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중간에 그만 두고 싶었다. 급기야 필자의 만류 요청에도 불구하고, 김선종 연구원의 줄기세포 사진조작 의혹이 YTN을 통해 방송된 직후, 이메일과 각종 댓글, 블로그 등에 쏟아지는 협박과 공공연한 폭력 행사 운운에는 가슴이 턱 막혔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친지들이 연신 전화벨을 울려댔다. 결국 아내와도 대판 싸움을 벌였다. "왜, 당신이어야 하느냐고요?"
왜 필자냐고? 사실, 별로 뾰족한 대답은 없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급작스럽게 황우석 교수와의 공동연구 결별을 선언한 섀튼 교수가 우연히 필자와 같은 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 첫 출발은 피츠버그 의대의 홍보 담당자가 보내준 보도자료 전문의 행간에 숨어 있는 사안의 심각성을 발견하고, 이를 우리나라 국민들과 과학계에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기고문 바로보기). 요컨대 누군가는 욕을 먹더라도 입바른 소리를 해야 했다.
***'독버섯'처럼 자리 잡은 과학계-의학계의 방조 내지 협조에 '절망'**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의 난자 매매 시인, 황우석 교수의 사과, 서울대 수의대의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자체 조사 결과 발표 등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 음울한 사태의 이면에 국내 과학계와 의학계의 방조 내지는 협조가 독버섯처럼 기생하고 있었음이 분명해졌다. 더욱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국민들의 반 MBC, 반 〈PD수첩〉 폭거를 보며 도대체 우리나라에 지성과 양심이라는 것이 살아 있는가 하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해야 했다. 정부가 보여 준 비겁함과 무기력함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황우석 교수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의 진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의혹을 어떤 정보원으로부터 전달받게 된 것이 이 즈음이다. 필자의 이전 기고문에서 '정보원'이란 표현을 썼더니, 누군가는 '무슨 대학교수 나부랭이가 정보원을 두고 있느냐'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정보원이 '情報員(secret agent)'이 아니라 '情報源(source of information)'이라는 것도 알지 못하는 '난독증 네티즌'들에게 일일이 대꾸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집단최면에 들어간 이들을 깨어나도록 다그치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일로만 보였다.
역시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매국노, 역적, 양키의 개라는 비난은 오히려 나은 편에 속했다. 이 참에 한 번 떠 보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소영웅주의 매도도 그런 대로 견딜 만 했다. 정작 참기 어려웠던 것은, 미국에서 공부하지도 않은 필자가 어떻게 20위권 이내에 들어 있는 피츠버그의과대학의 교수일 수 있느냐는 비아냥거림이었다. 더욱이 줄기세포의 'ㅈ'자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이유로 대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물고 늘어지느냐는 비난에도 할 말을 잃었다.
***과학자의 '부정직'을 판단하는 데는 '상식'이면 충분해**
분명히 밝히지만, 필자는 아직 '테누어(종신 교수)'를 받은 것은 아니어도, 피츠버그의대의 정식 교수다. 동시에, 임상약리학센터 임상연구코어 부디렉터, 임상약리학 펠로우십 디렉터, 피츠버그의대병원 약사위원회 심의위원, 투표권을 가진 피츠버그의대 임상연구센터의 심의위원, 피츠버그의대 전자의무기록위원회 위원이다. 필자는 한국인 의사로서는 유일하게 객원의학자료심의요원으로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다시 말해, 필자가 비록 줄기세포의 'ㅈ'자는 모를지언정, 인체와 인체에서 기원한 조직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임상연구의 원칙과 그 결과를 평가해 약이나 치료법의 허가 유무를 결정하는 규제과학 분야에서 필자만큼 집요하게 천착해 온 사람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필자의 석, 박사 지도교수마저 모 신문을 통해 필자의 자격 없음을 만천하에 공개하셨을 때에는 억장이 무너졌다.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사실 자격부재라는 이 분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줄기세포 사진을 부풀리는 것이 부정직한 일이라는 것을 판단하는 데 어떤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줄기세포와 공여자 체세포의 DNA 지문 검증이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해당 분야의 박사 학위가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과학에서 자료 날조 또는 위조가 매우 엄중한 범죄 행위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무슨 지위를 갖고 있어야만 하는가?
***황우석 교수팀 연구원들 따뜻하게 보듬어야**
어떤 이들은 필자가 괜히 언론 대 언론의 싸움판에 멋모르고 끼어들었다며, 오지랖 넓게 나서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이 사태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세련되게 처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박수갈채나 환호가 아니었다. 어느 쪽이 양심과 내면의 진리 편인지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쏟아지는 협박 이메일 앞에서 잠시 멍했지만, 이 원칙이 필자를 지켜 주었다.
이 와중에도 국내외에 계신 몇몇 분들이 보석과 같은 격려의 글들을 보내 주셨다. 일일이 다 이 분들의 이름을 거명하지는 못하더라도, 보내 주신 글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자에게 격려가 됐는지 감사의 말을 전해 드리고 싶다. 특별히 '그 나이에 미국에 가서 무엇을 더 하겠느냐'며 모두가 만류하던 6년 전 필자의 미국 연수를 주선해 주시고 적극 격려해 주신 서울의대 신상구 교수님의 격려는 정말 큰 힘이 돼 주셨다.
이제 이 사건에서 필자의 역할은 끝났다. 뒷수습과 앞으로의 발전적 방향 제시는 국내 과학계와 의학계에 계시는 분들이 잘 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은 황우석 교수님과 연구원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달라는 것이다. 필자 역시 실수와 과오로 부끄럽던 젊은 날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돌이키면 된다는 사실이다.
일찍 결혼해 내년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필자의 큰 딸이 한참 힘들 때 이런 이메일을 보내 왔다.
"아빠,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많은 일들로 아빠 요즘 많이 힘드시죠? 아빠는 엄마와 얘기를 나누면서 '또 그런 메일이 왔다'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껄껄 웃어넘기시지만 남들에게 미움이나 오해받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빠, 누가 뭐라고 해도 전 아빠가 정말로 자랑스러워요…. 아, 그리고 '네이버'도 아는 우리 아빠! ('네이버'에 아빠 프로필이 연예인처럼 떠 깜짝 놀랐어요.) 다른 사람들이 아빠를 모르고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아빠를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은 다 아니까."
글 그만 쓰고, 이제 아들 녀석의 수학 공부를 도와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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