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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미국에 "주체적으로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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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 정부가 미국에 "주체적으로 매달렸다"

[한미FTA 뜯어보기 28] 드디어 열린 '첫 국회 토론회'

드디어, 뒤늦게 국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태홍 열린우리당 의원,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김효석 민주당 의원 등이 최근 결성한 '한미 FTA를 연구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24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한미 FTA 토론회'를 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국회 차원에서 마련된 최초의 공개 토론회다.

공청회 형식을 띤 이 토론회에는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등 한미 FTA를 추진하는 핵심 당사자들과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등 한미 FTA에 대한 비판적 인사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점심 식사도 거른 채 4시간 이상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미 FTA 협상이 개시된 후 지난 석 달 간 불거진 여러 가지 논란들에 대한 정부, 국회, 민간의 의견이 다양하게 개진됐다. 한미 FTA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은 특히 한미 FTA의 경제적, 비경제적 효과, 정부의 졸속추진 여부, KIEP의 자료 조작 및 은폐 의혹 등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다.

이해영 "론스타가 거둬간 차익, 한미FTA 기대소득과 맞먹어"
▲ 국회 차원에서 열린 첫 한미 FTA 토론회 ⓒ프레시안

한미 FTA를 추진하는 진영과 한미 FTA를 반대하는 진영 사이에 의견이 가장 상반된 대목은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였다.

이경태 KIEP 원장은 KIEP에서 지난 1월 발표한 연구보고서 '한미 FTA 체결의 필요성과 경제적 효과'를 인용해가며 한미 FTA을 체결하면 국내총생산(GDP)이 1.99%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GDP 1.99%라는 수치가 낮아 보이기는 하지만,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맺을 도하개발아젠다(DDA) 무역협정으로 기대되는 GDP 증가 효과가 4%대라는 점에 비추면 이는 상당히 큰 효과"라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최근 자료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KIEP의 3월 보고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 나온 'GDP 7.75% 증가 효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KIEP가 한미 FTA의 체결로 기대된다고 하는 GDP 1.99% 증가는 10년에 걸쳐 일어나는 일"이라며 "이는 GDP가 매년 고작해야 0.2%, 즉 13억5000만 달러가 증가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론스타가 한국외환은행을 인수한 2003년부터 3년 간 한국에서 매년 거둬간 차익이 15억 달러"라며 "한미 FTA를 체결하는 대신 론스타 같은 투기자본을 막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수찬 "OECD 가입 후 외환위기 일어났던 것 기억해야"

한편 한미 FTA가 발효되면 우리의 서비스 산업이 발전할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큰 시각차가 있었다.

이경태 원장은 한미 FTA의 체결로 미국의 선진 서비스 산업이 국내로 들어오면 국내 서비스 산업이 고도화될 수 있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은 "경쟁력이 약한 산업 부문의 시장을 개방하면 아예 그 산업이 죽어버리는 '경쟁 역효과' 역시 경제학의 정설"이라고 지적하며 "한미 FTA가 체결되면 국내에 진출하는 미국 서비스 업체에 국내 고용을 강제할 수 없고, 기술이전도 의무화할 수 없고, 정부조달도 정부 계획대로 할 수 없게 되는데, 어떻게 미국의 선진 서비스 기술이 국내로 들어올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정 전 비서관은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이 2.5%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의식해서인지 정부가 유독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픽업트럭에 대한 미국의 고관세가 철폐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SUV나 픽업트럭이 수출은커녕 아예 생산되지도 않는다"고 꼬집었다.

한편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은 "과거에 수입대체를 택한 중남미는 몰락했고 수출지향을 택한 동아시아는 성공했다. 이제 다시 한번 어떤 길을 선택할지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단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기 위해 금융시장의 개방을 지나치게 급속히 진행했다가 외환위기를 불러 왔다는 것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태인 "우리나라가 '주체적으로' 미국에 매달렸다"
▲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좌)과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우) ⓒ프레시안

우리 정부가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관한 논쟁도 뜨거웠다.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는 "한미 FTA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앞장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며 "미국이 한미 FTA 협상의 선결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소위 '4대 통상현안'은 한미 FTA와 상관없는 일반적인 통상현안"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이해영 교수는 "지난해 11월 미국 의회가 부시 행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4대 통상현안의 해결을 약속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문제의 서한을 공개했다. 이 서한에는 "한국의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러한 현안들을 시기적절하게 해결하겠노라고 보장했다(the South Korean Trade Minister assured us that these concerns would be addressed in a timely manner)"고 쓰여 있다.

