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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 아픈 생명의 숨을 불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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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율스님, 아픈 생명의 숨을 불어 보냅니다"

[기고] 높이 나는 새처럼, 빛나는…

지율 스님이 외롭게 삶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지인들도, 환경단체도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스스로의 목숨을 거는 '단식'이라는 방식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젠 기다리는 일만 남은 듯하다. 도대체 그는 자신에게 큰 일이 나더라도 눈 하나 꿈쩍 안 할 세상을 향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런 시점에서 소설가 김곰치 씨가 〈녹색평론〉에 그 간 지율 스님과 맺었던 개인적인 인연을 담담히 공개했다. 이 글은 지율 스님의 평소 진면목을 가감 없이 전달할 뿐만 아니라 지율 스님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게 한다.

〈프레시안〉은 다음 주 발행 예정인 〈녹색평론〉(제86호)에 실릴 이 글을 필자와 녹색평론사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다. 김곰치 씨는 1999년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로 제4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최근에는 생태ㆍ환경 르포를 엮은 〈발바닥, 내 발바닥〉(녹색평론사, 2005)을 펴냈다. 〈편집자〉

***다 큰 사람이 아이처럼 우는 초상집**

언젠가 그이와 함께 산에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문득 궁금하여 그이에게 물어본 말이 있습니다.

"나무가 죽는 것 말예요. 고목이 되어 땅에 쓰러지고, 벌레들한테 살이 뚫리고 퍼석퍼석해지는 것이 나무의 죽음이잖아요. 그런데 왜 끔찍하지 않고 멋스러워 보일까요?"

겨울산이었습니다. 산길에는 진행되고 있는 나무의 그런 죽음이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사람의 죽음은 왜 끔찍할까요? 우리는 시체를 보는 것만 해도 겁이 나지 않습니까? 하는 의문도 담긴 말이었습니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벌레도 마이크로 현미경으로 보면 웅장한 움직임이 있지 않나요?" 하고 그이가 말했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시체로 썩는 것도 어떤 눈이냐에 따라 멋스러울 수 있다는 것인가요?"

그이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초상집에 가면요, 대문에 들어설 때 기운이 좋아요. 참 맑아요. 알던 사람이 죽었거든요, 또는 피붙이가 죽었거든요. 어른이, 세상의 온갖 욕망에 시달리던 다 큰 사람이 아이처럼 운단 말이에요. 죽었다고, 사람 하나가 세상에서 영원히 없어졌다고 우는데, 사람이 자기 속에 가진 가장 맑은 것이, 훼손되지 않은 것이 밖으로 나온단 말이죠. 저는 우는 사람들이 참 이뻐 보였어요."

관념적이었던 제 질문을 현실적인 앎과 느낌의 땅으로 옮기던 그이의 이야기를 저는 오래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사내의 꿈을 꾸는 비구니**

언젠가 산에서 나눈 다른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좀 엉뚱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요.

그이는 평생 독신으로 살고자 결심한 사람입니다. 남자한테 여자의 마음 같은 거 주지 않겠다고 앳된 처녀 시절 부처님과 약속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진정으로 그 약속을 지키기란 쉽지 않답니다. 도시를 떠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지만, 도적 같은 사내가 있었답니다. 꿈 속을 찾아오는….

꿈에 사내가 나타날 때, 그이가 꿈속에서 어떤 장소에 있든, 자기가 바라보지 못하는 쪽에서 사내가 와서 어깨를 잡거나 뒤에서 안기도 한답니다. 그럴 때, 아, 왔구나…, 하고 알아채지만, 어쩐 일인지 사내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손길이 무척 따뜻하였기 때문에….

"그 사람이 누구였는데요?" 제가 물었습니다. "몰라요. 얼굴을 볼 수 있어야지. 난 겁이 나서 돌아보지도 못하는데…."

