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히딩크'인 줄 알았는데 '제2의 황우석'이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히딩크'인 줄 알았는데 '제2의 황우석'이네"

KAIST 학과장들, '러플린 연임' 반대…일괄 사퇴키로

"한국은 부패하고 엉터리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및 학생은 엉터리다. 한국의 정치·금융 시스템은 엉망이다."(2005년 4월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방문 中)

"KAIST를 의학, 법학, 경영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한 예비 과정 위주의 학부 중심 대학으로 개편해야 한다. 이공계 연구 중심 대학은 정치구호일 뿐이다."(〈신동아〉, 2005년 11월 中)

"한국은 이미 탈산업사회에 들어갔다. 이공계는 비전이 없다. 서비스, 금융, 의료 산업 등이 돈을 번다."(2004년 11월 과학영재고등학교 학생 및 학부모 설명회 中)

최근 KAIST 교수협의회에서 정리해 발표한 로버트 러플린 KAIST 총장이 지난 2년간 재직 중에 했던 발언들이다. 얼른 보기에도 100만 달러(약 10억 원)의 혈세를 주고 '모셔 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공계 대학의 '구원 투수'의 발언치고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지난 2년간 KAIST에서는 러플린 총장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을까?

***KAIST 20개 학과장 보직 일괄 사퇴 경고…"러플린 총장 연임 의사 철회하라"**

26일 KAIST 교수협의회에 따르면 교내 20개 학과장은 러플린 총장에게 '연임 의사를 철회해 달라'는 건의문을 보내 "27일 오전까지 (이 뜻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학과장과 전공 책임 교수 직을 일괄 사퇴하겠다"고 통보했다.

학과장들은 건의문에서 "교수의 89%가 러플린 총장의 재계약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총장 부임 후 학교 운영 철학 등의 문제에서 출발한 학교 내부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단계가 지났다"며 "총장이 스스로 재계약 의사를 포기하고 명예롭게 2년 임기를 마쳐 현재의 사태를 원만히 해결해 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교수협의회가 러플린 총장의 계약 연장을 앞두고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교수들의 89%가 '러플린 총장의 계약 연장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KAIST는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는 성명을 통해 "최소한의 자질과 리더십을 갖추지 않은 총장에게 KAIST의 개혁을 맡긴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절실히 체험했다"고 고백했다.

***기본적인 행정 능력 검증 없어…'신자유주의' KAIST와 안 맞아**

교수들이 지적하는 러플린 총장의 가장 큰 문제는 총장으로서 기본적인 자질이 없다는 것. '노벨상 수상자'라는 사실에 눈이 어두워 총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 기본적인 행정 능력에 대한 검증이 없었다는 것이다.

교수협의회는 "러플린 교수는 전형적인 물리학자로 행정 경험이 전무했다"며 "그런데 어떠한 검증도 없이 단순히 노벨상 수상자의 유치라는 실적을 올리려는 일회성 전시행정의 산물이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러플린 총장은 KAIST 총장으로서 당연히 가졌어야 할 KAIST의 존재 근거에 대한 성찰도 없었다. 우리 정부 역시 노벨상 수상자를 총장으로 영입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정작 KAIST의 존재 근거에 대해서 그와 관점을 공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것은 스스로 '신자유주의자'라고 공언하며 여윳돈이 있으면 부동산에 투자하는 그의 성향을 염두에 둘 때 처음부터 우려할 만한 일이었다.

실제로 러플린 총장은 임기 내내 정부 방침과 충돌했다. '이공계 위기'에 대한 전 사회적인 우려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혈세로 운영되는 이공계 대학의 총장이 "이공계는 비전이 없다"며 "의학, 법학, 경영 위주의 학부 중심 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고 다니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1년 6개월 중 130일 이상 해외 체류…미국 대학과 교류도 없어**

KAIST 구성원들의 불만을 부채질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러플린 총장은 2년 내내 '업무 태만'이라는 눈총을 받았다.

