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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브랜드경영의 시대입니다

예종석의 'CEO에게 보내는 편지' 〈18〉브랜드

K사장님!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감기에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제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역의 하나인 브랜드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브랜드와 관련된 일화들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1950년대 중반, 소형 트랜지스터라디오 'TR-55'를 팔기 위해 미국에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던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는 한 미국회사로부터 10만 대의 주문을 받게 됩니다. 당시 중소기업 규모에 불과하던 소니에게 10만 대의 주문은 연매출의 몇 배에 달하는 대단히 매력적인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문에는 하나의 조건이 달려있었습니다. 그 라디오에 자기네 회사의 브랜드인 '블로바' 표시를 부착해달라는 것이었지요.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 주문자상표 부착) 방식의 주문이었던 셈입니다. 무조건 수주하기를 재촉하는 본사와 갈등을 빚으며 며칠 간 고민에 빠졌던 모리타는 끝내 그 주문을 거절하고 맙니다. '소니'라는 이름으로 파는 것이 아니라면 아예 팔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지요.

이 사건은 그 뒤 소니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부상하는 데 전환점이 됩니다. 그때부터 승승장구한 소니는 가전제품의 상징적인 브랜드가 됐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브랜드를 중시하던 모리타 회장이 타계한 뒤, 특히 최근에는 소니가 힘을 잃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최근 삼성그룹은 47조5천억 원에 이르는 연구개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그 구체적인 목표로 2010년까지 월드베스트 제품 50개, 매출액 270조 원, 브랜드 가치 700억 달러 달성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영목표에 브랜드 가치 달성 목표를 포함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삼성은 이미 일류기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브랜드 경영의 중요성을 깨우친 기업이니까요. 실제로 삼성은 애니콜 브랜드 하나만으로도 지난해 19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 바 있고, 이런 매출액은 웬만한 다른 국내 재벌그룹의 총 매출액을 웃도는 금액입니다.

오랜 세월 소니의 뒤꽁무니 쫓아다니기도 힘들었던 삼성전자가 근자에는 소니를 압도하는 모습이 도처에서 목격됩니다. 삼성전자의 주식 시가총액은 이미 소니를 넘어선 바 있고, 최근 토쿄에서 열린 소니의 신제품 발표회에서는 소니가 삼성전자를 최대의 경쟁자로 의식한 듯 삼성전자와 관련된 언급과 다짐을 수도 없이 반복하더군요.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브랜드의 가치와 브랜드 관리의 중요성, 나아가서 브랜드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브랜드는 기업의 경쟁력 그 자체이며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고 궁극적인 경영목표입니다.

그러나 브랜드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관심은 아직도 한심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우리 수출기업들은 1960년대, 1970년대는 물론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OEM 수출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그 결과 한때 세계적인 봉제품 수출국이었던 이 나라에 세계시장에 내놓을만한 유명 의류 브랜드 하나가 없으며, 세계 최대의 신발 수출국이었던 이 나라에 해외에서 지명도가 있는 신발 브랜드 하나가 없는 실정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많은 와이셔츠를 수출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도심 백화점의 와이셔츠 코너에는 수입 라이선스 브랜드들이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유명 브랜드들은 해외에서는 하청을 맡은 우리 기업들이 공들여 만든 제품에 자기네 브랜드를 붙여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고, 국내에서는 우리 기업들에 브랜드만 대여해주고도 엄청난 수수료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브랜드는 소비자를 끄는 힘이며, 그 힘은 원가와 품질을 뛰어넘는 추가적인 부가가치로 연결됩니다. 품질이 비슷한 생필품의 경우에도 소비자들은 좋은 브랜드에 20퍼센트에서 많게는 100퍼센트까지도 프리미엄을 지불할 용의를 갖는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나와 있습니다. 이른바 명품 디자이너 브랜드의 경우 그 프리미움의 크기는 제조원가에 비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이릅니다.

브랜드의 높은 가치는 기업의 가치도 높여줍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에서 지금 우리의 현대차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던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언젠가부터 어코드나 캠리 같은 제품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렉서스나 에큐라 같은 고급 이미지의 브랜드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케빈 켈러(Kevin Keller) 같은 학자는 특정 브랜드가 소비자의 기억 속에 긍정적이며 호의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을 때 그 브랜드를 소유한 기업은 무려 열 가지의 혜택을 즐기게 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가 말한 열 가지의 혜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높은 브랜드 로열티
2. 경쟁적 마케팅 활동에 대한 취약성 감소
3. 마케팅 위기에 대한 대응능력 증가
4. 이익의 증대
5. 가격상승 시 비탄력적인 소비자 반응
6. 가격하락 시 탄력적인 소비자 반응
7. 유통채널의 협력 및 지원의 증가
8.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 증대
9. 라이선스 사업기회의 발생 가능성
10. 부가적인 브랜드 확장 기회

이익의 증대 외에도 이렇게 많은 이점을 제공하는 브랜드의 창출을 우리 기업들이 망설일 이유는 없겠지요.

브랜드는 이제 그 적용영역까지도 점점 넓혀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브랜드 제품이라고 하면 백화점 수입품 코너나 면세점의 명품 브랜드만을 떠올렸습니다만, 이제는 아파트 같은 주거공간에서부터 반도체는 물론, 심지어 두부 같은 식품에 이르기까지 브랜드가 없으면 팔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Jeff Bezos) 같은 경영자는 "많은 사람들이 아마존에 몰리는 것은 아마존이 책값이 싸거나 구입이 수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아마존이기 때문"이라며, 인터넷 비즈니스에서도 브랜드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브랜드는 그 자체가 자산일 뿐 아니라 강력한 대 고객 관계 구축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가치가 인정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브랜드 자산은 곧 고객 자산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브랜드도 다른 자산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투자하고 관리해서 그 가치를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제품 균질화 시대에 제품의 부가가치는 브랜드의 가치로 결정됩니다. 브랜드의 가치가 커지는 만큼 부가가치도 커지는 것이지요. 요즘 시장에서는 경쟁제품에 비해 품질이 동등하거나 심지어 우수한 데도 불구하고 강력한 브랜드 파워에 밀려 고전하는 제품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브랜드를 외면하는 기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고 대부분의 원자재는 수입해야 하는데다 인건비는 선진국 수준에 이르는 이 나라에서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길은 브랜드의 육성밖에 없습니다. 경영자들은 이제 업종을 막론하고 브랜드를 창출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입니다. 바야흐로 브랜드 경영의 시대입니다.

다음주에는 강력한 브랜드를 만드는 방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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