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조직된 노조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또 어느 곳에서는 자본의 탄압으로 해고를 당하고 노조가 와해되는 곳이 생기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수치상으로 3퍼센트라는 조직률이 수년 동안 동일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신문지상에서는 지난 수년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지금은 답보 상태여서 이 상태라면 앞으로 3퍼센트 조직률조차도 더 내려갈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노조를 만드는 일은 마치 식민지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거나,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는 결심같이 해야 할 지경이다. 올해 12월 말로 기간만료가 다가오는 계약직 노동자가 노조를 만든다? 아니면 노조에 공개적으로 가입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사내하청, 용역 노동자는 어떨까. 모든 것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 원청업체는 사용자책임을 지지 않고 하청업체를 중간에 고용주로 끼워둔 형태이니 노조를 만든다고 한들 누구와 교섭을 하겠으며 누구와 이야기를 하여 노동조건을 개선할 것인가. 필자가 경험한 사례 중에 자동차회사에서 일하는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어 식당 앞이나 사업장 내 도로에서 노조 설립을 알리는 홍보활동을 하는데도 원청업체인 자동차 회사는 노무·보안 부서의 '덩치'들을 동원하여 남의 마당에 와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면서 폭행하고 플래카드를 찢은 일이 있었다. 늘 보는 풍경 중의 하나다.
심지어 노조를 만든 하청노동자들이 속한 하청업체는 폐업해버리기도 한다. 잘 알다시피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화물운송, 건설운송 노동자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라고 하니 다른 이야기를 더 할 필요는 없겠다.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니 두들겨 맞더라도 노조 간판이라도 다는 것이 얼마나 부러운 일이겠는가.
▲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 ⓒ프레시안(최형락) |
박종태 열사가 죽어서야 관심을 받은 택배 노동자들도 원래 사측이 합의한 내용만 그대로 지켰어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노동자가 아니라면서 하루아침에 노조를 부정하고 합의서를 휴지로 만들고 이에 항의해 반나절 업무를 하지 않았다고 휴대전화 문자로 전원 해고하면서 그 일이 시작된 것이다.
누가 죽고서야, 457명의 노동자가 경찰과 충돌해 연행되고서야 그들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폭력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또 그 일로 대한민국이 수억 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했다는 일로 말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실상 파업권은 고사하고 단결권조차도 쉽지 않다. 이랜드-뉴코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되고서야 비로소 노조에 가입했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한 파업에 동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슈가 되는 것은 왜 파업을 하는가보다는 주로 불법파업이기 때문에 노조간부가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거나, 노조사무실을 압수수색하였다거나, 수십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가 되었다는 일로 이슈가 된다. 상식적으로 노조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에게만 적용한다는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것 때문에 자신의 임금을 포기해야 한다.
그 외에도 여러 곤란함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웬만한 이유가 아니면 파업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가 갑자기 수백 명을 정리해고하려 한다든지, 일방적으로 공장을 국외로 이전하고 폐업을 시키려고 한다든지, 대규모 인원감축을 한다든지 등 이른바 구조조정 상황에서 파업이 많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 파업은 합법일까. 법원과 검찰은 파업의 목적에 정당성을 갖추어야 한다면서 위에서 든 목적으로 파업하면 불법이라고 한다.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노조가 요구하는 수백 개의 사항 중에 혹시 잘못 걸리게 되면 바로 불법이 될 수 있다. 파업할 만한 사유는 경영권이니, 권리분쟁이니 하면서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가고 있다. 목적과 절차를 지키지 않은 파업은 불법이 되고 불법이 되면 업무방해죄로 고소를 당하여 구속이나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해고 등 징계가 따르고 수십억 원대의 영업손실까지 손해배상청구를 당하게 된다. 자동적으로 따라오도록 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
불법이 되면 사측은 다양한 탄압에 나서는데, 위의 것을 제외하고도 직장폐쇄를 단행하여 조합원들의 사업장 출입을 막고 용역을 동원해서 사업장에 모여 있는 조합원을 몰아낸다. 공권력은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여차하면 경찰병력을 투입할 태세를 취한다.
그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지면 파업으로 말미암은 업무방해죄에 더하여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과도한 징역형이 규정된 형사범죄자가 된다. 쌍용자동차의 경우처럼 국가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수십억 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파업기간 내내 자본의 대리인으로 행세하다가, 끝나고서도 노동자들을 못살게 구는 국가의 모습이다.
2006년 3월 3일 새벽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수십 명의 철도 노동자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병력에 체포되어 끌려갔다. 철도노조는 농성 당시 체포영장이 발부된 노동조합 간부들을 강제 연행하고 조합원들을 대오로부터 분리해 파업을 무력화시킬 것을 우려해 전 조합원들에게 산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수십 명 단위로 전국에 흩어져 여관, 찜질방 등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고 있었다. 지금은 이름만 바꾼 필수유지업무제도도 당시 직권중재에 회부되어 불법파업이라는 이유였다. 이들이 체포를 면하려면 강제노동을 해야 한다.
2008년 유엔 산하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 정부에 "위원회는 노사 관계에서 업무 방해 조항의 적용 문제는 한국에 대한 제1865호 제소 건을 통해 오랫동안 의견이 제출된 문제였음을 상기했다. 위원회는 제소 건에 대한 조사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상기한다.
"파업에 어떤 폭력행위도 수반되지 않는 한 불법 파업의 경우에도 체포하는 것을 삼감으로써 업무 방해로 인한 형사처벌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한국 정부의 답변을 주목한다. 또한 업무 방해가 파업 돌입 여부를 결정하려는 노조원들을 제물로 삼아 위협하기 위한 시도로 체계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제소문 상의 주장에도 주목한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위원회는 다시 한 번 형법 제314조 업무 방해 조항이 소개되어 수년에 걸쳐 적용되면서 그 어떤 폭력행위도 수반하지 않은 단체행동의 여러 행위에 처벌을 가하고 심각한 정도의 수감형과 벌금형을 유발하고 있는 데 대해 우려를 표시할 수밖에 없다." [제346차 보고서, 단락 768 및 758]
위원회는 2000년 이래 위원회가 이 부분에 대해 요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형법 제314조 업무 방해 조항을 재평가하여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되도록 하기 위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위원회는 또 한국정부가 형법 제314조(업무 방해)가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되도록 하는 데 지체 없이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이에 대해 계속 알려줄 것을 요구한다고 하면서 소극적인 노무거부행위에 대하여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하는 문제를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게 시정할 것을 수차례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지금 민주노총 또는 산별노조의 임원이나 간부들은 전과를 한두 개씩은 다 달고 산다. 그리고 언제든지 체포와 구속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파업하는 사업장에 방문한다든지, 파업을 하는 산하 사업장을 돕기라도 한다든지,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공모공동범이 될 수 있다. 총파업은 어떨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정부정책과 법 개정에 대하여 파업을 하면 이 역시 위에서 말한대로 목적상 불법이 된다.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은 파업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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