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의 결과를 놓고 진보 양당에 대해 말이 많다. 많을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은 이명박 심판을 앞세워 후보 단일화의 선거 연합에 앞장섰고, 진보신당은 진보 정치의 가치를 걸고 보수 진영과 외로운 싸움을 벌였다.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민주노동당 간부인 나도 고민이 많았다. 이번 선거에서의 두 가치는 어느 것 하나 외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내에서 당원들의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고, 정책 당 대회와 중앙위원회 의결을 거쳐 '이명박 심판'과 '진보 진영의 대단결'로 가닥을 잡았다. 두 마리 토끼를 잡되, 이명박 정부부터 먼저 심판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실천은 정말 힘들었다.
정책 연대와 후보 단일화 중심의 선거 연합만이 이명박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보여준 민주당의 태도는 힘의 논리를 앞세운,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보수 정당의 모습 뿐이었다.
결국 중앙에서의 '5+4'는 '4+4'로 축소되고, 그나마도 깨지고 말았다. 전적으로 민주당의 책임이다. 상대적으로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기득권에 대한 과감한 저버림이 없이는 완벽하게 이룰 수 없는 연합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나도 이런 상황에 답답하고 화가 나, 당내 최고회의에서 선거 연합을 포기하고 서울과 경기에서 후보를 완주시켜 민주당까지 심판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원들은 현명했다. 더 냉정했다. 더 참을 줄 알았다. 중앙은 깨졌지만 지역 중심의 선거 연합 논의가 불붙으며 수도권까지 타올라왔다. 전국적인 야권 단일화 프레임만이 이명박 심판의 유일한 길임이 감지되었다. 북풍·전교조 이념 공세 등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진보 민주 진영의 단결뿐이었다. 당의 결단이 필요했다. 서울·경기의 후보를 접었다. 우리는 속으로 울었다.
▲ 지방선거 승리를 결의하는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심상정의 눈물이 그 모든 것을 대변했다. 또 다른 가치를 위해 당은 고통의 길을 택했다.
역사의 큰 강은 그 모든 것을 함께 아우르며 흐른다. 이번 선거의 결과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야권 연대의 전국적 승리, 서울·경기의 민주당 패배, 특히 서울특별시의 구청장과 의회를 다 장악하고도, 시장을 놓친 것은 민주당에 대한 경고이다. 민주당이 잘해서 국민들이 표를 준 것이 아니라는 점을 뼈아프게 생각하라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꼭 이기기를 바랐다. 진보신당은 빠졌지만 그런 조건 위에서 야권 단일 후보 아닌가?그렇게 이겨서 이명박 정권 심판에 대한 방점을 확실히 찍고 싶었다.
하지만 긴 역사의 눈으로 보면, 이번에 이런 식으로 이기는 것만이 능사였을까? 이번 결과에 대한 다른 성찰은 필요 없는 것일까? '내용적으로는 이겼다', '국민이 승리했다', 이렇게만 평가하면 다음을 낙관하며 기약할 수 있는 것인가? 진보의 가치를 잠시 접고 야권 연대에 나선 이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않은 채, 민주당의 승리에만 환호하고 자축한다면 그건 이번 선거의 의미를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는 자세다. 누구의 희생을 딛고 얻은 승리인지 망각한다면, 그 승리는 언젠가 심판의 이유가 될지 모른다.
서울의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진보신당이 함께 했다면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또는 비난에 가까운 비판이 터져 나왔다. 서울의 선거에 대해서는 솔직히 선거전에는 야권 전체가 여론조사 탓이든 뭐든 아무튼 열세라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던 터에, 결과가 예상 밖으로 간발의 차이가 나니 아쉬움이 더 커져 그랬으리라. 사실 아무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던 결과 아니던가?
