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게 뭐가 없을까. 주식도 부동산도 경기가 좋아져야 투자할 맛이 난다. 아무리 주식 개별 종목을 잘 고르더라도 전체 지수가 망가지면 허방이다. 투자자들 중엔 몇몇 기막힌 주식 종목을 골라 하락하는 장에서 회심을 미소를 짓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케이스다.
늘 상황이 좋은 수는 없는 법. 우리는 주식이나 부동산 등 한 방향, 즉 경기와 같이 가는 투자수단 외엔 '다른 뭔가'를 필요로 한다. 헌데 그런 다른 투자수단, 즉 경기와 반대로 가는 투자수단은 의외로 우리들의 가까이에 있다. 주식과 함께 증권시장의 양대 투자수단으로 꼽히는 채권이 그것이다.
최근 주식시장의 불안으로 다른 투자수단이 없을까하고 문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주식이 지난해처럼 꾸준히 올라주지도 않고 불안감만 안겨준다는 지적도 많다. 국내 경기가 회복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거나 경제성장이 꾸준히 지속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주식투자, 특히 간접투자가 괜찮아 보이지만, 보다 안전한 투자를 원하는 사람, 즉 자산배분 차원에서 위험을 좀더 분산시키고 싶은 사람들에겐 채권 간접투자를 해보도록 권하고 싶다.
***채권형 펀드, 한 고비 넘겼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지난해를 금리가 폭력적으로 오른 한 해로 기억한다. 채권펀드를 운용하는 많은 펀드매니저들에게 2005년은 "금리가 급등하면서(즉, 채권 가격이 급락하면서) 새 천년 들어 가장 피해를 크게 본 한 해"라는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년 간 국내의 채권형 펀드들은 평균 1.86%의 수익을 내는 데 그쳤다. 지표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권 금리가 1.8%포인트나 급등한 5.08%로 마감했기 때문이다. 한 해 동안 금리가 2% 가까이 오른 것은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지난해는 '금리가 급등한 해'라고 할 만하다.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의 자세를 취했고 지난해 10월, 12월에 이어 올해 2월에 이르기까지 최근엔 격월로 금리가 인상됐다. 이에 따라 정책금리인 콜금리는 4%까지 올랐고, 이에 맞춰 시중금리도 위쪽으로 향했다. 채권펀드는 금리상승(채권가격 하락)으로 인해 손실을 내거나 낮은 수익률에 만족해야 했다.
최근까지도 채권 투자자들은 향후 정책금리가 얼마나 더 오를지 몰라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으며, 채권형 투자 자금들은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겼다. 경기회복세에 따른 정책금리 인상과 수급불안이 금리인상을 부추기며 채권펀드에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다소 바뀌었다. 한 나라의 시장금리 향방을 좌우하는 콜금리가 중앙은행이 생각하는 중립수준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통화당국은 최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가 중립수준 근처까지 올랐으니 앞으로는 중기적 관점보다 단기적 관점에서 통화정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중립적인 금리 수준을 향해 지속적으로 정책금리를 올리기보다는 경기상황 등을 바탕으로 신축적으로 금리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채권형 펀드는 지난해에 보았던 극심한 불안정 상태에서는 벗어난 상황이다. 시장금리는 지난해 통화당국의 정책적 태도를 급하게 반영하면서 하반기까지 크게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금리는 하향안정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금리급등의 시기는 지나간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투자자 입장에서 채권투자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투자대상으로 떠올랐다.
***채권펀드가 이젠 확정금리 상품을 이길 수 있다**
은행에 들러 투자상품 상담을 받아보면, 여전히 주식 관련 상품을 홍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확정금리 상품과 더불어 괜찮은 투자수단이라며 주식형 펀드 가입도 권하곤 한다.
은행원들은 펀드를 팔면서 가입서류에 쓰인 '충분히 설명을 들었음'이라는 문구 아래에 서명을 하라는 요구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지금은 금리 상승기라며 채권펀드는 별로 권할만한 상품이 못 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주식이 좀 불안하다고 생각하면 그냥 1년짜리 정기예금에 들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금융회사 종사자들의 조언은 면책을 위한 방어수단인 '충분히 설명을 들었음'이라는 문구만큼이나 고객들에겐 불필요한 것인 경우가 많다. 미래예측은 어렵고 불투명하며, 투자자는 자신이 투자판단을 해야 한다. 이는 직접투자든 간접투자든 마찬가지다.
채권펀드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채권펀드에는 3개월짜리 펀드, 6개월짜리 펀드, 1년짜리 펀드가 있다. 'X년짜리'라는 구분은 환매에 따른 페널티를 감안한 편의적인 구분이다. 누구나 자기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기간을 고려한다.
