로봇이냐 아니냐 논쟁이 분분한 마당에 '팀의 맏형인 선수가 10만 원대의 연봉을 받고', '감독은 스텔스 전화기로 국가원수의 지령을 받아 경기를 운영하고', '경기에서 지면 아오지 탄광에서 혹사당하며', '월드컵 도중 선수들이 잠적하고, 망명까지 꿈꾸는' 북한 축구대표팀의 정체는 왜 의심의 대상이 아닌거심?
하여 다음과 같은 선택지를 제시할 테니 그들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면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분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도록 하겠다.
1) 김정일이 제작한 로봇이다.
2) 실체가 없다. 허상이다.
3) 해외 망명을 꿈꾸는 비밀결사대다.
4) 남아공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공작원 단체다.
5) 실제로 붉은 모기떼다. (*외신들이 북한 축구팀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일부 언론>, 월드컵 맞아 새 장르 개척하다
죄송하다. 경기 결과와는 달리 곧 밝혀질지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지도 미지수인 애매한 베팅을 제안해서. 그런데 사실 요즘 이 '문학적 스포츠 토토'가 트렌드다. 그 유명한 정론직필 언론인 <일부 언론>, <모 일간지>께서 '아니면 말고' 식의 야바위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 우리도 뒤처지면 안 된단 생각이 들었다.
<일부 언론>, <모 일간지>의 첫 번째 주사위는 이른바 해적방송. 이번 월드컵에서 한반도 전역에 대한 중계권을 가진 SBS가 허락한 적도 없는데 무려 휴전선 이북에서 월드컵 함성이 빵빵 터지자, 미 국무부 대변인인 크롤리 형님까지 '해적질 하지마~~'라며 뒷목 잡게 할 정도로 전 세계적 배당률이 높았다.
결과는? 아시아방송연맹(ABU)이 피파와 합의해 북한, 동티모르, 라오스 등 아시아 7개 빈곤국에 합법적으로 중계해준 거란다. '해적방송'에 안 거신 분들의 승립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이미 끝난 야바위에 사실이고 아니고가 뭐가 중요합니까? 하하.
▲ 이거 해적방송이게 아니~게? ⓒ연합뉴스 |
다음 베팅 주제도 흥미로웠다. "사라진 북한 선수들은 망명을 할까요, 안 할까요?"였다. 또 다시 <일부 언론>은 북한팀 선수 4명이 '극히 이례적으로', 브라질과의 경기 때 경기장에조차 나오지 않았다면서 '일각'을 인용해 '단체로 팀을 빠져나와 집단 망명을 한 게 아니냐'고 주사위를 던졌다.
그 <일부 언론>이 북한팀 벤치에 몇 명이나 앉아있는지 확인해보는 '극히 이례적인' 관심을 보여서…는 아니고, 피파 홈페이지에 올라온 선수 명단에 이들 4명이 불참(absent)을 의미하는 A로 표시돼 있어서였다나?
아쉽게도 요 망명 주사위는 너무 멀리 나간 관계로, 하루도 못 되어 판이 엎어졌다. 해적방송 때도 상황 정리했던 피파가 나서 "A는 인쇄상 실ㅋ수ㅋ"라며 4명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고 인증했기 때문. 게다가 피파 규정에 따르면 비주전 선수 12명이 벤치에 다 앉을 필요는 없어서 '극히 이례적인' 일도 아니란다. 에효, <일부 언론> 야바위에 애먼 피파만 '피'로'파'괴 하겠네.
'아니면 말고', 글로벌 트렌드다!
이 문학적 스포츠 토토, 이미 글로벌 트렌드가 됐다. 이제 <일부언론>보다 선진화된 <외신>들도 주사위 놀음에 가세했으니, 자자,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중국 축구 평론가는 빨래판 복근을 공개해 '인민 초콜릿 남'으로 등극한 북한팀의 지윤남이 연봉 13만 원을 받는다고 주장해 '북한선수 굶주림설'에 불을 지폈다. 이분, 비교하기 쉽게 이 연봉이 브라질의 카카가 연간 받는 5000만 유로(742억 원)의 40만분의 1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자, 여기에 거실 분? 주의할 점은 이 주장의 출처가 <외신>까진 아니고 인터넷 포털 왕이(網易)라는 점. (안정환 선수의 부인 이혜원 씨의 '성형 변천사'를 밝혀 국내에 화제가 된 바 있다지?) 그리고 비교대상인 카카의 연봉은 사실 900만 유로(158억 원)라는 거. 또 중국 상하이(上海) 엑스포 북한관 책임자가 "선수들이 평소에도 특별 수당과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고 해명한 것도 고려해서 신중한 베팅 하시길.
▲ 지윤남(사진)을 비롯한 북한 축구대표팀 '10만원 연봉설'도 이번 월드컵에서 또 하나의 화제다, ⓒ연합뉴스 |
더 흥미로운 '김정일 스텔스 전화기 개발설'은 어떠신가? 이건 북한팀 김정훈 감독이 <ESPN 닷컴>에 "김정일로부터 맨눈에는 보이지 않는 휴대전화를 통해 전술 조언을 받고 있다"고 직접 밝혔다니 배당률이 높을 것 같지만, 번역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을지 모르니 주의 또 주의하시길.
<ABC> 방송이 "김정일은 앞서 2004년에는 햄버거를 발명했다고 주장한 바 있어 스텔스 전화는 그의 최신 발명품이 되는 셈"이라고 비꽜다지만, 실제로 김정일이 2004년에 한 건 햄버거 발명 주장이 아니라 북한에 햄버거를 처음 들여오면서 '고기겹빵'이란 말을 조선말대사전에 등재한 것이라 하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옛말은 글로벌 세상에선 퇴출대상인 듯.
이밖에도 북한 선수들이 월드컵에서 성적을 제대로 못 내면 탄광에 끌려가게 된다는 '아오지 탄광설'을 비롯해 많은 놀음판이 차려져 있거나 차려질 예정이니, 어디에 걸 지는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 승이냐 패냐 무승부냐, 스코어는 어찌 되느냐 복잡한 스포츠 토토보다 훨씬 깔끔하잖아. "아니면, 말고!"니까.
▲ 하나 빠트릴 뻔 했는데 북한 응원단의 정체도 베팅 대상이다. 대부분 고용된(?) 중국 배우들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 주민들이 여행 경비가 없어서라는데, 이들에게 지급하는 돈은 어디서 나왔을까. ⓒ연합뉴스 |
(어이없어 실소만 나오는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쳐야 할 때 우리는 홍길동이 됩니다. 웃긴 걸 웃기다 말하지 못하고 '개념 없음'에 '즐'이라고 외치지 못하는 시대, '프덕프덕'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풍자 칼럼'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