꿈에서 깨면 분통이 터지지만, 다시 한번만 더 꿈에 나타나라, 아주 혼쭐을 내놓을 거야, 씩씩거리며 잠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어찌 낌새를 아는지 몇 달 소식이 없고, 그러다 아예 꿈을 잊어버리고 있으면 또다시 나타나 어깨나 팔을 지긋이 잡아오고, 번번이 꼼짝을 못하는 일이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최근에도 그런 꿈 꾸셨어요?" 그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그이의 속에서, 매듭이 풀렸나 봅니다. 풀린 것은, 꿈의 매듭이 아니라, 현실 속의 정진과 성장과 깨달음의 매듭이었겠지요. 매듭이 풀린 뒤, 어느 밤 사내가 꿈에 나타났고, "나한테 이러지 마!" 하고는 앙칼지게 손을 뿌리쳤답니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그를 돌아보았답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고 해요. 그 후 다시는 사내의 꿈을 꾸지 않았다고 그이는 말했습니다. 수행은 힘든 것이구나, 꿈 하나도 받아들이기에 따라 도끼 같은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이 이야기도 저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겠습니다.

***사람의 나이를 알려주는 '손'**

그이를 처음 만난 날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제 비망록에 적어놓았는데, 2002년 2월 9일의 일입니다. 그이는 걸어서 서울로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천안 외곽의 한 다방에서 만났습니다. 그날 다른 한 분도 그이를 맞이하러 천안 시내에서 나와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환경단체의 사무장이었는데, 후줄근한 잠바 차림에 키가 아주 컸습니다. 장발이었고요.

우리는 둥근 탁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고, 분위기는 무거웠습니다. 세상이 당신들만의 것이냐, 당신들이 부산까지 빠르게 왔다갔다 하려고 왜 죄없는 산하를 해치는 짓을 하느냐, 생명의 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왜 상처와 고통을 주느냐. 그이는 서울사람들한테 따지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산을 지킬 수 있다면 감옥에 가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그이는 말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그런데 사람의 말이란 것은 만나는 자리의 주제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서로 나이를 묻게 되었습니다. 그이는 나이를 밝히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유, 뭘 그런 걸 물으세요, 처음 만난 사람한테 어떻게 나이를 가르쳐주나요, 하는 투였습니다. 평생 부처님 되는 공부를 하겠다고 한 사람도, 여자는 여자인가봐, 하고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런데 천안에서 마중나온 분이 자기는 갓 서른을 넘겼다고 했을 때, 그를 처음 볼 때 마흔쯤으로 본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의외의 큰 발견이라도 한 듯 과하게 놀라는 저를 가만히 지켜보던 그이가 말했습니다.

"얼굴만 보면 속아요. 손을 보셔요. 손은 못 속여요. 저는 이분 처음 볼 때 손 보고 나이를 알아봤는데요." 그럴싸하게 들리는 말이었는데, 왠지 저는 그이가 깍쟁이같이 느껴졌습니다. 끼어들어 아는 체 하는 것이, 산속에 오래 살았어도 인생의 온갖 잡다한 지혜를 많이 알아요,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이의 손으로 시선을 주었습니다. 재주가 많아 보이는 작고 날렵한 손이었습니다. 그이는 얼른 탁자 밑으로 손을 내립니다. 손을 숨기는 모양이 장난기가 가득하였습니다. 제게는 이런 작고 예쁜 그이의 기억들이 많습니다.

***지율이 마지막까지 믿는 것**

그이를 일러 누군가는 "우주에서 제일 깡다구가 센 사람"이라 하더군요. 백일 동안 단식 수행을 하면서도 자기를 잃지 않는 것을 보고 그리 생각한 모양입니다. 사실 그이는 천하의 바보입니다.

