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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사태로 '외국투기자본 대책' 논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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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KT&G 사태로 '외국투기자본 대책' 논의 확산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 토종자본 육성, 재벌 지배구조 개혁 우선…

한달 넘게 지속돼 온 KT&G와 칼 아이칸 측의 경영권 분쟁이 '경영권 방어장치의 재도입', '토종자본 육성론' 등 우리 사회에 새로운 논쟁거리를 낳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두 가지다. '외국계 투기자본의 공격으로부터 국내 기업들을 지키기 위해 경영권 방어장치가 필요한가'와 '외국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이른바 토종자본을 육성해야 하는가'이다. 이런 논란은 '재벌의 지배소유구조', '국내외 자본 차별' 등을 둘러싼 논란과 맞물려 우리 경제의 밑그림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15일 주총금지 가처분 신청사건 판결이 분수령**

9일 오전 대전지방법원에서는 아이칸 측이 KT&G를 상대로 제기한 주주총회 결의 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이는 지난달 23일 아이칸 측이 KT&G 이사회가 주주총회에서 '일반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사외이사'를 별도로 선임하는 의제분리안을 채택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이달 17일로 예정된 주총을 중단시켜 달라는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공판에서 아이칸 측의 법률대리인인 에버그린은 "사외이사 후보 9명 전원에 대해 집중투표제를 실시할 때 지분 33.3% 확보시 2명, 44% 이상 확보시 3명의 아이칸 측 사외이사 선임이 가능하다"며 "그러나 KT&G가 의제분리안에 따르면 44%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도 1명의 사외이사만 선임할 수 있어 아이칸 측의 주주제안권과 집중투표제에 의한 이사선임권에 침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KT&G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세정은 "KT&G는 아이칸 측이 추천한 인사 3명을 사외이사 후보 명단에 포함했으므로 이미 주주제안을 수용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대전지법의 최종판결은 오는 15일로 예정돼 있다. 대전지법이 KT&G의 이사회 결의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오는 17일 예정대로 주주총회가 개최된다. 이 경우 감사위원 사외이사는 전원 KT&G가 내세운 후보가 선임되고, 일반 사외이사는 KT&G와 아이칸 측이 각각 한 자리씩 나눠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이 아이칸 측의 손을 들어줄 경우 이사회는 일반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사외이사를 구분하지 않은 채 후보를 다시 추천해야 하고 임시 주주총회를 다시 개최해야 한다. 임시 주총이 개최될 경우 의결권 행사 기준일의 변경 등 여러가지 변수들이 작용해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KT&G "주총 후 경영권 방어대책 모색할 것"**

이에 앞서 7일 KT&G는 기자간담회를 갖고 "3주 간의 해외 기업설명회(IR)를 통해 우호지분을 파악해 본 결과 KT&G 측 우호지분은 40%, 아이칸 측 우호지분은 35%로 추산된다"며 "이는 KT&G 측의 우호지분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산하고 아이칸 측의 우호지분은 최대한 높게 잡아 계산한 결과"라고 밝히며 경영권 방어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날 KT&G의 곽영균 사장은 "아이칸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1명이 선임될 수도 있다"며 "그러나 아이칸이 추천한 사외이사의 선임을 봉쇄하기 위한 별도의 조치를 취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곽 사장은 "주주총회가 끝난 후 이사회와 함께 자사주 매각, 유상증자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경영권 방어) 대책을 검토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칸 측은 지난달 23일 KT&G에 공개서신을 보내 KT&G 주식을 주당 6만 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뒤 최근에는 우호지분의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KT&G의 최대주주인 프랭클린뮤추얼어드바이저스의 지지를 확보했고, 기관투자가 상대 투자자문 회사인 ISS와 글래스 루이스로부터 사외이사 선임에 대한 지지도 얻어냈다. 이와 동시에 아이칸 측은 KT&G 이사회에 회계장부 등 서류에 대한 열람을 요청하는 등 KT&G에 대한 압박의 수위도 늦추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 "외국계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 지나치게 완화돼"**

