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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학자 갤브레이스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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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학자 갤브레이스 타계

국내에도 잘 알려진 학자…미 민주당에 정책자문

  미국의 저명한 원로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하버드대학 명예교수가 29일 밤(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병원에서 타계했다고 가족들이 밝혔다. 향년 97세.
  
  갤브레이스 명예교수는 최근 2주째 입원해있던 매사추세츠주 미들섹스군의 군도 케임브리지에 있는 마운트 오번 병원에서 고령으로 숨을 거뒀다고 아들인 앨런 갤브레이스가 말했다. 앨런은 "아버지는 매우 훌륭하고 충만한 삶을 사셨다"고 추모했다.
  
  캐나다 출신의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갤브레이스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민주당 정권의 경제자문역으로 활동했으며,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는 인도 주재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각종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개입을 지지했던 갤브레이스 명예교수는 2차대전 후 수십년 동안 미국 행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에 참여하며 경제학자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 <풍요로운 사회(The Affluent Society)>, <대공황(The Great Crash)> 등의 저서를 집필한 갤브레이스는 그동안 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평가돼왔다.
  
  그는 1958년 내놓은 유명저서 <풍요로운 사회>에서 미국 경제는 개인적 부는 창출하고 있지만 학교와 고속도로 등 공공의 수요에는 적절히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출판사인 마던 라이브러리(Modern Library)가 1999년에 구성한 도서평가위원회는 갤브레이스의 <풍요로운 사회>를 금세기 영어로 저술된 논픽션 분야 100대 서적 중 46위로 선정했다.
  
  갤브레이스는 1975년에 하버드대학에서 은퇴한 뒤에는 자신의 저서와 같은 제목의 영국 텔레비전 시리즈 '불확실성의 시대'를 진행해 새로운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는 1998년에는 소련의 경제학자 스타니슬라프 멘쉬코프와 함께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공존: 고통스런 과거에서 더 나은 가능성으로>를 공동 집필했다.
  
  신장 2미터의 거구인 갤브레이스는 평소 신랄하고 통렬한 풍자로 미국 사회를 비판했으며, 종종 집필을 위해 버몬트 산악지역 여름별장에서 수개월간 칩거하는 등 억척스런 '일벌레'이기도 했다.
  
  그는 1908년 캐나다 온토리오주에서 태어난 뒤 1931년 캐나다 토론토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 유학가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하버드대(1934∼39년)와 프린스턴대(1939∼42년)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한때 공직에 몸담기도 했으나 1948년 하버드대로 돌아가 퇴직할 때까지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는 1946년과 2000년에 각각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메달'을 수상했고, 미국 경제학회장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캐서린 애트워터와 아들 3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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