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유기농업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 한국판 '짝퉁' 유기농업 인증제도인 '친환경 농업'의 기준에 비춰보면 전체 농업 생산의 3.5%다.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이 비중이 훨씬 더 낮아진다. 그렇다면 정부가 그토록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인 '유기(organic)농업'의 기준에 비춰보면 어떨까?
2004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유기농업 생산 비중은 고작 0.05%다. 이는 기계농업이 대부분인 미국의 0.1%에도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이고, 중국의 0.06%에 비해서도 떨어지는 수준이다.
선진국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 등에서는 불과 5년 사이에 유기농업의 비중이 1%에서 10% 수준으로 올라섰다. 현재 3%인 프랑스도 이 대열에 합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광우병에 시달리다 뒤늦게 유기농업을 시작한 영국도 최근 이 비중이 5% 선을 넘었다.
***자연환경이 좋아야 농업강국이 된다고?**
이들 나라가 자연환경이 좋아 유기농업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스위스의 경우가 좋은 예다. 스위스는 국토 면적이 남한의 절반 정도인데다 산지가 많아 농지 확보가 어렵다. 게다가 1년의 절반이 겨울이라서 2모작을 하는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환경이 열악하다. 오스트리아와 덴마크도 마찬가지다. 현지에 직접 가보면 이런 나라들이 농업국가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다. 그래서 '유기농업은 사회적인 것'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스위스 역시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2%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나라의 경제활동인구 중 농업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숫자가 12%나 된다는 점이다. 4만5000달러의 국민소득을 유지하는 '선진국' 스위스의 경제활동인구 중 12%가 농업으로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산업의 관점에서 농업이 사양산업인 것은 맞다. 하지만 노동과 기술이 집약적으로 투입되지 않으면 성과를 올릴 수 없는 유기농업은 '사회통합'과 '사회적 안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절한 산업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역내의 유기농업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놓고 한창 논의 중에 있는 것도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둔 탓이다. 동유럽과 터키가 EU로 들어오는 시점에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충격을 바로 유기농업 육성을 통해 흡수하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두면 한국의 농정은 세계적 흐름과 멀어져도 너무 멀어지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농사 짓지 말라고 요구하는 나라**
정부가 나서서 농사를 짓지 말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나라는 대만과 한국밖에 없다. 말레이시아, 베트남, 중국도 유기농업에 대한 정부계획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정책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정반대로 달려가고 있다. 농업보조금을 건설보조금으로 전환하려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농업보조금이라는 개념과 그 법적 절차가 바로 루즈벨트 대통령이 실시한 뉴딜정책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은 다 잊었는가? 박정희 정권도 그린벨트와 조림지역을 만드는 최소한의 생태적 합리성을 보였다.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에는 건설 말고 도대체 뭐가 있는가?
정부가 농촌에 쓰겠다고 하는 119조 원은 부동산개발업체들과 강남 술집에 뿌려지고 있다. 농촌 어메니티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하는 것은 면소재지에 건물 몇 개와 아파트를 짓고 인근 산마다 진입로를 만든다며 도로를 까는 일이다. 농촌을 개발대상 지역으로 바꾸는 바람에 오른 땅값은 고스란히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꾼들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각 지방차지단체장들은 지방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토호들과 연합해 떡고물을 챙긴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방치한 상태에서는 국민건강, 국민경제, 국토생태, 풀뿌리 민주주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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