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진위 논란이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결국 2005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서 확립했다고 주장했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황 교수는 계속 '원천 기술' 운운하고 있지만 2004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은 물론 영롱이부터 스너피에 이르는 그의 복제 연구 성과까지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얘기에 계속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회의적이다.
돌이켜보면 결코 쉽지 않은 50일간이었다. 특히 MBC가 취재윤리 논란에 굴복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사실(fact)'을 쥐고 있던 〈PD수첩〉의 방영을 포기한 12월 5일부터 1주일간은 피가 마르는 시간이었다. 이 사안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던 일부 매체들마저 급격히 태도 전환을 하는 시점에서 한 누리꾼의 표현대로 "고래들의 싸움이 끝났는데도 새우가 혼자서 칼을 들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창간 4년을 갓 넘긴 〈프레시안〉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벅찬 싸움이었다. 하지만 '사실'과 '관점'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프레시안〉의 취재 및 보도내용을 따라가면서 이 전대미문의 스캔들을 재조명하고 그 과정에서 되새겨볼 몇 가지 문제의식도 발굴해본다.
***'거대한 권력' 황우석 몰락의 시발점**
사실 〈프레시안〉 지면에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 소개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4년 2월 최초로 〈사이언스〉 논문이 발표된 뒤부터 이 연구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조명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호들갑스럽게 온갖 의혹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이미 난자 출처, 영롱이나 '광우병 내성 소' 등 황 교수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들이 뭔가 석연치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또 줄기세포 연구의 성과를 황 교수가 지나치게 '과장'하며 여론몰이 하고 있는 것도 과학계에서는 빈축을 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황우석 교수는 이미 '거대한 권력'이자 '우리 시대의 터부' 같은 존재였다. 세대와 좌우를 막론하고 그에 대해 딴죽을 거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인지 그의 연구가 갖는 문제점들에 대해 수근거리는 목소리들은 계속돼 왔고, 그 가운데 일부는 〈프레시안〉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지만 거의 반향을 얻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2년 가까이 계속되던 중에 미즈메디병원을 비롯한 강남의 불임 시술 병원이 난자 매매와 연루됐다는 사실이 올해 11월 초 밝혀졌다.
황 교수 연구에 쓰인 수많은 난자가 어떻게 확보됐는지 실마리가 잡히는 순간이었다. 미즈메디병원을 통해 매매된 난자가 황 교수팀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이미 10월 뜻밖에도 "민주노동당이 우리가 연변 처녀 난자를 매매해 연구에 사용한다고 얘기하고 있다"고 언급해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임을 시사했던 터였다.(☞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007105341&s_menu=사회)
***국면마다 '관점' 제시한 이형기 교수의 글이 큰 도움돼**
이렇게 매매된 난자가 황 교수 연구에 사용됐다는 의혹이 점점 힘을 얻어가던 시점에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공동저자였던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교수가 난자 취득 과정상의 문제를 이유로 11월 돌발적인 '결별 선언'을 하게 된다. 사실 난자 취득 과정을 둘러싼 문제는 이미 2004년 5월 〈네이처〉가 문제제기를 한 터였다. 물론 이 문제제기는 국내 언론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프레시안〉은 다시 한번 〈네이처〉의 문제제기를 복기하면서 난자를 제공한 연구원이 석연치 않게 모 의대 교수로 임용된 사실(☞ 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115172103&s_menu=사회),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2004년 논문의 공동저자로 실린 것과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점(☞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114181834&s_menu=사회) 등을 보도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형기 피츠버그대 교수의 연이은 기고는 윤리 문제에 대해 적절한 '관점'을 유지하면서 보도를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이 교수는 도대체 과학 연구에 있어서 윤리가 왜 중요한지 국면마다 조목조목 짚어줬다. 과학적·철학적 성찰을 바탕에 깔고 제시된 이 교수의 기고는 국내의 의학계와 과학계에는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결국 이 교수와 맺은 인연은 줄기세포 진위 논란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고 〈프레시안〉뿐만 아니라 국내 언론 전체의 논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이형기 교수의 기고 보기)