18살에 머리를 깎고 산에 들어갔다가 2년 만에 환속을 했다고 하지요. 그 후 4년 정도 이 나라 강산을 원 없이 유람하였다고 해요. 그리고 다시 머리를 깎고 20년 가까이 산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이가 이번에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생명의 산을 해치지 말라고 외치기 위해서였지요. 그이는 세상물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그이는 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었습니다. 처음 상대한 사람들은, 산을 직접적으로 해치려 하는 당사자였습니다. 즉 철도를 개설하려는 자들입니다. 서울에 있는 그들에게 따지러 가는 길에 저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 산에 와보신 적이 있나요? 부산에 사시면서 아직 안 와 보셨어요? 꼭 와보세요. 정말 아름다워요. 터널공사를 하려는 분들도 막상 우리 산에 오셔가지고는 햐, 이 산을 뚫어야 하나, 하고 영 못 내켜 하셨거든요." 그만큼 산이 아름답다는 말이면서, 지도와 설계도만 보고 철도를 만들려고 해서 그렇지 직접 산에 와 보게 된다면, 공사판 사람들도 인간일진대, 인간이라면, 그 아름다운 산을 차마 해치지는 못할 거라고 그이는 믿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선의와 진심을 믿는 것, 그런 바보 같은 믿음이 그이를 겁없이 세상에 나오게 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라의 임금'이 되겠다는 사람이 산을 해치지 않겠다고 종이에 써서 약속한 것도 그이는 믿었습니다. 그런 종이쪽지의 약속을 "공약(公約) 아닌 공약(空約)"이라고 해서 의심부터 하는 게 세상사람들의 습성인데, 그이는 '임금'이 하는 약속인데 그 약속을 믿지 않으면 대체 누구의 약속을 믿냐고 구원처럼 반겼습니다. 그이는 자신의 손을 잡아준 정치인의 선의와 정의감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후에도 그이는 믿었습니다. 환경단체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들의 선의와 의지를 믿었습니다. "나처럼 목숨 걸고 산을 지키주실 거야" 하고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그이는 계속 믿었습니다. 정론직필을 말하는 신문과 방송 기자들이 가졌을 정의감, 투철할 것이 틀림없을 그들의 직업정신을 믿었습니다. 그이는 서슬퍼른 법관을 믿었습니다. 지조 있는 법관, 마지막 정의의 보루가 굳건히 있으니, 이젠 괜찮다며 "우리 판사님, 우리 판사님" 하고 수없이 뇌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이는 최선을 다해 믿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인 우리는 그 믿음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이의 믿음은 차례로 깨어져 갔습니다. 결국 그이가 믿을 것이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게 되고 맙니다. 아니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천하에 홀로인 자기 자신입니다.

***보름 동안 먼지를 뒤집어 쓴 초콜릿**

그이와 심하게 다툴 때가 생각납니다. 그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작년 겨울, 저는 그이의 단식 수행을 말려보려고 상경하였었지요. 그 때가 백일 단식수행 중 40여 일이 지났을 때입니다.

우리는 한참을 옥신각신하였습니다. 마침내 저는 "제발 그만 하시라고 하는 제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왜 몰라줍니까?" 하고 얼굴이 벌겋게 되어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가시돋친 반문이 돌아왔습니다.

"피를 나눈 여동생도 제 결정을 따릅니다. 당신이 뭔데 하라 마라예요? 목숨이라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제 마음은 모르시겠어요?" 제 고약한 성질이 폭발하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키고 만 것입니다. "더 이상 드릴 말이 없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두 다리로 서니 저의 시선은 순간 높은 위치가 되었습니다. 앉은뱅이 탁자에 바짝 붙어 앉은 그이가 내려다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마음은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는 거친 제 언사에 "가세요! 그런 말 하려거든 다시는 오지 마세요!" 하고 그이가 더 격하게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노트북에 눈을 준 채 새근새근 숨만 쉬고 있는 겁니다. 작은 몸피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막되게 굴었어도, 아, 이런 나를 내치고 싶지 않으시구나…. "가세요!" 하고 성질을 부리지도 못 하시는 그이가 안타까웠습니다. 그만큼 단 한 사람의 도움도 아쉬운 형편이었습니다. 저는 힘없이 주저앉아 한숨을 쉬며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새 목소리는 부드러워져 있었습니다.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제가… 몇 시에 다시 찾아오면 됩니까?" 제 말이 엉뚱한지 그이는 힐끗 저를 보았습니다. "누가 옳은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혹시 압니까. 오늘밤 자다가 하느님 꿈이라도 꾸고 계시를 받고 각성을 해서 내일 다시 와 제발 단식 하십시오, 계속 하십시오, 마음껏 하십시오, 하고 응원할지 어떻게 압니까."

