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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노래', 그 서글픈 낙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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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노래', 그 서글픈 낙관주의

〈김봉준의 붓그림편지 15〉

나의 목판화 하나를 소개하렵니다.
1983년 애오개마당 시절 봄에 그리고 깎고 찍은 목판화입니다.
붓으로 초화(草畵)를 치고 판목에 옮겨서 깎고 팠습니다.
찍고 나서 채색을 하였으니 채색목판화라고 합니다.
형식은 한국전통목판화 기법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계절의 봄에 역사의 봄을 노래하던 시대입니다.
계엄군이 자유를 탈취해간 겨울공화국
우리는 이른 봄부터 낮은 포복을 하기 시작했고
완연한 봄이 되자 고개를 내밀고 가슴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4월, 마침내 일어서서 어깨를 걸었습니다.
다 꺼진 듯 하던 불꽃은 다시 살아나
여기저기로 번지는 들불이 되어갔습니다.
다시 불사르기 시작한 투혼.

'사월의 노래' 목판화는 소리 지릅니다.
춤을 춥니다.
모여듭니다.
모두 기다렸다고, 다시 만나서 반갑다고
실은 서로 본 적도 없는데
공분으로 뭉친 싸움판에서 우린 서로 동지였습니다.

농민과 만남은 운명적이었습니다.
내가 배운 풍물이
내가 닮은 그림이
내가 노래하던 민요가
내가 춤추던 탈춤이
내가 귀담아 배우던 구비문학이
모두 민예인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민예의 사람이 바로 농민이었던 시대였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직접 배우는 것이 소중했던
1980년대 초는 마지막 수공예문화시대였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이면 농민가를 불렀습니다.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삼천리 방방골골 농민의 깃발이여
찬란한 승리의 그날을 위해/ 춤추며 싸우던 형제 그립다."

'찬란한 승리'란 무엇인가요.
우리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의 목표를 가지며 최대한의 희망으로 열려 있었습니다.
최소 강령으로 약속하며 최대 공약의 승리를 꿈꾸었습니다.
'춤추며 싸우던 형제'는 또 무엇인가.
자유를 갈망하는 몸짓이 춤이 되고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이 노래가 되는 사랑을 만드는 포용의 투쟁이었습니다.

그 시절 '사월의 노래'는 예술만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권력의 제도로 보면 삶이란 애초부터 불온한 것입니다.
탈춤패 노래패 풍물패 같은 문화예술도 불온하게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50년대 말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어번 포크 urban folk'처럼,
노신의 목판화운동이 그렇듯이,
사파스트가 된 멕시코벽화미술이 그렇듯이,
삶은 본래 충분히 정치적입니다.

'사월의 노래'도 분명히 정치적 예술입니다.
아니 정치적일 정도가 아니라 불온하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프롤레타리아 냄새가 나고
소수자 비주류의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중심도 지도자도 없는 탈중심이고
낡은 예술형식을 끄집어내 버젓이 모더니즘 시대에 맞선 뻔뻔함도 있습니다.
고상하고 어려운 예술도 아니고 구비문학을 따르는 쉬운 그림입니다.
모두 인정합니다.
나는 이 판화를 더 이상 변호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사월의 노래'가 보이고 있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어떠한 권력지배도 싫고 스스로의 권리로 자유를 구가하려는 몸짓,
농부들과 무산대중들의 굵은 손마디를 그냥 사랑하는 이웃으로 손잡는,
농민, 룸펜 플로레타리아, 노동자, 아줌마, 아이들, 종교인, 실천하는 지식인들 모두가 자기 삶의 희망을 말하려 했던 본래의 정치였습니다.
작은 민주주의, 주민자치, 풀뿌리 민주주의를 희망하는 본래의 정치입니다.

야생마는 마구를 갖춘 말처럼 닦인 길을 가지 않습니다.
자유의 의지를 따라 가는 길은 '길 없는 길'입니다.
그냥 낭만이 아니라 험한 길입니다.
교조적 이데올로기가 안내하는 길은 더더욱 아닙니다.
맹수에게 포획되는 죽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생존과 자유가 맞닿은 드넓은 지평을 자신의 선택지로 합니다.

깜깜한 밤을 더듬어야 님을 만나는 것처럼
우리는 다시 사랑을 확인하러 이 밤을 헤매야 하나 봅니다.
어디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으나 늘 내 곁에 있는 사랑,
사랑은 본래 어둠 속에서 더듬어야 찾아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대는 것도
어둠 속에 사랑을 만나기 힘드니까 발버둥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삶은 본래대로 충분히 정치적이며 예술적입니다.
생존과 자유의 일상에서 스스로 찾아내는 삶이라야 풍요롭습니다.
길들지 않은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듯이
야생마가 대지를 마음껏 달릴 수 있듯이
위험한 생존과 허가받지 않은 자유의 지평에서
'사월의 노래'는 서글픈 낙관주의로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의 노래를 계속 부를 것입니다.
춤추며 싸울 것입니다.

사월에 묵은 판화를 뒤지다가
봉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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