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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약점 모조리 공격하라"…미국업계 요구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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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의 약점 모조리 공격하라"…미국업계 요구 '봇물'

[한미FTA 뜯어보기 14] 미국서 열린 '한미FTA 공청회'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14일(현지시간) 자국 업계를 대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청회'를 열어 협정에 반영시킬 각 경제부문별 여론을 수렴했다.

이 공청회에서는 "쌀 시장도 예외가 될 수 없다"거나 "한국이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하지 않으면 한미 FTA 첫 회의를 연기하라"는 요구에서부터 "미디어·방송 분야에서 미국인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게 하라"는 요구에 이르기까지 미국 업계들의 다양한 요구와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정부가 한미 FTA 협상을 개시하기 딱 하루 전에 요식행위로 공청회를 열려다가 농민들의 반발로 공청회가 무산된 뒤에도 "공청회는 개최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공청회 무산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계속되자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필요할 경우" 6월 초로 예정된 한미 FTA 1차 본협상에 앞서 공청회를 "재차" 개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와 달리 우리 정부는 국민의 여론를 수렴하는 데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업계, 공청회에서 한국의 민감분야 모두 지적**

이날 무역대표부가 주최한 공청회에 출석한 미국 업계와 노동계 대표들은 한미 FTA 체결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도 FTA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통상 분야가 모두 전면적으로 개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농장사무국 연맹' 등 미국의 농업단체들은 한국 농민들이 한미 FTA에서 쌀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모든 농산물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못박았다.

또 이들은 한국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쌀, 옥수수, 콩 등 농산물에 대한 쿼터제, 쇠고기 등 일부 농축산물에 대한 검역 강화, 한우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금 지급 등이 모두 비관세 장벽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한미 FTA를 통해 한국의 이런 비관세 장벽들을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목장업자-목축업자 행동기금'은 한국 정부가 지난 1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면서 '30개월령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만 수입대상에 올린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전면적인 쇠고기 수입 개방이 될 때까지 한미 FTA 협상의 첫 회의를 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 내에서 또 다시 광우병이 발생했는데도 한국에 모든 미국산 쇠고기 제품을 수출하고야 말겠다는 미국 축산업자들의 결의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편 미국의 130개 기업과 업계 단체들을 대표해 공청회에 출석한 미한재계위원회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는 미디어·방송을 포함해 통신, 법률, 금융, 회계, 컴퓨터 등 모든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인에게 적용되는 제약을 철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서비스뿐 아니라 제약, 농업, 자동차, 투자, 지적재산권 등에서 예외 없는 개방과 규제 철폐를 요구했다.

이밖에 '미국 노동총연맹 산업별회의(AFL-CIO)'는 "(개성공단 노동자의) 임금이 한국의 기준에 비해 극도로 낮고,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구성하거나 노동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안다"며 "한국과 FTA를 체결하게 되면 (개성공단 제품으로 인해 미국에) 어떤 영향이 초래될지 많은 우려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할지 여부를 놓고 한국과 미국이 첨예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우리도 미국 약점 알아내 공략하자"**

이렇게 미국 업계와 노동계가 '한국이 양보하기 힘든 분야들'을 중점적으로 공략하고 나선 가운데 국내에서도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해 지금처럼 수세적인 입장만 취할 것이 아니라 보다 공세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이홍식 FTA팀장은 9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에서 발간한 〈나라경제〉 3월호에서 "미국이 주기를 꺼리는 것을 찾아 적절히 활용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받아내야 한다"라며 "미국 해운서비스업의 개방 문제와 미국이 고관세로 개방의 폭을 제한하고 있는 섬유·의류 산업에서의 관세인하 문제 등은 우리에게 좋은 카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미국이 우리의 해운서비스업 개방 요구를 받아들이면 우리나라는 미국의 연안수송을 비롯한 해운서비스 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을 거둘 수 있고, 만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재 미국의 고관세에 묶여 있는 섬유·의류에 대해 관세를 인하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며 "만일 미국이 이를 수용하면 국내 섬유·의류 업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고,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관세 인하를 꺼리면 이를 충분히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팀장은 "그동안 미국은 협상대상국이 누구든 간에 농업시장의 개방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국의 농업시장 개방에 대해선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며 "따라서 우리도 미국의 민감품목들을 찾아내 이를 협상카드로 활용하면서 공세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 미국의 이중잣대에 대한 반발로 FTA 연기**

KIEP의 이홍식 팀장이 지적한 것처럼 미국은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들에 무역자유화와 시장개방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경제적 이유에서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해 다방면으로 힘쓰고 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미국과의 FTA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미국의 이런 이중적 태도와 관련이 깊다.

