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더라도 황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이 깔끔하게 정리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황 교수 지지자들이 검찰의 수사결과를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해 '황우석 지키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사태를 빚어내고 있는가?
최근 나온 〈역사비평〉 2006년 봄호(제74호)는 과학기술 학자들의 기고를 통해 이번 사태의 이면을 캤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사태가 황우석 개인과 과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병폐와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로 이해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논문조작이라기보다 논문조작을 가능하게 한 한국사회의 총체적 부실"에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의 발언과 행보는 단세포적인 국가주의 시각의 발로"**
김종영 서강대 강사(사회학)는 '복합 사회현상으로서의 과학과 과학기술 복합동맹으로서의 황우석'이라는 글을 통해 "황우석 사태의 본질은 한 과학자의 영달과 국가의 영광을 전 세계적으로 성취하기 위해 황우석을 중심으로 언론·정부·재계·네티즌·과학계가 공모해 만든 과학 사기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김종영 강사는 "이런 과학 사기사건이 가능했던 이유는 과학계와 정부의 규제 미흡, 언론의 비판기능 마비, 네티즌과 시민들의 애국주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편협한 과학관에 있다"며 ""과학을 진리의 영역으로 보면서 사회기술적·정치경제적·윤리가치적 영역들이 얽혀있는 복합 사회현상으로 보지 않으면 이번 사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특히 김종영 강사는 "황우석은 국가 최고권력자나 차기 대통령 후보들과 정치동맹을 맺은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과학자"라며 "대통령 노무현의 행보는 이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노무현의 발언과 행보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로 점철된 줄기세포 연구의 심각한 고민이 결여된 단세포적인 국가주의적 시각의 발로였다"며 "이는 종교적·철학적 가치에 기반을 둔 부시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걱정스러운 발언보다 더 위험하고 무지스러운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김종영 강사는 이어 "노무현은 과학기술을 규제해야 할 권력자가 특정 연구자의 이익을 위해 다른 가치(생명윤리)를 '관리'하겠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논문 진위 논쟁이 벌어지고 있던 초기의 상황에서 이쯤에서 문제를 덮자는 정치적 타협책까지 제시했다"며 "심지어 조작이 확실시된 시점에서도 박기영 보좌관과 과학기술부 장관의 문책을 요구하는 여론에 노무현은 과학적 근거에 의해서만 문책을 하겠다는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과학자의 탐욕과 국가-자본의 이익이 결합할 때 공공성은 뒷전"**
김종영 강사는 "경제계 또한 황우석 과학기술 복합동맹의 중요한 일부분"이라며 "황우석은 직접 줄기세포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적극적으로 선전하면서 재계와 생명공학 산업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재계와 생명공학 산업계는 이런 지원을 통해 '황우석 효과'를 톡톡히 봤다.
김종영 강사는 "생명공학 산업계와 의약 산업계는 황우석 효과로 주식시장에서 시장가치가 상승했다"며 "2005년 5월에 바이오벤처의 선두주자 중 하나인 매크로젠(Macrogen)의 일일 주식거래의 총량(800억)은 규모가 500배나 큰 삼성전자의 절반 수준이나 됐고, 2005년 중순 한국증권거래소 의약업 지수가 30%나 폭등한 것이 그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재계는 황우석 교수를 활용해 의료 양극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각종 의료산업화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시도도 했다. 김종영 강사는 "황우석은 노무현 정부의 의료산업화 기획에도 깊숙이 개입했다"며 "그는 병원 영리법인화를 옹호했고 노무현 정부는 의료시장의 신자유주의를 위해 황우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김종영 강사는 "(황우석의 예에서 보듯이) 과학자의 탐욕과 국가와 자본의 이익이 결합할 때 과학은 사회적 공공성을 등질 가능성이 높다"며 "2005년 11월 이전에는 민주노동당, 생명공학감시연대, 시민과학센터, 프레시안 등만이 이런 황우석 동맹에 비판적으로 개입했다"고 지적했다.
김종영 강사는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는 과학의 비뚤어진 정치경제 동맹을 막기 위해 시민사회가 더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만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기술의 복합적인 관계를 보지 못할 때 사회의 담론은 얕아지고, 깊은 분석과 성찰과는 점점 더 멀어진다"며 "공공성과 윤리성을 띤 연구들은 과학자들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좀더 많이 토론돼야 하고 시민들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에 있어서 쌍방향적인 의사소통 구조 확립해야"**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도 '과학기술학은 '황우석 사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글을 통해서 이번 사태는 과학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담론을 만들기 위해서 과학계와 사회가 더욱 더 소통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홍성욱 교수는 "황우석의 연구는 단순히 과학의 영역에 머물렀던 연구가 아니었다"며 "그것은 과학의 진보, 경제적 상징, 난치병 치료, 2002년 다이내믹 코리아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한국인의 민족적 긍지, 노벨상에 대한 염원의 합일을 상징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국민의 꿈은 '뉴스 밸류'를 좇는 기자들에 의해 증폭돼 기사 속에 반영되고, 미디어의 속성을 잘 이용했던 황우석에 의해 다시 증폭됐다"며 "문제는 이 꿈이 건전한 희망이 아니라 투기에 가까운 욕망이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성욱 교수는 "과학담론은 황우석과 같은 취재원에 의해 만들어져서 미디어를 통해 증폭된 뒤에 일방적으로 시민사회에 전달됐으며, 정책 결정 역시 과학자-관료-정치인의 연합에서 그 틀이 만들어진 뒤에 미디어를 통해서 다시 시민사회에 전달됐다"며 "시민들은 미래 부가가치의 창출, 민족적 자긍심, 난치병 치료와 과학 유토피아 건설 등에 대한 지지를 표출함으로써 이런 흐름에 화답했다"고 그간의 사정을 분석했다.
홍성욱 교수는 "지금부터라도 과학에 있어서 쌍방향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며 "그런 과정 없이 성장을 최고 가치로 추구하고 성장을 위해 과학을 동원하는 것을 정책목표로 잡는 한 제2, 제3의 황우석 사태가 또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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