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창작과비평〉(〈창비〉)은 '운동성' 회복을 강조하고자 한다. 여기서 운동성이란 일상생활의 타성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일상생활로 돌아가 그 현장에 뿌리내리는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얻게 되는 운동의 특성, 곧 힘을 뜻한다. 이미 주류 문화의 일부가 되기도 한 〈창비〉 편집진부터 타성을 떨치고 우리 시대의 요구에 헌신하는 과제 수행에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앞장 서려는 것이다."
'민족문학의 교과서'요 '의식화의 텍스트'라는 〈창비〉가 불혹의 나이를 맞았다. 이제 장년에 들어선 〈창비〉는 다시 '운동성'을 강조하며 한반도의 통일시대를 본격적으로 준비할 것을 천명했다.
***백낙청 편집인 "개혁 과제들, 분단 문제와 함께 고민하는 지혜 필요"**
〈창비〉 40주년 기념호(제131호) 출간을 계기로 백낙청 편집인, 백영서 편집주간 등은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창비〉 40주년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밝혔다.
백낙청 편집인은 "지난 40년을 회고해보면 〈창비〉가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으면 받을수록 오히려 〈창비〉의 독자가 많아졌다"며 "더 나은 사회를 열망하는 독자들의 기운을 타고 〈창비〉가 성장한 것 같아서 더욱더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지난 40년을 회고했다. 백 편집인은 "이제는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현실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역시 복잡해졌지만 분명한 의제를 설정하면서 변화하는 시대의 커다란 움직임과 호흡해 나가겠다"고 지적했다.
백 편집인은 특히 '흔들리는 분단체제'에서 '도래하는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창비〉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오랫동안 재야에서 통일운동을 해 온 분들처럼 '통일'만을 강조해서는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을 얻을 뿐"이라며 "이런 분위기의 역편향으로 마치 '통일이 남의 일인 양' 분단 문제를 도외시하는 분위기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백 편집인은 "앞으로 〈창비〉는 이런 양쪽의 분위기에 동시에 도전하면서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담론을 생산해 낼 것"이라며 "필요에 따라서는 실명 비판과 같은 논쟁적인 글쓰기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백 편집인의 언급은 그동안 남한 사회의 '개혁 완성'이 '분단 극복'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그의 '분단체제론'을 〈창비〉 지면을 통해 더욱 심화시켜 나갈 계획임을 천명한 것이다.
백 편집인은 즉석에서 "요즘 〈한겨레〉에서 진행하고 있는 '선진대안포럼' 역시 마찬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며 "쟁쟁한 지식인들이 개혁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분단 문제, 통일 문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남한 사회의 여러 가지 개혁 과제를 분단 문제와 떼어서 보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현실 문제에 적극 발언…논쟁 주도하는 〈창비〉로 재탄생**
이런 백낙청 편집인의 구상은 새로 취임한 백영서 편집주간을 통해 주도된다. 젊은 세대와 호흡하기 위해 문학평론가 진정석(43) 씨, 시인 이장욱(38) 씨도 새로 편집위원에 합류했다.
백영서 편집주간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운동성'을 회복하기 위한 계기로서 〈창비〉의 지면을 더욱더 논쟁적으로 만들 예정"이라며 "새로 도입된 '도전 인터뷰'는 물론 개별 글들에서도 이런 변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그간 〈창비〉에 대한 외부의 문제제기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측면이 없지 않았다"며 "앞으로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백 주간은 "요즘의 인문․사회과학적 글쓰기는 전문 용어나 이론에 기대는 경향이 짙어 현실과 동떨어진 공론(空論)이 되기 일쑤여서 특별한 지적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곤 한다"며 "〈창비〉는 현실 문제에 밀착해 날카롭게 비평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논쟁적 글쓰기의 모범을 보이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창비식 글쓰기'라는 것이 지식 사회에서 회자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런 백 주간의 각오는 〈창비〉 40주년 기념호의 지면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백낙청 편집인을 황종연 동국대 교수(국문과)가 인터뷰한 첫 번째 '도전 인터뷰'가 그 본보기다. 이 인터뷰에서 백 편집인과 황 교수는 한 치의 양보 없이 오늘날 문학의 현실을 진단하고 있다. 황 교수는 〈창비〉의 대척점에 서 있는 〈문학동네〉의 편집위원으로 그 동안 여러 지면에서 〈창비〉의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 논의에 대해서 논쟁적인 비판을 제기해 왔다.
〈창비〉는 이와 별개로 계간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4월부터 〈창비주간논평〉을 온라인으로 발행할 예정이다. 백영서 주간은 "독자와 일상적으로 접촉하고 대화하며, 현장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평과 문학, 문화 칼럼 등을 수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시아 연대를 선도하는 〈창비〉로 거듭나**
〈창비〉가 중점을 두는 또 다른 분야는 동아시아 지식인들과의 연대다. 〈창비〉는 이런 연대를 모색하기 위해 올해 4월부터 일본어판 〈창비〉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는데 이어 중국어판 인터넷 서비스도 시작할 예정이다.
두 차례의 국제 심포지엄도 개최한다. 당장 오는 2월 24~25일에는 일본 교토에서 리츠메이칸대와 공동으로 '동아시아로 발신되는 한국의 문화파워' 심포지엄이 열린다. 백영서 주간은 "한류 열풍을 좇는 자리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한국 문화의 힘으로 어떻게 동아시아에 파급돼 공진(共振)돼 돌아오는지를 짚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6월에는 동아시아의 진보적 지식인 네트워크 형성의 일환으로 한․중․일 잡지 편집진이 모이는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다. 이런 동아시아 지식인과의 연대 문제는 이미 〈창비〉 40주년 기념호 지면에도 반영돼 있다. 〈창비〉는 일본의 〈세까이(世界)〉, 〈젠야(前夜)〉, 〈겐다이시소오(現代思想)〉, 타이완의 〈인터아시아 문화연구〉, 홍콩의 〈21세기(二十一世紀)〉, 중국의 〈뚜슈((讀書)〉 등의 편집인들의 글을 실어 해당 잡지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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