***윤리 문제에서 줄기세포 진위 논란으로 급선회**
결국 11월 22일 황 교수 연구의 난자 출처를 둘러싼 논란을 〈PD수첩〉이 보도했고 그 동안 이와 관련한 의혹을 계속 부인해 오던 황 교수는 24일 대국민 사과 및 공직 사퇴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날 황 교수의 대국민 사과 내용마저 이제는 상당 부분 거짓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MBC 등에 대한 적대적인 여론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서 〈PD수첩〉의 광고 중단 사태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으니까. 하지만 노 대통령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논란의 초점을 줄기세포 진위 논란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MBC 〈PD수첩〉이 줄기세포 진위 논란에 대한 취재를 계속 해 왔고 그 내용이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온갖 억측이 제기되는 1주일이 흘러갔다. 최근 한 언론사 기자가 "〈프레시안〉은 〈PD수첩〉과 상당 부분 사실을 공유하고 있어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그 상황에서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항변했다는 소식에 잠시 황망했다. 사실 이 국면에서 〈PD수첩〉이 확보한 여러 가지 사실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몇 가지 경로로 이미 언론계에는 상당 부분 공유가 됐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프레시안〉이라고 해서 별도로 더 많은 정보를 〈PD수첩〉으로부터 확인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 역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하나하나 사실을 확인했고 그 사실들을 토대로 점차 '진실'에 대한 확신을 굳혀간 것뿐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 수많은 DNA 지문분석 기관을 두고 굳이 전라남도 장성의 후배에게 DNA 지문분석을 부탁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201120752&s_menu=사회) 또 과학계의 검증을 강조한 것도 〈프레시안〉으로서는 이러저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진실'을 재구성한 상태였기 때문이다.(☞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203134533&s_menu=사회) 똑같은 사실들을 보고도 '건전한 상식'을 바탕으로 '진실'을 재구성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언론의 모습은 낯 뜨거울 뿐이다.
***피가 마르는 1주일의 '기록' : 4건의 '사실'이 던진 파장**
상황은 더욱 가팔랐다. 12월 4일 YTN이 MBC 〈PD수첩〉의 취재 방식을 문제 삼는 보도를 내보내면서 사실상 상황이 종료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더구나 가장 많은 '사실'을 쥐고 있는 〈PD수첩〉마저 프로그램 존폐 위기에 처하는 마당에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진실은 묻히는가? 답답했다. 이날부터 1주일간 사실상 이번 사태의 방향을 결정짓는 '대반전'이 진행됐다.
5일 아침,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해서 이메일을 확인하자마자 "강 기자님! 이것 꼭 확인하세요," "꼭 기사화해주세요," "제보입니다" 등의 제목을 단 정확하게 10개의 메일이 목록에 떴다. 대부분 국내외의 생물학 관련 교수 및 박사 과정 학생들의 메일이었다. 황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부속서(supplement)에 실린 11개의 줄기세포를 찍은 사진들에서 '중복 사진'이 발견됐다는 제보였다. 분명히 같은 줄기세포를 찍은 사진인데 다른 줄기세포를 찍은 사진으로 올라와 있다는 것.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부속서의 사진은 논문 근거 데이터의 진위를 증빙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논란의 발단이 됐던 곳은 한국과학재단 지정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한 게시판. 평소에도 젊은 생명과학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한 주일에 한두 번 정도 들락거리던 이 게시판의 원래 용도는 젊은 생명과학자들의 구직과 그에 따른 정보와 애환을 공유하던 곳이다. 말 그대로 생명과학계의 사이버 비정규직 인력시장인 셈이다. 비록 월 수십만 원에 노동력을 파는 신세이지만 이들의 실력만은 세계 수준이었다. '무명씨(anonymous)'의 줄기세포 사진에 대한 의혹 제기는 이미 수십 명의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 사실로 확인돼 있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자문을 받아 온 몇몇 생명과학자들과 토론도 진행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바로 데스크에 보고하고 기사화했다.(☞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205124317&s_menu=사회)
기사의 반향은 컸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황 교수팀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많은 사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몇 장의 사진이 잘못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문제를 발견해 〈사이언스〉에 정정 신청을 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하지만 나중에 드러난대로 이런 황 교수팀의 해명은 거짓말이었다. 2주 뒤 〈사이언스〉는 "BRIC 게시판에 줄기세포 사진과 관련된 의혹이 최초로 제기된 것은 한국 시각으로 12월 5일 새벽이며, 황 교수가 이 사실을 이메일로 〈사이언스〉 편집실에 알린 것은 한국 시각으로 12월 5일 오후 1시 29분"이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팀은 사진과 관련된 의혹이 제기된 뒤 한 나절이 지나서야 〈사이언스〉에 통보했던 것이다.