유머가 있는 말에 그이는 미소를 짓더군요. "저는 절대 죽지 않아요. 산이 살아 있는데 제가 왜 죽습니까. 산이 살아 있는 한, 저는 죽지 않아요. 제가 지금껏 이리 싸워 온 것도 다 산이 주는 힘이 있어 할 수 있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방의 천장을 망연히 올려다보고, 그런데, 저는 불쑥 딴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하고 약속을 해요." "무슨 약속…?" "단식을 계속하되… 오늘부터 곡기를 취하세요. 하루에 한 끼 정도만 곡기를 취해주세요. 그러니까 단식을 계속 하십시오. 그러나 곡기를 취해주세요. 이 약속만 하시면, 저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이는 다시 노트북에 눈을 돌렸습니다. 제가 하고도 "이 무슨 악마의 말인가?" 하고 순간 당황했습니다. "아, 혹시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신 겁니까?" 당혹감을 지우려, 이미 그러고 있다면 천만다행이라고 어색하고 과장된 너스레를 떨어보았습니다.

그이가 마침내 말했습니다. "저기…책상 위를 보실래요." 여러 잡동사니가 놓인 낡은 책상이 방구석에 있는데, 데스크탑 컴퓨터의 모니터 밑에 초콜릿이 한 개 있었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아몬드가 들어 있는 초콜릿입니다. 그이가 아주 어려운 말을 해주었습니다.

"보름 전에 제가 이 집에 올 때… 있었어요. 아는 사람 편으로 잠시 비어 있는 이 방을 빌렸고, 내일은 다른 데로 가야 합니다. 집주인한테 급한 사정이 생겨서…. 아무튼 혼자 이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요. 저게 눈에 들어오지요. 물론 제가 취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저렇게 있어요. 치우지 않습니다. 저 자리 그대로 먼지를 쓴 채 처음 들어온 날부터 지금까지 있어요. 제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저는 치우지 않아요. 아시겠어요?"

***결국 이루지 못한 지율의 옛 이야기**

단식을 하되, 숨어서 곡기를 취해달라는 말에 그이는 제 의심의 깊은 곳을 짚으며 그렇게 말했고, 그때가 작년 겨울이었고, 그리고 제가 그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 추석 무렵입니다. 어떻게 연락이 닿아 부산 식물원 앞으로 갔습니다. 그이는 어느 허름한 가정집 2층에 있었고, 충주에 산다는 여동생이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동생은 고속버스를 타러 집을 나서는 길이었습니다. 주말에 언니를 보러 왔고,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죠.

여동생이 돌아간 뒤, 우리는 오랜만에 밀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연초에 구두로 한 약조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그이를 만나러 간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약조는 이렇습니다.

"공동조사가 시작되더라도, 저와 때때로 만나, 당신께서 어떻게 살아 왔는지, 소녀 시절, 처녀 시절은 어땠는지, 어쩌다 불문의 길에 들었는지, 그런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해주십시오. 그것을 잘 풀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단행본으로 내서 사람들한테 읽히고 싶습니다" 하는 것이었죠. 시중의 한 출판사와도 이미 이야기가 돼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흥미 위주로 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요. 보다 이 사회의 거시적인 미래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라며 반대하더군요. 저는 설득했습니다. "청정한 산을 함부로 해치는 지금의 일처럼, 지금 이 사회에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것도 다 세상과 인간사를 어리석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요? 지혜로 밝아지면, 이런 문제가 안 생기고, 생기더라도 보다 부드럽게 해결되겠죠.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런 지혜가 생기죠? 세상을 밝게 알려면 어째야 하죠? 저는, 단 한 사람에 대해서라도 아주 깊게 제대로 이해하면 그런 지혜가 생겨난다고 생각해요. 지혜는 사람 하나를 이해하면서 흘러나와 자연스레 세상 전체로 향해 퍼질 것 같아요." 그이를 놓고 세속에서 엄청난 오해와 불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만 제대로 밝혀놓아도 결국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밝게 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말에 그이는 "알겠습니다" 하고 승낙하셨지요.

