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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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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화제의 책] <야만의 주식회사 G8을 말하다>

"얘, 거지에게 돈을 주면 못써. 영영 자립할 수 없게 되잖아."

지하철을 탈 때마다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1000원짜리 지폐라도 한 장 건네줘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바로 얼마 전에도 그런 상황에 딱 부닥쳐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어린 소녀가 구걸하는 사람에게 동전 한 개를 건네주려다가 그의 어머니에게 혼나는 것을 보았다.

'계속 구걸로 먹고 살게 되면 동냥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돈의 논리'가 소수의 부자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이 세상을 황폐화시키면서 앞세우는 논리와 똑같다면?

노암 촘스키, 수전 조지 등 세계화에 반대하는 19인의 활동가들은 <야만의 주식회사 G8을 말하다 (원제: Argument Against G8)>(시대의 창 펴냄)에서 세계의 부자 국가들이 이런 논리를 앞세워 이 세상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몰고 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보여준다.

특히 이들이 주목한 것은 미국, 영국, 일본 등 세계 8개 선진국들의 모임인 G8(Group of 8)이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전세계에 빈곤, 전쟁, 독재, 환경오염 등과 같은 문제를 바이러스처럼 퍼뜨리고 다닌다는 사실이다.

G8은 범죄집단…WTO, FTA는 범죄도구
▲ <야만의 주식회사 G8을 말하다>(노암 촘스키 등 19인 지음, 시대의 창, 2006) ⓒ프레시안

야만의 주식회사 G8을 말하다>에 따르면 G8은 자신들이 주장하듯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세계 정부'가 아니라 초국적 기업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가난한 나라들을 등쳐먹는 '야만스러운 주식회사'일 뿐이다.

이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국제무역기구(WTO) 같은 국제기구들과 도하개발아젠다(DDA),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협약들을 앞세워 자신들의 악행을 정당화한다. IMF와 세계은행이 꿔준 빚에 주권을 저당 잡힌 가난한 나라들은 빚을 갚기 위해 석유, 천연가스, 다이아몬드 등 자국의 자연자원을 내다팔아야 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돌려받는 것은 빈곤, 전쟁, 독재, 환경오염, 보건악화 등일 뿐이다.

G8은 이보다 사정이 조금 나은 개발도상국들에는 부채 대신 자유무역을 앞세운다. 이 국가들은 '자유무역'의 탈을 쓴 '불공정무역'을 강요받은 결과 실업, 농가부채, 빈부격차, 양극화 심화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은 G8을 포함한 선진국들의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칠 줄 모르고 몸집을 불려가는 초국적 자본과 이들의 하수인인 G8, 이들의 범죄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WTO, FTA 등의 본질을 꿰뚫고 이들에 직접적으로 대항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1999년 시애틀에서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WTO 각료회의를 좌초시킨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 뒤로 G8은 시위대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한적하고 이름 없는 장소에서 정상회담을 열어야 했다.

야만적인 세계화에 저항하려면?…내 마음속의 '돈의 논리'부터 무찔러야

그러나 이들을 구석으로 쫓아내는 것만으론 이들이 정교하게 구축해 놓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 책을 편집한 데이비드 밀러와 질 허버드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야 한다'는 글에서 "(현재 세계가 직면한 사회·환경 문제에 대한) 최악의 관점은 인종차별, 비만, 실업, 기근, 전쟁 등 문제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피해자에게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관점"이라고 지적했다.

즉 "가난한 나라들도 얼마든지 노력만 하면 부국이 될 수 있다'든지 '성공한 사람들의 창의성, 근면, 저축은 왜 안 알아주고 게을러서 가난해진 자의 호소에만 귀를 귀울이냐'와 같은 돈의 논리,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반세계화 운동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주빌리 2000'이란 캠페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빌리 2000은 부자 나라들과 IMF, 세계은행 등으로 하여금 가난한 나라들의 부채를 '아무런 조건 없이' 탕감해 주도록 요구하는 운동이다. '주빌리(jubilee)'는 '희년(禧年, the jubilee year)에는 너희들 가운데 가난한 자는 없을지어다'라는 구약성서 구절에서 따온 개념이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찌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크게 불찌며,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찌며" (레위기 25:8-10)

성서에 따르면 매 50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희년에는 유배를 간 사람을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고, 포로를 석방하고, 빚진 자의 채무를 탕감해주며, 집을 나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가족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는 소수에 집중된 부를 다수에게 재분배하고, 불운한 운명을 지닌 자들에게 운명을 역전할 기회를 주며,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나아가 사회적 갈등을 대폭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 희년에 '인간의 얼굴'을 회복할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주빌리 캠페인이 필요하다. 세계화라는 이름의 '범죄'를 저지르는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우리 마음 속의 적, '약자에 대한 무자비함'과 싸우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수많은 불운하고 가난한 사람들, 이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돈의 논리 속에 매몰돼 있을 때 반세계화의 구호는 공허해진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보호주의를 통해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선진국들이 어떻게 후발 개발도상국들의 보호주의를 '걷어차고' 자유무역을 강요하는지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와 통계를 통해 보여주는 <사다리 걷어차기>(장하준 지음, 부키 펴냄)를 추천한다. 세계화의 흐름을 저지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얻고 싶다면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세계화 국제포럼 지음, 필맥 펴냄)를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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