그러나 결과를 놓고 졸지에 '악역'이 된 이들과 세력에 대한 화살이 마구 잡이로 쏘아졌다. 이 대목에서는 어쩌다 그 '악역'을 진보신당이 담당했을 뿐이다. 물론 승리의 목전에서 그걸 놓친 이들은 진보신당이 맡은 역할을 악역이라고 볼 수밖에.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오죽 아쉽고 아쉬웠으면 그러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결코 '악역'이 아니다. 아니, 남들이 보기에는 악역인 그런 존재와 세력이 없이는 역사가 성립하지 않는다.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그건 당당하고 의로운 길이다. 진보의 가치에 대한 고독한 선택의 몫이 분명히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힘들고 외롭지만 누군가 가야 할 길이다. 손해를 보거나 패배를 빤히 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진보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밀고 나가려는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의 보수 또는 자유주의 보수가 지배하고 있는 정치 현실을 바꾸어내는 힘을 좀처럼 길러낼 수 없다. 진보는 매번 결정적인 지점에서 이렇게 거듭 희생되어야 하는가?
따라서 민주당은 승자의 자세를 취할 일이 결코 아니다. 다 이긴 선거에서 악역을 맡았다면서 누군가를 비난한 일도 아니다. 민주당은 보다 철저한 자기 혁신이 요구되지 않는가? 돌아보면 노무현 대통령 시절 탄핵으로 얼마나 엄청난 지지로 그 많은 의석 수를 차지했던가? 그런데 어떻게 했던가? 그걸 되풀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강조하건데 이번 선거의 결과를 통해 민심이 이렇게라도 민주당을 뼈아프게 하지 않으면 얼마나 자기 승리에 취해서 기고만장 하겠는가. 민심에 대해 착각한 결과를 톡톡히 맛보고 있는 한나라당을 보면서 민주당 역시 자신을 무섭게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십자가 형틀에서의 예수의 죽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개신교가 존재하겠는가? 당시 예수의 추종자 집단 속에서 가장 비판적이었던 가롯 유다의 역할이 없었다면, 예수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기억하지만, 진보의 역사는 가롯 유다를 잊지 않는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예수를 밀어냈다. 그런데 예수는 그걸 기꺼이 받아들였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가 앞으로 나가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깨우침을 얻는다.
진보의 길은 고통스럽고 외롭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진보정당이나 진보주의자는 힘들지만 또 얼마나 행복한가. 그 희생의 역사적 열매가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6·2 지방선거를 치르며 내 역할이 싫고 짜증날 때가 많았다. 결국은 민주당의 배나 불리며 또 다른 보수를 살찌우는 것만 같은 선거 연합 전술을 수행해야 하는 민주노동당의 선대본부장이 싫었다. 나 역시 진보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악역이 아니던가? 그런 고민을 선거 내내 떨칠 수 없었다. 진보의 가치를 잠정적으로나마 뒤로 하자는 진보주의자의 딜레마를 나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남북 관계를 파탄내고, 언론을 장악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를 탄압하며 민주노조운동을 말살하려 하는 이명박을 그대로 두고, 어디에 진보정치의 초석을 놓겠는가? 신자유주의가 범람하며 양극화는 가속화 돼 민중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진보정치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선거 연합 전술도 필요하고 이 역할도 누군가는 해야 할, 진보를 위한 역할이라면 그것이 '악역'이라도 기꺼이 맡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부디 서로 탓하며 손가락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거는 끝났고 다음 할 일이 이미 우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선거 연합을 통한 야권 연대라는 도도한 대세 앞에서, 진보의 가치를 그나마 홀로라도 붙잡고 힘겹게 완주한 이(들)에 대한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칠 만한 큰 마음이 있어야 역사는 앞으로 나가지 않겠는가? 작은 감정으로 큰 진보의 흐름을 막아서는 안 된다. 시대에 상황 속에서 역사적 역할은 또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니, 겸손하게 진보의 역사적 맥락에서 서로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지금 보면 쓰디 쓴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그 쓴 맛으로 달디 단 세월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알게 될 날도 온다. 지금 미워 보이는 것이 나중에 고맙기 이를 데 없게 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과 마음 품어 가면 막혔던 길도 뚫리고 엇갈렸던 길로 하나가 되어가지 않을까?
이제 1막이 끝나고 2막이 열리려 한다. 힘을 모아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자.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악역을 맡을 까닭이 없는 역사를 위해서 말이다. 좀처럼 반성을 모르는 권력이 아직도 오만하게 버티고 있다. 신발 끈을 풀 때가 아직 아니다. 우리 모두는 다시 뜨거운 눈물을 함께 흘리는 동지가 될 수 있다. 이젠 정말 "제대로" 이겨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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