연초의 그 약조가 몇 개월째 밀리고 있었고, 사실 그것은 제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었는데, 아무튼 지난 추석 무렵에야 제가 불쑥 나타나선 "더는 늦출 수 없습니다. 저와 조용한 콘도에 열흘 가량 투숙합시다. 그리고 정말 치열하게, 또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눠봐요"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이는 제 말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떤데, 더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최악인데, 책은 무슨 책! 짜증이 잔뜩 어린 말이었습니다. 단 1초도 생각하지 않는, 즉각적인 거부의 말을 듣고 저는 당황했을 뿐 아니라 마음이 상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제가 말씀드린 것을 잘 생각해 보세요." 저는 등을 돌려 방에서 물러나왔습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베란다 창에 손을 짚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말대로 그이의 산이 '최악의 상황'인 것에 저도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산의 운명을 둘러싼 결정적인 문제가 이제 그이의 손을 떠났다! 하고 저는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환경공동조사에서 그이는 빠져나와야 했고, 조사는 전공이 다양한 '전문가'들에 의해 진행될 것이고, 조사가 끝난 뒤 보고서 작성에도 그이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습니다. 양측의 조사결과를 놓고 전체 회의를 하겠지만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모든 보고서는 대법원에 제출하게 돼 있고, 산의 운명을 다시 '대법원 판사'들이란 전문가들이 결정을 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근거를 하나하나 다 대기는 힘들지만, 전문가의 손에 맡겨진 산은, 그이의 비원과는 정반대의 결론에 이를 것이라고, 아니 전문가의 손에 맡겨진 순간, 산의 운명은 끝났다, 천재지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산을 뚫고 철도를 내는 일은 기정사실이다, 라고 저는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이를 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이렇게 판단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산에 아주 장대한 콘크리트 터널이 뚫리더라도, 그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도 곁에 남게 하자, 사람들에게 그이의 속깊은 이야기를 소상히 알게 하자, 같이 미래의 실천을 위해 힘과 마음을 모을 사람들, 이들의 존재 말고는 다른 유의미한 그 무엇도 없지 않은가, 그럴 수 있는 한 권의 책, 그러나 이 제안을 그이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저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그이는 다음날부터 낙동강 순례를 떠날 거라고 합니다. 누구와 가냐고 하니 혼자 간다고…. 아마 당신 마음의 소리를 들으러 가는가 보다, 하고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그날 한번도 그이의 밝은 표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말 곳곳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몸이 정말 많이 안 좋으시구나, 하고 저는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말하고는 방에서 물러나왔습니다. 그것이 그이를 본 마지막 날입니다.

***석 달 만에 접한 지율의 소식**

그후 석 달이 지나 인터넷 뉴스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이는 "12월 8일에 경기도 여주 신륵사를 떠나 여동생이 사는 충북 충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동생 집에 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고, 여동생은 기자에게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나도 언니가 신륵사를 떠났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언니와 나눈 마지막 통화에서 여동생은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많이 아프다. 음식을 못 삼키겠다"고 몸상태를 전하는 언니의 말을 들었다고 했으며, "9월 중순께 부산 사무실을 떠나 지금까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자연순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안다. 보름 전 서울에서 만났을 때도 특별히 당부한 말은 없었다. 현재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 않지만 향후 해야 할 말이 있을 때가 되면 언니는 분명히 (앞에 나와) 말과 행동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제가 읽은 기사의 마지막에는, 그이가 "터널공사 과정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시공사로부터 고소돼 검찰에 불구속기소됐지만 울산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치 않고 자취를 감춰 현재 법원으로부터 구금영장이 발부된 상태"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 주일쯤 지났습니다. 신륵사에 있을 때의 그이 모습을 찍은 사진 한 장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몸무게가 30Kg쯤이라고 하는데, 삭정이와 같은 몰골이었습니다. 말을 하다가도 의식을 잃거나 동공이 풀리기도 한다는 것이고, 신체기능 중 콩팥 기능은 거의 정지 상태라고 하고, 하반신을 쓸 수 없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씹어먹을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물을 마실 터인데, 그렇다면 소변을 다른 누군가가 받아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그이를 마지막으로 본 추석 무렵 이후, 그이는 단식 수행을 시작했다는 겁니다.