같은 날 오후, 우연히 MBC 〈PD수첩〉이 실시했다는 2번 줄기세포와 그 원주인의 DNA 지문분석 결과를 입수했다. 〈PD수첩〉에 확인한 결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검사 결과와 동일한 것이었다. 황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런 자료는 '가뭄에 단비'였다.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 동안 〈PD수첩〉이 황 교수의 줄기세포 진위 논란에 불을 지필 만큼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5일 제시된 '중복사진'의 문제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과학적 근거라면 '마음 독하게 먹고' 제시해볼 만한 일이라고 판단됐다. 6일 2번 줄기세포의 DNA 지문분석 결과를 공개했다.(☞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206111659&s_menu=사회)
같은 날 세상의 관심은 온통 난자 기증을 약속한 1000명 여성과 황 교수 팬들이 그의 조기 복귀를 기원하며 서울대에 뿌려놓은 진달래 꽃잎에 집중돼 있었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이 이벤트는 황 교수가 한 이벤트 대행업체에 의뢰해서 기획된 '쇼'였다.) 이런 상황에서 〈PD수첩〉이 방영할 수 없었던 자료를 보도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긴 이미 맞을 대로 맞아서 더 이상 맞을 역풍이 남아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예상대로 2번 줄기세포의 DNA 지문분석 결과는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것은 시료가 오염됐다는 황 교수 측의 '비과학적'인 해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쓴 대다수 언론의 공이었다. 그러나 〈프레시안〉의 접근방식을 헤아려주는 전문가 집단이 없지 않았다. 같은 날 한 젊은 생명과학자가 역시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부속서에 실린 DNA 지문분석 결과에 대한 설득력 있는 문제제기를 보내왔다. 그 핵심은 줄기세포와 체세포의 DNA 지문분석 결과 나온 피크의 높이, 모양 등이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DNA 지문분석은 두 개의 상하 결과를 수직으로 비교했을 때 위치가 똑같은지로 '일치/불일치' 여부를 따진다. 그런데 서로 다른 시료를 쓰다보니 위치는 같더라도 피크의 높이, 모양, 배경의 노이즈는 '신의 손'이 아닌 이상 매번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DNA 지문분석 결과는 피크의 높이, 모양은 물론 배경의 노이즈까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이 생명과학자와 몇 차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또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으면서 이 문제제기도 '진실'로 인도할 중요한 '사실' 중의 하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프레시안〉의 내부검토 과정과는 별도로 이미 BRIC 게시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심스럽지만 '희귀한 DNA 지문분석 결과'라는 데에 대개 의견이 모아졌다. 개별적으로 접촉한 몇몇 전문가들은 한 개의 DNA 샘플을 이용해 2개의 결과를 낸 뒤 각각 '체세포 DNA 지문분석 결과'와 '줄기세포 DNA 지문분석 결과'로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틀간의 준비 끝에 결국 8일 기사를 냈다.(☞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208140338&s_menu=사회)