이와 비슷하게 'X년짜리 펀드'의 비교대상은 'X년짜리 확정금리 상품'이다. 6개월짜리 펀드는 6개월짜리 정기예금와, 1년짜리 펀드는 1년짜리 정기예금과 비교된다는 것이다. 6개월짜리 펀드를 1년짜리 정기예금과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채권형 펀드가 확정금리 상품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이 들 때 비로소 채권형 펀드 상품이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투자의 고려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현재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가 4.7%라고 가정하자(실제로 이 금리는 지금 4.7% 정도다). 그런데 많은 채권펀드들은 지금 5%대 초반의 수익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목표수익률이란 말 그대로 목표이지 반드시 달성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운용사에 소속된 펀드매니저들은 목표로 내세운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건 그들의 신뢰 문제와 직결되며 턱없이 높은 수익률을 목표로 제시하기는 힘들다.
투자자 입장에선 채권펀드가 확정금리 상품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증권사나 은행 등에 들러 채권에 투자하는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다. 다만 책임은 투자자의 몫이다. 지난해 폭력적인 금리상승기에 채권펀드들이 2%를 넘지 못하는 수익을 내는 데 그쳤다. 펀드는 실적상품이므로 낮은 수익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채권펀드의 안정성은 주식펀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채권투자는 보수적인 투자법이며, 특히 현재의 금리수준과 상황을 고려했을 때 원금을 까먹을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 적어도 이 점에서 심리적인 안정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채권펀드다.
물론 어떤 상품을 고를 지도 중요하다. 채권펀드들 간에도 경쟁이 심해 운용 능력과 회사 시스템이 검증된 곳에서 파는 채권펀드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한 채권펀드 매니저는 "지난해에 채권형 펀드들이 고생을 많이 했지만 채권펀드에 대한 투자는 평균적으로 예금에 계속 넣는 것보다 나은 성과를 내왔다. 예금보다 일반적으로 높은 수익을 내고 있으며 이 점이 채권펀드의 매력이다. 지금은 더구나 확정형 상품보다 채권펀드가 경쟁력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채권투자의 매력은 '반대로 간다'는 점에 있다**
채권에는 고유의 특징이 있다. 채권을 제외한 다른 투자상품들은 대부분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모두 '경기상황'과 같은 방향으로 간다는 점이다. 주식, 부동산, 예금 등이 모두 그렇다. 이런 상품들은 경기가 활성화되고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덕을 본다.
사람들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점점 더 노후를 대비하는 쪽으로 맞춰진다. 국내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 주가가 오른다. 경제성장률이 올라가면 확정금리도 올라가 예금 가입자들도 유리하다. 부동산 역시 경기가 좋아져야 임대도 잘 되고 돈을 벌게 해준다. 경제가 성장하면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직업을 유지할 수 있고, 자식들도 쉽게 취직할 수 있다. 대부분의 투자자산 포트폴리오는 이런 방향이다.
하지만 채권은 유독 반대로 간다. 채권은 남들이 좋을 때 같이 웃어주지 못하는 '결함'을 타고 났지만, 바로 그 점이 채권투자의 장점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햇볕 쨍쨍한 맑은 날만 있는 게 아니다. 비가 오거나 우중충한 날씨에도 대비해야 한다. 일자리도 불안하고 소득도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을 하게 될 때 생각하게 되는 게 채권이다. 경기가 안 좋을 때를 대비해 채권으로 포트폴리오를 들고 있으면 그만큼 투자자산에 헤지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는 것이다.
일본은 경기가 침체로 치달으면서 금리가 떨어져 제로까지 가지 않았던가. 만약 일본에 사는 누군가가 경기가 안 좋아질 때를 대비해 채권투자를 적절히 해놓았다면, 주식이나 예금에만 관심을 가졌던 다수의 사람들보다는 투자실적이 더 나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채권은 장기적으로 노후대비나 위험헤지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채권이 다른 자산들과는 반대로 간다는 사실은 채권에 보험 기능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들은 거액의 단위로 거래되는 채권투자에 접근하기는 힘드니 채권펀드에 관심을 갖는 게 좋다.
***'위험 대비 수익'의 관점에서 보자**
아침회의 중에 회사 동료 중 한 사람이 코스피지수 1400일 때 갖고 있었던 여유자금 5000만 원을 전부 주식성장형 펀드에 가입했다는 얘기를 꺼냈다. 코스피지수가 지금 1500~1600이라면 그에게 갈채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모함에 대해선 박수를 쳐줄 수가 없다. 자산배분을 전혀 하지 않고 상황이 좋을 때 올라 타서 크게 한번 벌어보자는 것은 잘못된 투자방식이다.
지금 1년짜리 예금 금리가 4.7%인 상황에서 1년짜리 채권펀드가 5.2%의 수익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목표수익률이 반드시 실현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시장상황이나 채권의 특성 등을 감안하면 채권펀드 투자도 적극 고려해봄직하다.