이와 관련해 권영길 의원은 "한덕수 부총리가 지난번 대정부 질의에서 4대 통상현안과 관련된 문서 같은 것이 없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나왔다"며 "한덕수 부총리의 위증에 대해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해영 교수는 "이런 4대 통상현안들이 바로 한미 FTA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 측의 무기가 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이미 다 내줘버렸다"며 "이제 무엇을 가지고 협상을 한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김종훈 대표는 이런 이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며 "30개월령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는 안전하다는 국제기준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하기로 한 것이고, 의약가 재산정은 아직 보건복지부가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며, 우리나라가 미국산 차를 고작해야 1년에 400대 정도밖에 수입하지 않는 데 대한 미국 측의 불만이 커서 2008년까지 한시적으로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을 완화해주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스크린쿼터로 인해 1999년부터 추진했던 한미 양자투자협정(BIT)이 좌절된 역사가 있는 만큼 스크린쿼터는 사전에 해결한 것이 맞다"고 시인했다.

그러자 정태인 전 비서관은 "바로 이런 김종훈 대표의 설명이 미국의 입장과 동일하다"며 "애초부터 미국이 요구했던 것은 쇠고기와 스크린쿼터는 확실히 풀고, 자동차 배기가스와 약가 선정에는 성의를 보여달라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미 FTA는 우리나라가 주체적으로 한 것이 맞다"며 "우리나라가 '주체적'으로 미국에 매달렸다"고 꼬집었다.

한편 이해영 교수는 최근 한국 정부가 확정한 17개 협상분과가 올해 2월 미 무역대표부가 의회에 보낸 서신에 나와 있는 통상현안들의 분류와 거의 흡사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왜 한국 정부는 한국의 사정에 맞는 협상분과들을 구성하지 못하느냐"고 비판했다.

고진화 "나는 개방론자…졸속 한미 FTA엔 반대"

한국 정부가 한미 FTA를 1년 안에 체결해야 한다고 서두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졸속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거듭되면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됐다.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은 "나는 세계화주의자이자 적극적인 대외개방론자"라며 "한미 FTA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준비된 대외개방을 하느냐, 그렇지 않고 졸속으로 개방을 추진하느냐"라고 지적했다. 고 의원은 정부가 지난 2월 2일 한미 FTA 공청회가 무산됐는데도 한미 FTA 협상의 개시를 선포한 것은 행정절차법을 어긴 처사라며 정부의 독주를 막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권영길 의원 등이 발의한 '통상협정 체결절차 등에 관한 법률(통상절차법)'을 입법해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권영길 민노당 의원은 정부가 '선(先) 대책, 후(後) 협상'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해영 교수도 "정부가 협상전략이라고 내놓은 것은 '찌라시' 수준이어서 실망스럽다"며 "지난 2월 미 무역대표부가 의회에 내놓은 협상전략과 대조된다"고 말했다.

정태인 전 비서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정부가 한미 FTA를 성실히 준비해 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대외경제위원회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한미 FTA 관련 문건들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정태인 "KIEP의 자료조작은 '작은 황우석 사건'"

한편 우리 정부가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설명하는 데 참고자료로 사용하고 있는 KIEP의 보고서가 조작, 은폐됐다는 논란도 토론회를 뜨겁게 달궜다.

KIEP의 자료 조작 및 은폐 문제를 최초로 제기했던 권영길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한덕수 부총리에게 관련 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청했다"며 "그런데 KIEP에서는 해명자료만 내놓고 계량경제학자들이 분석할 수 있는 자료들은 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태인 전 비서관은 "수치가 다른 것에 대해, 직접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던 이홍식 박사는 환율 등 수치를 잘못 계산해서 그렇다고 하고, 이경태 원장은 쌀 개방 여부라는 변수를 넣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이라고 각각 다른 말을 하고 있다"며 "마치 '작은 황우석 사건'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전 비서관은 "내가 아는 한 KIEP의 박사들은 데이터를 조작할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분명히 누가 시킨 것이니 이것도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 전 비서관은 "KIEP가 사용한 모델, 탄력성 계수, 데이터 등만 공개하면 외부의 계량경제학자들이 공개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개검증은 1주일이면 끝나니, 검증을 빨리 끝내고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경태 KIEP 원장은 이런 정 전 비서관의 주장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조작, 외부의 압력, 황우석 사건 등과 같은 용어를 쓰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내가 책임을 질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KIEP 연구원들의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해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맞섰다.

권영길 "한미 FTA, 국민투표에 부쳐야"

이밖에도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과 국회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는 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특히 정부가 한미 FTA 협상과 관련된 문서들을 3년 간 일반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과 관련해, 그렇다면 한미 양국 정부 간에 이면합의나 밀실합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런 비판과 우려에 대해 김종훈 대표는 "이달 28일까지 일반 국민 및 이해단체들의 의견을 공문으로 제출받아 이를 협상에 반영할 것"이라며 "앞으로 주요 협상이 끝난 후 협상내용을 국민들에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권영길 의원은 한미 FTA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려면 "지금부터 한미 FTA에 대한 국민투표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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