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에 있는 홍익대 부근을 지나거들랑 학교 교정에 들어가 4.19 기념탑을 한번 구경해 보십시오. 화창한 봄날 역사의 봄을 노래하는 탑 하나가 있답니다. '갓탑에 담은 역사의 빛'이라는 부제가 붙은 탑입니다. 이 탑의 정식제목은 '나영주열사 추모 홍익민주기념탑'입니다.
화창한 봄날이면 매년 젊은이들은 30년 가까이 줄기차게 민주화 투쟁을 해 왔습니다. 홍대 학생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960년 4.19민주화운동 때 목숨을 잃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나영주 님인데 이 분은 4.19에 참여한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리운 고향산천을 공산지역에 두고 자유를 찾아 사선을 넘었기에 누구보다도 자유를 갈망하고 존중했다. 그러기에 자유가 짓밟히고 민주주의가 땅에 떨어질 때 서슴없이 사월의 대열에 섰다. 독재의 총부리 앞에 쓰러져 피로써 민주주의를 찾았던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하고 존중했다.' '고향산천을 공산지역에 두고 왔기에 누구보다도 자유를 갈망했다.' 이 두 마디가 이 탑을 만드는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혁명은 자유를 갈망하는 청춘을 부릅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이 찬란한 희망으로 30여년 민주굿판을 벌였습니다. 최루탄과 돌멩이와 각목이 즐비하던 민주화운동시대에 젊음을 보냈던 나도 이제 기성세대가 되었습니다.
모교에 민주기념탑을 세우게 되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보람과 기대와 책임감으로 설레었습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전화하는 밝은 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홍익대 4.19기념탑 추진위원회가 내게 탑 제작을 다시 위촉한 것은 병실에서였습니다. 나는 암투병이 끝나는가 싶더니 또 다른 곳이 아팠습니다. 2001년 늦가을 추진위의 김현 씨는 "선배님마저 병상에 누웠다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탑 하나 더 세워야 합니다. 어서 병석에서 일어나서 4·19탑을 세워주셔야죠"라며 우스개 소리로 나를 위로했습니다.
추진위는 2002년 4·19에 완성하기를 바라고 계획을 세웠으나 건강한 몸이라 하더라도 8개월 만에 탑을 완성할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백년은 서 있어야 할 탑을 날림으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제작 기간을 1년만 더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더 벌어 놓고 병상에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흔히 한국에서 유행하는 역사기념탑은 오밸리스크식으로 기하학적 기둥을 변형한 방식이거나 아니면 인물상을 리얼리즘 양식으로 조각해서 조각대 위에 세우는 방식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서양식 근대 기념조형물을 성찰 없이 모방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계속 같은 언어로 말한다면 우리는 같은 역사를 재생산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처럼 시각언어도 모방만 한다면 한국 민주화 정신의 영혼마저 타자화 시키는 것 입니다. 한국의 역사를 기념하는 조형물 양식은 우리 문화사 안에서 근거를 찾고 싶었습니다.
내린 결론은 동아시아식 탑입니다. 동아시아 탑 전통을 따르되 법고창신(法古創新)하고 싶었습니다. 탑 지붕은 절탑식이 아니고 삿갓형으로 바꾸고 탑신은 4면을 부조로 하면서 4,5층은 투각으로 세우기로 했습니다.
산골 화실에서 만들어 본 토탑들과 집을 지은 경험들이 탑 제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탑은 건축이자 조각입니다.
4층 5층의 투각한 탑 안에서는 오색의 불빛으로 빛나는 조명을 설치했습니다. 역사의 빛을 상징하는 불빛입니다. 한국 근대사가 이어 온 역사의 빛을 5층 청동 탑에 담고 싶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식 탑면의 부조형식은 많은 내용을 담게 해주었습니다. 부조는 특히 풍부한 이야기성을 살려주는 데에 적합했습니다. 부조 양식은 회화의 자유분방한 표현의 장점과 조각의 중량감 있는 기념비성의 장점을 동시에 취할 수 있었습니다.
애초에 추진위원회가 제안한 4.19 기념탑은 다시 나의 수정제안으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통사로 다루기로 했습니다. 한국 민주화운동사의 표면사와 이면사를 모두 드러내 '보이지 않는 역사까지'역사화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갓탑 양식에는 층층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1층. 슬픔 속에서 자유를 찾다.- 민주전선에 선 학생들, 사랑도 남김 없이, 우리는 노동자, 어머니가 계신 역사.