이 보도에 대해서도 국내 언론은 또 한차례 침묵했을 뿐이지만 정작 반향은 다른 데서 왔다. 9일 니콜라스 웨이드라는 〈뉴욕타임스〉 기자가 메일을 보내왔다. "한 재미 과학자가 당신이 쓴 8일자 기사를 가서 볼 것을 권했다. 나는 한글을 읽을 줄 모르지만 기사에 첨부된 DNA 지문분석 결과만으로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사안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당신의 기사도 번역해서 볼 생각이다." 니콜라스 웨이드가 누구인가? 그는 〈네이처〉의 편집인 출신으로 이미 1983년 『배신의 과학자들(Betrayers of the Truth)』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기자다. 과학자의 부정행위를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베테랑 기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관심은 국외뿐만이 아니었다. 9일에는 서울대의 생명과학 관련 소장 교수들이 정운찬 총장에게 황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했다. 이들 교수들도 이구동성으로 '논문에 첨부된 DNA 지문분석 결과에 의구심이 제기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10일은 또 다른 '반전'의 날이었다. 새벽에 메일을 열자 정확하게 24통의 제보가 들어와 있었다. 공교롭게도 24통의 제보는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사이언스〉 논문의 줄기세포 사진들 중에서 중복된 것 3쌍을 추가로 더 찾았다는 것이다. 이미 BRIC 게시판에는 새로 발견된 중복 사진들에 대한 검증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미 여러 가지 '사실'들이 의미하는 것을 알고 있던 입장에서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210112223&s_menu=사회) 이어서 〈뉴욕타임스〉의 웨이드 기자가 이 문제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다루는 기사를 내보냈다. 사실상 〈프레시안〉의 문제제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그날 오후 YTN에서 '폭탄'이 터졌다. YTN이 "황 교수의 지시로 〈사이언스〉 논문에 실릴 사진을 불려서 더 많이 찍었다"는 김선종 연구원의 증언을 이형기 교수의 사적인 이메일을 근거로 보도한 것. 9일 MBC가 아닌 '제3의 인물'에게서 김선종 연구원의 증언 녹취록을 입수한 뒤 기사를 다 써 놓았던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12일(월요일) 아침에 발행할 예정이던 기사를 급박하게 10일(토요일) 저녁 시간에 바로 올렸다. 다른 매체 기자의 표현대로 "회심의 대반격"이었다.(☞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209180139&s_menu=사회)
녹취록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점차 드러나는 '진실'에 다급했던지 황 교수팀은 11일 '황우석 죽이기 4대 의혹'이라는 원색적인 딱지를 붙인 반박문도 내놓았다. 그 4건은 모두 〈프레시안〉이 그 직전 '피가 마르는 1주일' 동안 제시했던 바로 그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황 교수는 같은 날 노정혜 서울대 연구처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논문에 대한 재검증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끝났다' 싶었다. 마지 못해서 그랬겠지만 황 교수측이 직접 재검증을 요청한 이상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이고, 논문 내용의 재검증 절차가 착수되면 그 뒤는 정말 전문가들의 영역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생각도 새 주간이 시작되면서 꽤나 순진한 것이었음이 금방 확인됐다.
12일 조간 신문들을 포함해서 한 주일 내내 계속된 '함량 미달'의 황 교수측 반박과 이를 그대로 나열하는 보도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나마 극소수의 몇몇 언론이 황 교수에 대한 전적인 신뢰에서 약간 후퇴해 '중립지대'쯤으로 옮아와 연구 성과가 안고 있는 의문점들을 조심스럽게나마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상황이었다.