왜 숨어서 단식수행을 했을까요? 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계속 숨어서 하지 왜 결국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도 저는 알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것에 대해 말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이 알려주는 소식이 아닌, 여동생이 직접 그이의 소식을 담은 편지를 보내온 것은 바로 그제의 일입니다. 저한테만 보낸 게 아니라 '초록의 공명'에 뉴스레터를 신청한 모든 이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오늘은 경북의 작은 토굴에 머물고 있는 스님 언니를 만나고 왔습니다. 차마 안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기운이 쇠진해져 30Kg 남짓한 몸은 마비가 오고 눈은 침침하지만 틈틈이 정신을 가다듬고 기도 정진하며 보내는 이 시간들이 4년간 산을 지키자고 싸워온 시간 중에 가장 호강스러운 하루하루라는 말에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습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도 많고 좋은 분들도 너무 많았는데 걱정만 끼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못 드리고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대신하여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함께하는 마음을 나누어 주세요. 기도하여 주세요."

***"녀석들아, 그래, 나 안 죽었어."**

불을 끄고 따뜻한 이부자리에 들어가 누우니, 방안 허공으로 까마득히 먼 옛날만 같은 어느 하루가 떠오릅니다. 산에서 그이와 하루를 보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 산행은, 그이가 처음으로 긴 굶주림을 겪고 난 뒤, 회복기의 몸일 때였습니다. 2003년 초여름께입니다. 그이도 몇 달 만에 산에 오른다고 했습니다.

산에서 우리는 비를 만났습니다. 한군데 더 둘러볼 곳이 있었지만 취소하고, 급히 하산길에 들어섰습니다. 산은 물기에 푹 젖어 버렸습니다. 저는 서툰 산행인이라 걸음이 자꾸 허적거리는데 그이가 뒤에서 몇 번이고 "조심해요!" 하고 외쳐야 했습니다. 작은 개구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내 인생의 수많은 지난 날에 그래도 몇 번은 비가 오는 산에 있어 보았는데, 이렇게 산길로 뛰어드는 개구리의 잦은 출현은 처음이었습니다. 엄지보다 작은 개구리입니다. 등은 녹색이고, 배가 빨갰습니다. 등의 우툴두툴한 것에 독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혹시 개구리들이 비가 와서 신이 났고, 그래서 지금 생명의 약동을 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얘네들, 갑자기 왜 이래요?" 사람 발길에 밟혀 죽을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이는 웃습니다. "비가 온다고 신이 나서 이럽니까?" 사람 발길에 밟혀 죽을지도 모르고, 또 한번 생각했습니다. 그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랜만에 왔다고 나한테 지금 인사하는 거야. 그래, 착하지. 아, 조심해요!"

결국 산의 미세한 움직임에 눈이 밝은 그이가 앞장서고 저는 뒤에 섰습니다. "녀석들아, 그래, 나 안 죽었어, 많이 기다렸어?" 폴짝거리는 개구리한테 그이는 연신 인사말을 던지며 하산하는 것인데, 뒤에서 따라가면서 모습을 보자니 정말 개구리들이 뛰어나와 인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의 그이 모습이 캄캄한 방 안에서 너무 아름답게 떠올랐습니다.

***당신의 영혼을 생명붙이들은 사랑합니다**

산에서 본 개구리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겠습니다. 이것만 하고 이 글을 접겠습니다. 지난 초여름 어느 날, 아침 일찍 산의 계곡으로 올라갔다가 본 개구리 이야기입니다.