2층. 가신님들 되살아나다.- 4.19 때 총 맞아 가신 나영주님, 5.18시민 희생자, 전태일, 김귀정, 이한열, 박종철 등 민주영령들.
3층. 보잘 것 없는 이 거룩하다.- 자기 땅에서 유배된 자, 인고의 어머니, 묶인 육신의 영혼, 별이 된 소녀가장.
4층. 소외에서 다시 깨달음을 얻다.- 혼자 노는 아이, 사면초가의 실업자, 여성성의 소외, 고독한 노인.
5층. 무왕불복(無往不復), 돌아가지 않고는 거듭나지 않는다.- 광야에서 울부짖는 늑대가족, 숲의 문명, 동양의 창, 청년 아시아의 빛.
내가 바라는 동아시아형 역사기념탑의 전범이란 무엇인가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강한 이야기성을 가진 마당적 순환성입니다. 각각의 부조는 글그림 시대 상형문 같이 여러 가지 기호와 이미지가 중층하면서 독립된 이야기 구조가 이어지며 순환하는 장편 서사구조를 가집니다. 흡사 북방 유목의 장례문화전통인 돌무덤 적석총의 조형의식입니다.
둘째,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영웅화, 초월시키는 것이 아니고 '역사라는 시간 내적 초월'로 내 안에 모시는 제사적 의미를 담은 탑입니다. 흡사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올린 밥상을 다시 받아서 음복하는 제사처럼 내안에 모심으로서 내 안의 신성을 일깨우자는 의례의 탑입니다.
셋째, 민주화투쟁에서 희생된 영혼을 저승세계 초자연과 잇고, 생과 사가 영혼으로 융합하여 하나의 탑으로 모아집니다. 흡사 부혼(부魂), 중음신처럼 죽은 자와 산 자 사이를 떠도는 영혼을 이어 주는 통혼의 세계가 탑으로 나타납니다. 현실과 초자연, 성과 속의 혼융 세계입니다.
넷째. 동아시아의 상형문화 전통을 적극적으로 계승합니다. 시서화를 하나의 모계문화전통으로 보고 상생조화로 재통합하며 새로운 구성을 합니다. 리얼리즘 따로, 기록성 서예 따로, 시적 상징성 무늬 따로따로가 아니라 크게 하나의 양식으로 통일합니다.
다섯째, 마침내 시적 승화로 거듭나는 역사의 슬픔은 지금 여기에 기쁨과 환희의 기념탑으로 모아냅니다. 갓탑은 이상하리만치 주변의 나무와도 잘 어울렸습니다. 개막식 날 살풀이춤과도 하나의 풍경처럼 어울리는 것을 보면 탑은 서로 다른 예술들 간에 숨어 있는 인연을 드러냅니다. 자연과 역사와 사람이 탑으로 모아지고 탑과 더불어 있습니다.
탑은 세간의 슬픔을 딛고 풍진 속에서 탈속을 찾는 진경을 보여줍니다. 풍진 세상을 딛고 정성을 모아 땀 흘리고 공을 들여 수행정진하며 세우는 과정 자체가 탑을 세운 결과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탑을 공들여 세워 놓고 두 손을 모으면 세간의 한과 슬픔을 기쁨과 보람으로 승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자기 거듭나기가 탑을 통해 이뤄집니다.
탑을 마무리하고 갓탑의 후기에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영주 님의 애민 애족 애국의 희생정신은 한국의 민주화 대장정에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 자주 민주 통일과 생명 평화 태극의 사상과 문화로 성숙하였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제국주의 침략과 전쟁과 냉전시대 최대의 희생자인 우리 민족 스스로 이룩한 것이기에 세계사적 의의가 크다."
전통이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도 아니고 청산되는 것도 아닌,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오래된 정원과 마득사리 어울리며 수천 년을 내려온 탑문화는 과거의 유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갓탑으로 다시 태어나 역사의 빛을 담았습니다.
홍대 교정으로 갓탑 구경 오십시오. 보시거들랑 여기 오셔서 댓글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4.19 기념주간을 맞이하여 가볼만한 순례지로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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