아랍에미리트는 국영기업인 '두바이 포츠 월드(DPW)'가 미국 정치권과 재계의 반발에 부딪쳐 미국 항만에 대한 운영권 인수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바로 다음날인 10일 미국과의 FTA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DPW는 영국의 P&O사가 소유하고 있던 6개 미국 항만의 운영권을 인수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아랍계 국가에 미국의 주요 기간사업인 항만에 대한 운영권을 넘기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미국 내 반발에 부닥쳐 결국 인수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DPW가 미국 항만 운영권 인수를 '포기했다'기보다 '포기 당했다'고 판단하고 미국과의 FTA 체결을 연기함으로써 사실상 미국의 태도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12일에는 아랍에미리트 중앙은행의 술탄 빈 나세르 알 수와이디 총재가 "외환보유액의 10%를 달러화 자산에서 유로화 자산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DPW의 항만 운영권 인수 시도를 무산시킨 미 의회의 결정은 미국의 이중잣대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런 미국의 태도는 국제교역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한미 FTA, 미국의 경제위기를 국내로 끌어들인다**

한편으로는 미국 정부가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미 FTA의 체결이 이미 천문학적인 수치로 쌓인 쌍둥이 적자와 끝이 보이지 않는 이라크전 전비 지출로 휘청이고 있는 미국경제의 불안요소를 국내로 불러들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3일 미국 언론은 일제히 미국 의회가 이번주 중으로 정부 부채의 한도를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미국 연방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부도 위기를 맞자 아프리카 해외순방까지 취소한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은 14일 "미국 행정부가 그동안 연금과 환율안정기금(ESF) 등 동원 가능한 자금을 모두 다 끌어다 쓰는 바람에 (정부 부채가) 이번주 중 현행 재정부채 한도인 8조18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라며 "당장 재정부채 한도를 상향조정하는 법안을 이번 주 내에 통과시키라"고 의회에 촉구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1997년 말 금융위기 이후 급속하게 미국경제와 동조화 현상을 보여 온 한국경제가 한미 FTA의 체결 뒤에는 미국경제의 불안요소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고희채 연구원은 15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각국 산업별 동조화' 보고서에서 "NAFTA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3개 회원국 간 거시경제 지표의 동조화를 심화시켰다"며 "한미 FTA를 체결하면 (우리도) 멕시코처럼 미국과의 산업별 동조화의 정도가 심화되고 동조화 시차도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연구원은 기본적으로는 한미 FTA의 체결에 찬성한다면서도 "FTA에 의한 경제통합은 통합 상대국의 경제충격을 빨리 전파함으로써 통합이 없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부작용을 겪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한국에 "한미 FTA 협상문서 10년 간 비밀로" 요구**

이렇게 위태한 미국경제와의 통합을 가속화시킬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 정부는 이런 거시경제적인 요소들을 한미 FTA 협상을 반영하기는커녕 당장 국내 업계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수렴할 인력조차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한미 FTA 협상을 위한 기초자료 준비를 총괄하고 있는 재정경제부는 아직 한미 FTA 전담반조차 꾸리지 못하고 불과 4~5명의 인력으로 FTA와 관련된 국내 업무를 전담하게 하고 있다. 한미 FTA에서 가장 민감한 영역인 농업 부문을 맡고 있는 농림부에서는 자유무역협정과 소속인 8명 남짓한 인력이 한미 FTA를 비롯해 캐나다, 아세안, 멕시코, 인도 등과의 FTA 관련 업무를 모두 처리하고 있다. FTA 전문인력 33명을 갖췄다는 외교통상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각 부처는 행정자치부와 기획예산처에 증원을 요청해놓은 상태지만 실제로 언제쯤 인력이 충원될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이 130여 명에 이르는 무역대표부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한미 FTA 협상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런 수적인 열세에 대해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는 한미 FTA 1차 사전준비 협의를 마친 후 가진 브리핑에서 "일당백의 자세로 극복하겠다"며 '인력 문제엔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미 FTA 협상을 총괄하고 있는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국정조사에 대비해 (한미 FTA의) 모든 협의내용을 꼼꼼히 기록하고 문서로 남기라"는 추가적인 업무부담까지 안겼다. 한미 FTA 협의 내용에 대해 충실히 기록하라는 지시는 원칙적으로는 타당하지만, 이 주문이 FTA 협상의 전 과정을 국민과 공유하겠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후환 대비용' 차원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많다.

게다가 미국은 한미 FTA 1차 사전준비 협의에서 한국 정부에 대해 미국 정부의 '문서취급 지침'을 준용해 앞으로 10년 간 한미 FTA 협상 문서를 공개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서취급 지침에 따르면 미국은 비밀문서로 분류된 정부간 교환문서(FGI)에 대해서는 민간인은 물론 정부의 관리에게도 접근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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