산 중턱의 절을 지나 등산로를 5분 가량 올라가다 우리는 별 생각없이 계곡 안으로 들어갔습니다.(참, 그날의 동행인은 그이가 아니라 사진을 찍는 기자 한 분이었습니다.) 큼직한 바위 곳곳에 웅덩이가 있고, 물이 고여 있는데, 한 웅덩이 가까이 갔을 때 무엇인가 물 속에서 쏜살같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십 마리의 까만 "올챙이!"들이었습니다.

웅덩이의 수면은 이내 잠잠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웅덩이 주변에서 계속 서성거렸습니다. 그러자 개구리 한 마리가 두 눈을 빼꼼 내미는 것입니다. 역시 엄지만한 크기인데, 제가 예전에 밟아버릴 뻔한 것과 같은 종일 겁니다.

우리 새끼들이 왜 이러나, 하고 어미가 정찰을 나온 것이겠지요. 기자가 개구리를 향해 카메라를 가져갔습니다. 큰 그림자가 자기를 덮치자 개구리는 놀랐는지 수면 위로 나와 폴짝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자가 따라가며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러는 새 다른 쪽 수면에서 한 마리가 새로 나타났습니다. 역시 수면 위를 폴짝거립니다. 기자가 이놈 저놈 따라가며 계속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어느 순간, 개구리는 물 밖으로 뛰쳐 나왔습니다. 그리고 바위를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다른 한 마리도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합니다. 아무래도 이상했습니다. 왜 컴컴한 물 속에 숨지 않을까. 웅덩이에는 지난 겨울의 나뭇잎이 많이 있습니다. 올챙이들이 이미 밑에 숨어들었고, 어미 개구리도 거기 숨으면 딱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위 위로 자기를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짓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 개구리의 포식자라면 당장 먹잇감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문득 소스라치듯 놀랐습니다. 언젠가 들은 적 있는 바닷속 물고기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물고기는, 사나운 포식자가 오면 알이나 새끼한테서 떨어져 포식자 앞으로 뛰어든다는 것입니다. 저를 잡아먹어요, 배를 채우세요, 새끼들은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눈앞의 개구리도 그런 놀라운 모성의 이치에 따라 행동한 것입니다. 아니, 물론 다른 여러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저는 그렇게 믿고 싶었고, 개구리의 행동에 마음껏 놀라고 싶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놀랍고, 아니 언제든 새끼를 위해 그런 행동에 돌입할 수 있는 그들의 본성이 놀라웠습니다. 등에 혹이 울룩불룩한 개구리가 불보살처럼 빛나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왜 산에 사는 작은 개구리와 같은, 생사에 초연한 사랑의 능력이 없는 것일까요. 아니, 있었는데, 어느 시간대에서 어쩌다 그것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그제 밤, 그이의 여동생이 제게 보낸 편지 말미에 붙어 있던, 짧은 글이 떠오릅니다. 언제 그이가 쓴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경북의 어느 토굴에서 있다는 그이의 심사를 짐작할 수는 있었습니다.

천성의 정상에서
해오름을 보았습니다
어둠에 갇혀 있던
생명들을 향해 빛이 온화하게
번져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요한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구름 위로 날아가는
한 조각 빛을 보았습니다
아침마다 들창으로 찾아오던
밝은 빛들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빛들을 안고
높이 나는 새처럼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초록의 공명―지율 합장.

마지막으로 그이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세상 인간들이 모두 "이제 그만 하라고, 죽음으로 사람들을 협박하는 것에 재미붙였냐고, 차라리 그만 죽어버리라고" 손가락질을 한다고 하여도, 산의 작은 개구리들은, 아니, 말이 없는, 말을 모르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붙이들은, 당신한테, 살아요, 우리 같이 살아요, 하고 아픈 생명의 숨을 불어 보내고 있습니다. 높이 나는 새처럼, 빛나는 당신의 영혼을 생명붙이들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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