이렇듯 KT&G에 대한 아이칸 측의 경영권 공격이 연일 이어지면서 재계를 중심으로 1997~1998년 금융위기 당시 소멸된 '경영권 방어제도의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은 외국계 헤지펀드의 적대적 M&A 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의무공개 의무공개매수 제도, 독소조항,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 미국, 유럽 등에서 실시 중인 경영권 방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재계의 요구에 금융감독위원회는 경영권 방어책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고려하는 눈치다. 지난달 24일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의무공개매수 제도 등 적대적 M&A 방어책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며칠 후에는 김용환 금감위 감독정책2국장도 "국가기간산업이나 민영화된 공기업에 대해 의무공개매수 제도 부활 등과 같은 경영권 방어책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강철규 위원장이 "경영권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도 있지만, 기간산업이나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경영권을 외국기업이 빼앗아가려는 데 대해서는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정경제부는 경영권 방어제도를 재도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9일 정례브리핑에서 "현 단계에서 M&A 공격과 방어 수단에 대해 더 채택할 부분은 없다"고 못박았다. 한 부총리는 지난달 24일에도 "정부가 경영권 싸움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하지 않다"며 "다만 각종 연기금 등으로 하여금 국내 기간산업 관련 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일 수 있도록 규제를 점차 철폐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1998년 초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를 받아들여 의무공개매수 제도 등 대부분의 경영권 방어장치를 폐지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IMF와 정부는 이러한 조치들이 부실한 재벌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방만한 경영진에 대해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가 단계적으로 철폐되면서 최근에는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은 지난달 27일 발표한 '투기성 외국자본의 문제점과 정책과제' 보고서에서 "외국자본과 투기성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유럽은 물론 미국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이용이 가능한 우리나라의 경영권 방어제도는 ▲주식 5% 이상을 보유하거나 이후 1% 이상 변동이 생길 때 5일 이내에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5% 룰' ▲자사주 매입 ▲우리사주조합의 결성 ▲주요 주주와 우호적 의결권 행사 계약 체결 ▲초다수의결제, 황금낙하산, 시차임기제, 이사의 자격 제한, 이사의 해임 제한 ▲계열사의 지분 획득 등이 있다.

***경영권 방어제도 원하나? 지배구조부터 개혁하라**

이렇게 외국계 투기자본의 위협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지만, 그렇다고 재계가 요구하고 있는 경영권 방어제도를 도입하면 재벌의 기형적인 지배구조가 더욱 공고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우려도 크다. 특히 최근 삼성, 두산, 현대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겉으로는 지배구조를 개혁하겠다면서 실제로는 오너 일가 중심의 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권 방어제도의 도입은 재벌의 지배구조 유지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기업은 경영권 보호 제도의 요구에 앞서 먼저 지배소유구조의 개혁이 선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기업이 건강한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투명한 경영을 실천하면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과거에 삼성물산이나 SK가 외국계 자본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았던 것도 이들 기업의 기형적인 지배구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국내자본이 제대로 육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영권 방어제도를 도입해 외국자본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한국의 경제현실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내 증시 시가총액에서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을 대체할 만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경영권 방어제도를 도입하면 '자본의 부재'라는 부작용만 낳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영권 방어 장치를 재도입하기 위한 선결과제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과 투명경영의 실천이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육성해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방어막은 국내 경영진에 대한 견제장치로 순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04년 말 국내 산업자본을 보호하는 동시에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인수합병을 활성화하기 위해 사모투자전문회사(PEF)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금감위에 등록된 16개의 국내 PEF가 모집한 자금 2조8955억 원 중 실제 납입된 금액은 4183억 원에 그치고 있다. 국내자본을 육성해 외국자본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기업가치도 제고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에는 턱없이 미미한 실적이다.

***국내 기관투자가 육성 필요…토종자본론은 '마케팅 구호' 그칠 가능성**

이렇듯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성장이 더딘 상태에서 한편에서는 외국계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으로부터 KT&G, 포스코 등과 같은 국내 우량기업들을 지키기 위해 이른바 토종자본이 나서야 한다는 '백기사론'이 확산되고 있다.

토종자본론은 우리금융지주로부터 먼저 나왔다. 올 초 '토종은행론'으로 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지난 6일 "KT&G 사태를 보고 생각해볼 것이 많다"며 "우리의 자본시장이 사실상 무방비로 외국자본에 노출됐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며, 우리은행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기업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서의 역할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7일 우리금융지주 계열사인 우리자산운용은 경영권 위협이 예상되는 국내 기간산업이나 일반 기업들에 투자하는 이른바 '토종 백기사 펀드'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현재 금융감독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이 펀드의 이름은 '우리토종기업 혼합투자신탁 제1호'다. 우리금융지주는 이 펀드로 KT&G, 포스코 등 민영화된 기간산업과 두산, 현대산업개발, 삼성물산 등 지주회사의 성격을 띠고 있는 회사들에 투자할 예정이다.

백경호 우리자산운용 사장은 "기본적으로 인수합병(M&A) 대상이 될 수 있는 기업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높고 주가순자산비율(PBR)과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것이 공통점"이라며 "이러한 기업들은 투자가치가 높기 때문에 '백기사' 구실을 하면서 동시에 추가수익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펀드가 실제로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 '백기사' 역할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전문가들은 현행 규정상 공모 펀드는 투자위험을 분산하는 차원에서 동일 종목에 10% 이상 투자할 수 없게 돼 있어 이 펀드가 적대적 M&A의 방어막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반면 특정 사안에 대해 결정적 표결권(캐스팅보드)을 행사해 경영권 방어에 힘을 보탤 수 있으리라는 의견도 있다.

현재로서는 우리금융지주의 토종자본론은 마케팅성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펀드 내용을 보면 토종 우량기업에 투자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펀드와의 차별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우리은행은 총 자산 120조 원 중 주식 보유 금액은 2000억 원(8일 종가 기준)에 그치고 있고, 우량주식에 대한 장기투자도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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