단적으로 2005년 한 해 동안 무려 115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이 가운데 46일은 휴가였고, 69일은 해외 출장이었다. 심지어 2004년 7월 14일 취임식 직후 바로 미국에 가 있다가 한 달 뒤인 8월 19일 부임하기도 했다. 행정적으로 가장 바쁜 연말연시마다 10일 가까이 휴가를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KAIST 측은 계약할 때 1년 중 9개월만 KAIST에 근무하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계약 기간은 그가 KAIST 총장에 선임되기 전 아태이론물리센터 소장과 포항공과대학 석좌교수로 먼저 선임돼 있었기 때문에 해당 업무를 염두에 둔 배려이지 나머지 3개월을 마음대로 운용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의 활발한 해외 활동으로 KAIST의 국제 교류가 증진됐다면 오히려 KAIST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KAIST 구성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교수협의회는 "러플린 총장은 1년 6개월 동안 130일 이상의 해외 출장에도 불구하고 어떤 미국 대학과의 교류 관계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며 "심지어 외국 석학 유치는 총장 본인 하나로 충분하다며 관심도 두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유일한 치적으로 꼽히는 정부의 지원에 대해서도 뒷말이 많다. 러플린 총장은 2005년 정부로부터 연간 200억 원씩 5년간 추가 예산 지원을 받게 된 것을 자기 공으로 돌렸으나 KAIST 구성원들은 다른 반응이다. 교수협의회는 "러플린 총장은 취임 초부터 정부로부터 받는 돈은 '나쁜 돈(Bad Money)'이라며 부정적이었다"며 "내부 구성원들은 지난한 설득 노력으로 겨우 2005년에야 나서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노벨상 받은 내 말을 감히 거역하다니…"**

러플린 총장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과 독특한 성격도 업무 수행의 장애물이었다고 지적되고 있다.

러플린 총장은 교수와 논쟁을 하다가도 수시로 "당신 노벨상 받았느냐"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노벨상 수상에 대한 자부심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난다. 러플린 총장은 2005년 11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KAIST의 발전 방향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과의 의견 차이에 대해서) 나는 KAIST의 그 누구보다 더 유명하기 때문에 내 말이 정답에 더 가깝다. 직접 '구글(Google.com)'로 내 이름을 검색해보라. 수십만 개의 문서가 나올 거다"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었다.

그의 평범하지 않은 행동도 총장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6년 2월 KAIST를 방문한 영국 런던 시티대학의 한 관계자는 KAIST의 배 모 교수에게 "지난 수 년간의 국제 활동 중 가장 경우가 없고 저질인 총장을 만났다"며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KAIST가 왜 이런 총장을 영입했는지 모르겠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시티대학의 한 교수는 "러플린 총장이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우수하며 현재도 훨씬 잘하고 있다고 발언했다"며 "한국 정부의 봉급을 받으며 KAIST의 총장으로 있는 사람이 손님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심지어 우리 일행에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영국의 대학과 협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어 모멸감을 느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는 것.

사실 이미 러플린 총장을 우리 정부에서 영입하려던 시점에도 그를 잘 아는 국내외 물리학자들은 우려를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당시에도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우리 정부가 그를 총장으로 영입한 사실을 매우 의아해하며 우려를 표명했다"고 증언했다.

***28일 재계약 가능성 높아…"'노벨상 수상자' 겉만 보고 총장 맡긴 결과"**

오는 7월 14일 2년 임기 만료를 앞둔 러플린 총장은 오는 28일 KAIST 이사회(이사장 임관)에서 계약 연장에 반대하지 않으면 임기가 자동으로 2년 연장된다. 현재 KAIST 이사회는 2월 초 이사 3명과 교수 대표 1명, 외부 인사 1명 등 모두 5명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러플린 총장의 임기 중 업적 등에 대한 평가 작업을 진행해 왔다.

교수협의회 등 KAIST 구성원들은 사실상 이사회가 러플린 총장에 대한 재계약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학과장 전원 사퇴와 같은 강도 높은 압박을 시도하고 있다. 러플린 총장에게 연임 의사 철회를 요구한 학과장들은 "총장이 스스로 재계약 의사를 포기하고 명예롭게 2년 임기를 마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입을 모으로 있다.

교수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소동은 속은 보지 못하고 '노벨상 수상자'라는 겉만 보고 KAIST 총장 자리를 맡긴 결과"라며 "겉만 보고 알맹이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황우석 사태와 다를 게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