아울러 지금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자신의 자산을 주식이나 부동산에 '몰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살펴야 한다. 지난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과열됐음을 감안하면 현재 투자자산이 어느 한쪽으로 쏠려있을 가능성이 있다. 위험도를 낮추고 안정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물론 채권펀드의 장점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물론 채권펀드 외에도 다른 안정적인 투자수단이 있다면 그런 투자수단을 선택하는 것도 좋다. 비과세 상품 중 아직 들지 않은 상품이 있으면 거기에 먼저 가입하기를 권한다. 다만 비과세 예금은 한도가 있고, 비과세 예금에 가입한 뒤에도 여유자금이 남아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채권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지난해는 예금이 채권펀드를 이긴 한 해였다. 그러나 올해는 시장 상황이 변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젠 채권펀드의 운용내역을 살피고 잘만 고른다면 채권펀드 투자로 괜찮은 수익을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모든 채권펀드들을 같은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회사채 펀드와 국공채 펀드는 위험도와 기대수익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회사채 펀드가 국공채 펀드에 비해 동일하거나 조금 나은 수익률을 내는 데 그칠 게 확실하다면 국공채 펀드를 선택해야 한다. 투자의 기본 개념은 '위험 대비 수익'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스] '채권형 펀드' 이해하기
일반인들은 펀드라고 하면 주로 주식형 펀드를 떠올린다. 지난해 펀드투자 자금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거나 적립식 펀드가 자리를 잡았다는 등의 이야기는 모두 주식펀드에 국한된 이야기다.
펀드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채권형 펀드를 소외시킨 채 전개된다. 증권시장을 주식시장과 등치시키는 버릇, 심지어 주식시장을 증권시장의 줄임말인 증시로 표현하는 습성도 그렇다. 하지만 증권시장에는 주식 외에 채권도 있으며, 증권회사는 주식 뿐 아니라 채권도 판다. 채권시장은 대중의 관심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지만 그 규모는 주식시장보다 크다. 또 채권은 주식과 함께 증권의 양대 축이다.
채권형 펀드는 말 그대로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다. 채권펀드의 기본은 이자 수입이다. 무위험 채권이라고 할 수 있는 국채나 통안증권, 신용도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는 회사채 등을 편입해 운용하고 그 성과에 따라 수익을 투자자에게 되돌려주는 구조다.
주식투자는 자본이득, 즉 주가가 얼마나 올랐느냐가 수익의 주요 원천이지만, 채권투자의 기본은 이자 수입이다. 대략 주식투자에서 나오는 배당을 채권의 이자로 보고, 주가의 변동을 시장금리 등락에 따른 채권가격의 변동으로 보면 된다.
즉 채권투자의 수익은 캐피털 게인(Capital Gain, 자본이득)과 인컴 게인(Income Gain, 이자수익)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채권 가격이 떨어진다는 의미와 같다고 생각하면 채권투자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채권을 대할 때는 무위험 채권과 위험 채권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무위험 채권은 국채처럼 신용등급에 문제가 없으면서 유동성이 높은 게 특징이다. 국채는 만기까지 들고 있으면, 국가가 망하지만 않으면 약속된 이자와 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회사채의 경우 좀 더 신경을 쓸 게 많다. 우리는 이미 대우 사태, SK글로벌 사태와 같은 이른바 '크레딧 이벤트', 즉 회사채 신용에 문제가 생긴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런 위기가 닥치면 안 그래도 주식에 비해 유동성이 크게 떨어지는 채권투자는 위기를 맞게 된다. 팔아서 손실을 보전하고 싶지만, 아예 팔리지가 않는다.
이런 유동성 위험은 등급이 낮은 기업에서 발행한 채권에서 발생하기 쉽고, 막말로 최악의 경우 회사가 망해서 채권이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험이 높으면 기대수익도 높다는 게 기본이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저평가된 채권에 잘 투자할 경우에는 고위험 채권이 다른 저위험 채권보다 높은 이자수입뿐 아니라 등급상향 등에 따른 채권가격 상승효과로 고수익을 낼 수 있다.
채권형 펀드는 환매수수료 부과 기간에 따라 단기형, 중기형, 장기형으로 나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편의적인 구분이며, 일반적으로 펀드의 만기는 없다. 기간 구분은 다만 몇 달 이상 환매를 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물지 않는다(혹은 몇 달 이내에 펀드를 환매하면 투자수익의 몇 %를 수수료로 낸다)는 약속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펀드의 만기는 없다.
이런 구분법 외에 채권펀드가 투자하는 자산에 따라 국공채형 펀드, 회사채형 펀드 등으로 나누는 것도 일반적인 분류법이다. 국채나 통안채 등 국가기관이 발행하는 무위험 채권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를 국공채형 펀드라고 부르고, 국공채형보다 위험이 큰 회사채에 투자하는 펀드를 회사채형 펀드라고 부른다. 회사채형은 위험이 큰 만큼 공사채형에 비해 기대수익도 높다.
채권형 펀드라고 해서 채권에만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채권형 펀드들은 자산의 상당부분을 채권에 투자하지만 기업어음(CP), 양도성예금증서(CD), 콜(Call) 등에도 투자한다. 또 투자할 수 있는 채권의 등급을 제한해 놓기도 한다. 예컨대 최상위 신용등급인 AAA급에서 BBB급까지의 채권에 투자할 수 있다는 등 투자대상에 제한을 설정해두는 것이다. 채권형 펀드의 주된 투자대상인 채권은 발행주체에 따라 국고채, 통안채, 금융채, 회사채 등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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