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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시대의 징표'를 읽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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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시대의 징표'를 읽어낼 수 있을까?"

[기고] 새만금 소송 공개심리 방청기

새만금 물막이 문제는 이제 한국 사회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공동체 안에서 살고자 하는가를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행복과 물질적 안락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정복될 수도, 파괴될 수도 있다는 물신중심의 세계관과, 이 지구는 인간뿐만 아니라 아득한 옛날부터 뭇 생명, 심지어 돌과 흙 그리고 바람 물도 함께 살아 온 집이라는 생명관이 부딪치고 있는 현장이 새만금 갯벌이다. 그리고 이 중요한 판정이 오만 가지 이기적인 갈등, 힘의 투기장인 인간의 법정에서 가려지려 하고 있다.

***새만금 물막이 예정대로 갈 것인가**

지난달 23일 원주에 가서 새만금 문제에 대한 박경리 선생의 큰 걱정을 듣고 온 뒤 신경림, 김지하, 정희성 시인, 문규현 신부, 도법 스님, 임재경, 정성헌, 김정헌, 김용태, 최열, 윤준하, 이석태 선생 등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애써 오신 많은 지인들과 의논을 했다.

해수 유통을 전제하는 환경친화적인 1심 판결과는 달리, 새만금 물막이 완결 쪽의 손을 들어준 항소심 판결이 있고난 뒤 생명평화운동 진영에는 비관적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긴 세월에 걸쳐 새만금 물막이의 부당성을 때로는 시위로, 때로는 삼보일배의 고통스런 호소로, 때로는 국제적 연대로, 때로는 생존의 벼랑에 몰린 현지 어민들과의 연대투쟁으로 국내외에 알려 왔지만 부정적인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면 더 이상 돌이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월 16일 대법원의 공개변론이 열렸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점심시간 2시간을 빼고 6시간 30분 동안 원고(생명평화 측)와 피고(정부, 전북도청 측)의 숨 막히는 치열한 공방이 전개됐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주재한 이날의 공개심리는 대법관 전원심리로 진행됐다.

원고 측(주심 최병모 변호사)은 새만금 사업이 그 탄생부터 '정치 논리'에 좌지우지된 어처구니없는 사업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이 사업은 당초 1987년 중반 노태우 후보의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급조되었다가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야당 총재 사이의 정치적 타협으로 사업을 착수하는 결정적 계기를 맞게 됐다. 그 뒤 어떤 정부도 이 새만금 사업을 중단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오로지 전북지역 유권자들의 표를 놓치지 않으려는 정략적 계산 때문이었다.

원고 측은 계속해서 사업 목적의 실체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새만금 사업의 실체는 농지가 아니라 복합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정부와 전라북도, 그리고 정치권이 적어도 법정 바깥에서는 복합산업단지 조성 계획을 공공연히 밝혀 왔고 정부 스스로도 신규농지의 필요성이 없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의 '시화호' 피할 수 없어**

만약 이 사업이 예정대로 추진됐을 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결과도 조목조목 제시됐다. 자연이 수십만 년에 걸쳐 만들어낸 광대한 하구갯벌을 영구히 잃어버리게 되고 사업으로 인한 환경재앙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 공존해 온 2만여 명의 지역주민들 역시 생존의 터전에서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의 순차 개발 계획으로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될 경우 새만금 해역에서는 해수와 물질순환이 차단돼 해양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됐다. 친환경적인 새만금 개발과 활용을 위해서는 개방 구간의 추가 확보 등으로 새만금 방조제 내측과 외해의 해수순환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만금 담수호의 수질 기준이 충족된다는 피고 측이 제시한 환경영향평가의 허구성도 지적됐다. 여기에 수질 예측의 전제가 된 수질 개선 대책의 허구성까지 지적돼 새만금의 수질 기준 달성은 아예 요원한 일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특히 만경호와 동진호의 총질소(T-N) 농도가 기준치를 과도하게 초과해 총인(T-P) 농도의 16배 이상이므로 이미 부영양화 내지 과영양화 상태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는 사실도 언급됐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전북도청이나 도민의 바람과는 달리 경제성 분석에 있어서도 이 사업은 문제 투성이라는 점이다. 편익의 약 76%를 차지하는 국토확장 효과, 식량 안보 가치 등이 부풀려졌고 비용 측면에서는 해양 환경에의 악영향에 따른 사회환경적 비용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개방구간 확보해 해수유통 되게 해야**

원고 측은 결론적으로 현재의 새만금 사업 계획은 취소돼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①해양생태계에 미칠 악영향을 피하기 위해서는 현 상태의 유지에서 더 나아가 추가적인 개방구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②수질악화로 인해 농업용수는 물론 생활용수 등 수자원 확보라는 사업목적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③사업의 경제성도 없다 ④2만여 명의 지역어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새먄금 사업이 그대로 강행된다면 우리는 모두 역사의 죄인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

이런 원고 측의 주장과는 달리 피고 측은 모든 내용을 부인하고 낙관론으로 일관했다.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더라도 해양환경에는 악영향이 나타난다고 미리 예측할 필요가 없으며, 나타나더라도 큰 영향은 없다는 것. 수질 악화 역시 배수갑문 두 곳으로 담수가 흘러 나갈 것이므로 기존 수질 개선 대책으로 충분히 방지해갈 수 있기 때문에 시화호에 비유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내용도 제시됐다. 수질악화 가능성에 대한 박시환 대법관과 김영란 대법관의 질문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변을 못 하기도 했다.

경제성 부분에서 국토 확장 효과와 식량 안보 가치 등에 대해서도 지나친 부풀리기 지적에 대해 원고와 피고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공판에서는 정부와 전라북도의 본색이 뭔지를 말해주는 발언도 공개됐다.

지난 2월 2일 박흥수 농림부 장관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현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라북도가 추진계획을 밝힌 고군산도 일대 국제해양관광지 개발방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게 마땅할 것"이라며 "다만 개발사업은 간척지의 안정화를 거쳐 실제 토지이용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30년가량 소요될 예정인 데에다 계획이 실행되기까지는 많은 검증과 수정이 필요한 만큼 너무 서둘러 추진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업의 목적이 농지확보가 아니라는 것을 농림부조차 시인한 것이다.

아울러 최근 전북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세용 무주군수는 "휴경농지를 ha당 300만 원씩 보상해주고 있는 판에 세계최대의 갯벌을 죽여서 논을 만들어야 할 만큼 쌀 문제가 절박하단 말인가? 왜 황금덩어리 혈세를 쏟아 부어 똥 덩어리로 만들겠다는 것인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사업이 갖는 문제점을 전북도민들도 차츰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 징표 읽고 섭리 쪽 택하는 지혜 나와야**

이날의 법정 풍경만 살펴봐도 도대체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판결은 쉽게 낙관할 수 없는 듯하다. 바로 생명평화운동 진영이 비관적인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지구의 질서, 하늘의 순환을 어기는 판정이 인간의 법정에서 내려지더라도, 자연은 대재앙의 형태로이건 아니면 그 섭리를 따르려는 소수 인간 무리의 안간힘을 통해서이건, 아름다운 푸른 별 이 지구의 순환, 균형을 찾아갈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기심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 장마당에서 그래도 현인들이 모여 있는 인간의 법정이라면 시대의 징표를 미리 읽어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섭리를 따르려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지혜가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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