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패배 후폭풍으로 한나라당의 국정쇄신 주도 의지가 높은 듯 보였지만, 막상 대안 마련을 위한 의원 연찬회의 뚜껑을 열어보니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청와대가 "국면 전환용 인사는 없다"는 식으로 태도를 정하자 '친이 돌격대'들이 일제히 이 대통령을 엄호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국정쇄신은 흐지부지 되는 것 아니냐", "친이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수도권 초선 의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친이 "왜 청와대에 손가락질?"…"세대교체는 무슨?"
친이계 핵심이자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최측근인 진수희 의원은 "당은 당의 일만 하면 되지 우리 할 일을 안 하고 정부와 청와대에 손가락질 해서 되겠느냐"고 아예 국정 쇄신 요구 자체에 대해 비판했다.
친이계 정미경 의원도 "대통령의 지지율에 편승해 선거를 치르다가 선거에 지니까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은 공당의 모습이 아니다"고 말했고, 청와대 쇄신의 목소리를 높였던 친이계 진성호 의원은 "청와대, 정부 인사 문제가 많이 지적되고 있는데 (알아서) 잘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쇄신 목소리가 거센 반발에 직면하면서 세종시 문제, 4대강 사업 문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친박 구상찬)"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친이계는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진수희 의원은 "지금 공사 중인 사업을 그만 둘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다만 민심을 수렴하는 등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만 말했다. 강승규, 진성호 의원 등 대다수 친이계 의원들은 이같은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진수희, 진성호 의원 등은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하거나 초선 모임에 참석해선 '쇄신'목소리를 높였었다.
지도부 공백에 따른 비상대책위 체제 구성도 삐걱대고 있다. 비주류 쪽에서 "세대 교체론"을 앞세우며 "초선 재선 의원을 대거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무성 원내대표와 친이계의 생각이 같을지는 미지수다.
결국 일부 젊은 피를 수혈하는 것으로 '생색내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비주류의 '세대 교체론' 자체가 친이계의 거센 반발에 부딛힌 모양새다.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를 거론하며 "젊은 세대가 지도부 전면에 나서야 한다(친박 윤상현)"고 일부 젊은 의원들이 기염을 토했지만, "선거 때는 어르신들에게 표를 요청해놓고, 이제와서 세대 교체냐(친이 김영우)", "40대 기수론은 무책임하다(친이 정미경)" 등 거부감이 만만찮았다.
이같은 모습은 지난해 4월 재보선 이후 흐지부지 끝났던 쇄신 국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쇄신파의 끈질긴 요구로 박희태 대표가 물러났지만, 거기에서 끝이었다. 게다가 박희태 대표의 퇴진이 사실 10월에 있을 양산 재보선 출마를 위한 것이었다는 심증이 사실로 드러나자, '쇄신파'는 허탈감에 빠졌었다.
수도권 한 초선 의원은 이를 언급하며 "4월 재보선 이후 쇄신 정국으로 결말이 나지 않도록 이번에는 제대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지방 선거의 처참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친이계는 청와대의 의중대로만 움직이고 있는 모양새다.
비주류 '재반격' 준비, 청와대-친이계 고집 뚫을 수 있을까?
일단 민본21, 초선의원 모임, 비례대표 모임, 친박계 일부 등 '비주류'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이같은 친이 주류의 태도를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재반격을 통한 '반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같은 '의지'는 "수도권 민심이 총선 민심으로 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바닥에 깔고 있다.
민본21 간사 권영진 의원은 "민본21은 이날 오전 회동을 갖고 계파색이 짙은 모임을 모두 탈퇴하자고 결의했다"고 전하며 각오를 다졌다. 민본21은 이날 "4월 재보선 후 쇄신의 실패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스스로 계파색을 벗어야 '쇄신 요구'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의원은 친이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소장파 리더격인 김성식 의원은 "오는 9일 계파와 지역을 초월한 초선 의원들의 대대적인 모임이 있을 것이고, 이 자리에서 국정 쇄신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며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기다려보라"고 말했다.
중립파 의원들도 이같은 움직임에 상당수 동조하는 분위기다. 이종구 의원은 이날 연찬회에서 "청와대에서 인사를 만지는 참모부터 당장 갈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들의 '충격 요법'을 불신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 역시 이같은 '비주류+친박'의 공세를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이계가 정신을 못 차렸다"고 험악한 어투로 불만을 터뜨린 수도권 초선 의원의 목소리 크기만큼, 이들 비주류가 한나라당의 두 번째 '쇄신 정국'을 관통할 수 있을지는 현재 미지수다.
한편 7월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 시기에 대한 논란은 진수희, 정태근 의원 등 일부 친이계의 연기 주장이 제기된 상태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예정대로 치르자"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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