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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 애국주의와 과학기술 만능주의가 만났을 때…"

'황빠' 현상…"'눈먼 애국주의'에 기초한 개인숭배가 본질"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누리꾼 청원 게시판에는 '강양구 기자에게 고합니다 : 강양구! 사표 쓰겠다던 당신의 약속을 지켜라'라는 3월 10일 발의된 청원이 올라와 있다. 청원을 최초로 제기한 누리꾼은 "강양구는 스너피가 진짜 복제 개라면 사표를 쓰겠다고 TV 토론에서 당당하게 말했다"며 "그의 파렴치한 기자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 게시판은 당초 목표했던 2000명을 훌쩍 넘긴 3939명이 서명에 참여해 마감 날짜 훨씬 전에 서명이 완료된 상태다.

이처럼 없었던 일까지 날조해가며 황우석 씨에게 비판적이었던 이들을 해코지하는 대중들에 대해 사회운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 간단치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눈먼 애국주의'에 기초한 개인숭배가 '황빠'의 본질"**

24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한국사회포럼 2006' 둘째 날의 발표자로 나선 시민과학센터 김환석 소장(국민대 교수·사회학)은 우선 황우석 씨 지지자들의 이질적인 성향을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환석 소장은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인터넷 매체의 성향으로 파악해 볼 때 크게 다섯 가지의 상이한 성향을 보인다"며 이른바 황우석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을 중심으로 분류하자면 △반미+친노무현(〈서프라이즈〉, 〈딴지일보〉) △반미+반노무현(자주민보), △친미+반노무현(〈인터넷 독립신문〉), △반 서울대·경기고(〈e-조은뉴스〉, 〈정치웹진 판〉) △반 기독교(〈법보신문〉) 등으로 대별이 가능하다는 것.

김환석 소장은 "황우석 교수의 지지자들은 대체로 이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며 "문제는 이렇게 이질성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황 교수 지지자들 사이에는 마치 아무 견해 차이나 갈등이 없는 것처럼 눈먼 애국주의와 황 교수에 대한 개인숭배가 이들의 판단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김환석 소장은 "'황빠'란 바로 이런 눈먼 애국주의에 기초한 황우석 개인숭배를 가리키는 말일 텐데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성찰할 줄 모르기 때문에 비이성적 집단주의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결국 '우리는 황우석을 지지하는 애국자니까 그를 괴롭히는 매국노는 폭력으로 다스려도 좋다'는 위험한 사고로 치닫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립신문〉과 〈서프라이즈〉, 과학기술 만능주의로 만나다**

김환석 소장은 "친미·반미, 친노·반노, 반서울대, 불교 등의 아주 큰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황빠'로 이들을 묶어 주는 것이 있다"며 "바로 과학기술의 발전이야말로 최고의 '애국'이고 따라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수단적 정당성은 무시하고 넘어가도 좋다고 생각하는 과학기술 만능주의야말로 이질성을 가로질러 이 모든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그 동안 과학기술은 정치적·이념적 좌·우를 막론하고 합리성의 화신이자 사회진보의 토대라고 일반적으로 간주돼 왔다"며 "지난 수십 년간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쟁점들에 대해서 좌·우 세력 및 그 안의 다양한 분파들이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표출해 왔지만 유독 과학기술에 대해서만은 이런 의견의 대립과 갈등이 거의 없었던 데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의 자본주의가 발전해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의존도가 심화될수록 과학기술이 야기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자각과 저항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며 "'황우석 사태'는 과학기술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합의에 마침내 완전한 파산선고를 내리는 일대 혁명적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 제도 정치권은 물론이고 진보 운동권 내에서도 분명한 입장 차이와 분화가 나타난 것은 그 단적인 예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족주의 과학 정책'과 '민주주의 과학정책' 중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김환석 소장은 "이제 제도 정치권이든 진보 운동권이든 본격적인 과학기술 사회가 된 이 사회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며 "특히 진보 운동권은 누구와 무엇을 위한 과학기술을 지향하는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서는 진정한 사회운동으로 거듭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우리 앞에는 '민족주의적 과학기술 정책'의 길과 '민주주의적 과학기술 정책'의 길이 있다"며 "전자가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이라면 후자는 과학기술 발전의 속도를 높이기보다는 환경친화적인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선택과 집중'보다는 균형적 과학기술 발전을 추구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연구 관리와 민주적 실험실 문화의 실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우리가 과학기술 사회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 두 가지 모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황우석 사태는 이 두 가지 모델의 갈등이 전면에 표출된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런 두 모델 사이의 갈등이 앞으로는 더욱 첨예하게 표출돼 사회적 논쟁과 정치적 의제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더 바람직한 사태 전개"라며 "이제 본격적인 '과학기술의 정치'가 사회운동의 과제로 떠올랐다"고 덧붙였다.

'한국 사회의 비이성적 집단주의, 사회운동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이 토론회에서는 김환석 교수 외에도 박상훈 후마니타스 편집주간이 발표하고 김광식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유영주 민중언론참세상 편집국장, 윤상철 한신대 교수(사회학), 임지현 한양대 교수(역사학) 등이 토론자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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