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대 조사위원회 최종 조사결과에 대한 황우석 교수의 반박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국민과학자'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 황 교수와 그의 연구원들, 그리고 이들을 취재하는 200여 명의 기자들에 찬·반 입장을 달리하는 시민들까지 가세해 회견장 주변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회견장 앞에선 '황우석 수호 결사대'라는 사람들이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이들은 회견장에까지 들어와 황 교수의 발언에 박수를 치고 격려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들은 전날 밤에도 광화문 지역에서 촛불을 들고 그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회견장에서 활빈단이라는 한 단체의 관계자는 황 교수를 향해 "끝없는 거짓말, 양심도 없느냐!"라고 외쳐 대조되기도 했다.
***'프리드헬름 헤르만' 혹은 '얀 헨드릭 쇤'**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1시간 가량 진행된 황 교수의 기자회견 내용은 사실 '새로운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논문을 조작한 데 대한 변명과 책임 전가, 그리고 예의 그 '줄기세포 바꿔치기' 주장이 또 한번 반복됐을 뿐이다.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최종 결론에 대해서도 "난자만 제대로 공급된다면 6개월 안에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정황 증거로 엉뚱하게 돼지 줄기세포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물론 이것이 진짜 성공한 것인지도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이런 황 교수의 모습을 1시간 동안 지켜보면서 이미 〈프레시안〉에 자세히 소개됐던 두 사람의 '사기꾼 과학자'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졌다. 1997년 독일의 저명한 생물학자 프리드헬름 헤르만이 후배 연구자 마리온 브라흐와 공저한 수십 편의 논문에서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헤르만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조작의 모든 책임을 브라흐에게 전가했다.
미국 벨연구소의 얀 헨드릭 쇤 연구원은 또 어떤가? 그는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제출한 논문의 데이터가 조작된 사실이 밝혀지고 심지어 박사 학위 논문이 취소되는 상황에서도 당당했다. 그는 "(비록 데이터를 조작하긴 했지만) 자신의 실험은 충분히 가능했으며 조만간 그의 가설이 사실로 드러날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꼭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황 교수가 보인 발언은 이 두 사람의 종합판이라고 할 만했다. 논문 데이터 조작의 원천적 책임은 서울대 연구실과 미즈메디 병원의 연구원들에게 돌리면서 동시에 '원천기술' 운운하며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기까지 했으니 황 교수는 앞의 두 '선구자'를 오히려 능가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 발짝 더 나아간 것도 있었다. 그는 '논문 조작' 사실에 대해 "그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다. 그럼 수 차례에 걸쳐 논문 조작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민들에게 사죄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언제까지 황우석에게만 매달릴 것인가**
지난 두 달간 황 교수는 수 차례에 걸쳐 국민을 기만해 왔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2005년 11월 13일부터 12월 23일까지 황 교수는 총 10번의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20일이 더 지났으니 거짓말의 회수는 훨씬 더 늘어났을 것이다.
언론과 국민들이 언제 이처럼 거짓말쟁이에게 관대했는지 기이한 일이다. 황 교수가 정치인보다도 더 화려한 화법을 구사하다보니 그를 정치인 쯤으로 착각한 것일까? 아니, 어떤 정치인도 이렇게 국민을 상대로 단기간에 말 바꾸기를 여러 번 하면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 황 교수에게 그만 매달리자. 언제까지 거짓말쟁이의 입만 쳐다보면서 일희일비해야 하는가?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통해 논문의 진위 여부가 비교적 명확히 드러났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황 교수가 제기한 각종 의혹의 실체도 명확히 밝혀질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황 교수의 '죄'가 적지 않은데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온 사회가 들썩거리는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 사회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일 터이다.
***제자까지 동원한 황우석 교수, 거짓말의 끝은 어디인가**
마지막으로 실험실에 있어야 할 연구원들을 또 다시 기자회견장에 세운 황 교수에게 묻고 싶다. 과연 그 연구원들을 위해 흘린 '눈물'에 진정성이 있었는가? 황 교수가 진정 그들을 아끼는 교육자라면 결코 그들을 그런 자리에 불러세우고 심지어 자신이 해야 할 해명을 전가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 연구원들이 회견 동참을 자청했다 하더라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말리는 것이 '교육자'의 자세였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긴 황 교수는 논문의 성과는 혼자서 독차지(제1저자와 교신저자를 혼자서 독점한 것을 보라)하려다, 결국 문제가 생기자 모든 책임을 연구원들에게 전가하고 있지 않은가?
참고로,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후배 연구자에게 책임을 전가했던 헤르만은 과학계에서 완전히 퇴출됐다. 끝까지 재연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쇤 연구원의 실험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연이 안 되고 있다. 거짓말을 즐겼던 양치기 소년도 늑대의 희생양이 됐다. 황우석 교수는 과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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