이와 함께 12일 1쌍의 중복 사진이 더 발견돼 총 9쌍의 서로 다른 줄기세포 사진이 중복된 것으로 확인됐다.(☞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212144232&s_menu=사회) 그 뒤 유사한 문제제기가 계속됐다. 말하자면 이 한 주간은 그 전 주간 〈프레시안〉 혼자 문제제기하던 상황이 '재검증' 국면으로 넘어가면서 의문과 해명이 부족하나마 균형을 갖춰가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드러나는 진실들, 황우석 '거품'이 터지다**
그리고 13일 피츠버그대의 한 지인으로부터 이메일 제보가 있었다. "피츠버그대가 황우석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을 검증한 결과 100% 조작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황 교수의 이전 논문에 대해서도 검증에 착수했다"는 것이었다. 피츠버그대에 공식 확인을 요청하던 14일 섀튼 교수가 〈사이언스〉와 논문의 공동저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논문의 공동저자 명단에서 이름을 빼줄 것과 논문을 취소할 것"을 요청한 사실이 국내에 알려졌다. 피츠버그대와 〈사이언스〉 편집인에게 국내 상황을 계속 전달하고 반응을 취재해 온 〈뉴욕타임스〉의 웨이드 기자도 같은 내용을 알려 왔다. 그는 "한국의 젊은 생명과학자들과 기자가 큰일을 하고 있다"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15일 결국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는 결정적인 '사실'이 확인됐다. 〈사이언스〉 논문에 쓰인 사진 중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를 찍은 사진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이 것은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11개의 줄기세포 중 상당수가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불임 시술을 하고 남은 수정란에서 추출하는 이 줄기세포는 환자의 체세포 핵을 이식해 만든 복제 배아에서 추출하는 '환자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215102401&s_menu=사회)
이런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진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노성일 이사장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11개의 줄기세포의 대부분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해 온 나라를 '공황' 상태로 몰고 갔다. 그는 더 나아가 "애초에 11개 줄기세포 중 상당수(9개 정도)는 가짜"라는 주장도 했다.(☞기사 보기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1215190202&s_menu=사회)
4일 YTN의 '취재윤리' 보도로 이뤄진 '반전'이 10일 〈프레시안〉의 김선종 연구원 녹취록 보도를 통해 다시 한번 뒤집어지고 15일 노성일 이사장의 발언으로 사실상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마치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긴박한 10일간이었다.
***여전히 계속되는 황우석의 '거짓말'들**
황 교수의 줄기세포를 둘러싼 논란은 그로부터 보름이 넘도록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현재의 상황은 사실상 췌언에 가깝다. 그 동안 제시된 합리적 의심들을 과학적 사실로 확인해가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아직까지는 그 본분에 걸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인간이 한번 허물어지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황 교수 본인과 그 연구팀의 행태를 통해 확인하면서 세밑에 허탈한 심사를 달래야 했다.
예컨대 황 교수는 16일 다시 한번 '대반전'을 시도했다. 2005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 치명적인 '인위적 실수'가 있어 취소하지만 논문에 제시한 줄기세포는 존재했으며 그것을 추출·배양할 수 있는 '원천기술'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황 교수는 "'이해할 수 없게도' 현재 가지고 있는 줄기세포는 미즈메디병원의 것으로 확인됐다"며 최초로 '바꿔치기' 의혹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날 황 교수의 언급 가운데 "줄기세포가 11개면 어떻고 1개면 어떠냐"는 말은 이미 과학자이기를 포기한 헐벗은 자기고백의 클라이맥스였다.
그러나 29일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황 교수의 공언이 모두 '거짓말'임을 확인했다. 황 교수는 여전히 한발 한발 물러서면서 "외국에서는 줄기세포 배반포 기술만으로도 인정받는다"는 식의 안타까운 자기변명을 계속하고 있다. 최고의 지위에 오른 '스타 과학자'가 연구 부정행위에 연루됐을 때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진 다음에도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마지막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로 변명을 하는 황 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일 사람이 이제 몇이나 남아 있을까?
***〈프레시안〉은 기본을 지켰는가?**
앞으로 머지 않아 1월 중순쯤이면 '진실'의 전체상이 밝혀질 것 같다. 한해를 보내는 이 마당에 모든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세상사에는 다 그렇게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단칼에 해결할 수 없어 수많은 우회로와 갈등과 번민의 경로를 거치더라도 마침내는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그 과정에 언론으로서 우리가 작으나마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면 보람찬 일이리라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난 50일간을 훑어보는 가운데 새삼 '기자' 또는 '언론'이라는 직업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적어도 '기자'라고 스스로를 지칭할 때는 사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비판적 탐구의 자세가 요구될 것이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프레시안〉의 보도는 과연 이런 '기본'을 제대로 지켰는가? 그 동안 〈프레시안〉을 지켜봐 온 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판단을 기다리며, 우리 스스로도 비판적 자기성찰을 계속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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