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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의 진짜 '적'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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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황우석 교수의 진짜 '적'은 누구인가"

[기고] 황우석 교수 '사과' 그 이후

신약 개발이 얼마나 길고 험난한 과정인지를 잘 보여 주는 통계 수치가 있다. 신물질을 합성해 동물 실험과 다단계의 임상시험 과정을 성공적으로 끝내 허가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12~15년, 그리고 약 1조 원이란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더 기가 찬 것은 1만분의 1밖에 안 되는 성공 확률이다. 즉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던 신물질 9999개는 '약'으로 최종 허가를 받기 전에 새벽이슬처럼 잠깐 존재하다가 '언제 그랬냐' 싶게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허가 이후에도 안전성이 문제가 돼 신약이 시장에서 퇴출당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한 연구에서는 약 20%의 신약이 개발 과정에서 잘못된 용량을 사용했기 때문에 시판 이후에 용량 변경이나 이러저러한 사용상의 제한, 심지어는 시장 퇴출을 경험하는 것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제약회사들이 여전히 신약 개발에 목을 매는 이유는 성공적으로 개발된 신약이 해당 회사는 물론 나아가 소속한 국가의 산업 명운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궤양 치료제로 이름을 날린 바 있는 '잔탁'을 개발한 회사는 영국의 작은 지방기업 신세에서 지금은 전 세계를 호령하는 1, 2위의 제약회사가 됐다. 또 잘 알려진 대로 영국의 바이오 산업 환경은 모든 나라, 심지어는 미국도 부러워하는 단계에 도달해 있다. 한 마디로 잘 개발한 신약 하나로 회사와 국가가 모두 팔자를 고쳤다는 것이다.

연구 윤리니 세계적 기준이니 하는 논의를 마뜩찮게 여기며 황우석 교수에게 올인하는 많은 국민들도 기실 이러한 가능성에 기대를 걸기 때문이다. 또 사실 국민들의 기대가 전혀 틀린 것도 아니다.

***줄기세포 연구, 과도한 환상은 '금물'**

그러나 황우석 교수의 연구, 즉 체세포 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연구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 분야의 1%의 비중밖에 안 된다. 이 말에 벌써 혈압이 오르고 육두문자가 목까지 차오를 독자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을 알지만 이 얘기는 필자가 한 것이 아니다. 이는 줄기세포 연구의 대가이며 '국제 줄기세포 이니셔티브(International Stem Cell Initiative)'를 이끄는 영국의 피터 앤드류 박사의 말이다(〈워싱턴 포스트〉 11월 29일자 참조.). 요컨대 앞에서 소개한 신약 개발 과정에 비유하자면 이제 막 가능성이 있는 1개의 신약 후보를 찾아낸 정도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잭팟'이 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거쳐야 할 과정과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다. 앞서 예로 든 앤드류 박사를 인용한 〈워싱턴 포스트〉 기사는 이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줄기세포가 어떻게 줄기세포로 남아 있는지, 어떤 경우에 다른 세포로 분화해 가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 (…) 이 과정에서 원하지 않는 돌연변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방법도 모른다. (…) 이런 연구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와는 상관이 없다. 그의 연구가 중요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작은 부분이다."

***언론이 '황우석 사태' 더 어렵게 만든다**

일반인들이야 쉽게 흥분도 하고 실망도 한다지만,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일 당장 황금알을 낳은 거위라도 되는 양 열광하게 만든 데에는 기존 언론, 특히 종합 일간지의 균형 잡히지 못한 보도가 매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 사과 이후를 다룬 국내 언론, 특히 〈한겨레〉를 제외한 여러 신문의 보도 관점은 더 우려스럽게 보인다.

이 사건을 통해 과학적 발견에 담겨 있는 사회적 효용성과 한계, 책임 등에 관해 구체적이고 성숙한 담론을 이끌어 주길 원했던 필자의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그런데 이들 신문들이 뽑아 낸 기사 제목은 대개 '황우석 교수 구하기', '난자 제공자 봇물' 등과 같이 마치 거대한 음모 앞에 웅크린 약자 편에서 힘껏 저항하는 몸짓을 담아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잊고 있는 것은 이러한 기사들에 담겨 있는 국민적 정서가 그대로, 시시각각으로 전 세계에 타전돼 기사화된다는 사실이다. 〈워싱턴 포스트〉만 하더라도 거의 매일 관련 소식을 기사화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사를 접하는 관련 외국 학자들이 황 교수의 사과와는 아랑곳없이 이를 감싸고 드는 듯한 한국인의 정서에 의아해 하며 이로 인해 선뜻 국제협력 연구를 재개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문제를 문제로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대신, 전 국민이 나서서 '우리는 우리 식대로 하련다'라는 말을 되뇌는 것처럼 보이는 국가의 소속 연구팀과 자신 있게 공동 연구를 주장하고 나설, 담 큰 과학자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29일 '세계 줄기세포 허브'가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외국 학자들이 공동 연구에 머뭇거리고 있다는 발표가 나오게 된 것도 다 이러한 사실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안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기자회견을 앞두고 신문들은 '황교수와 연구, 해외 제의 쇄도'라는 기사를 담 크게 내 보낸 것을 그냥 코미디라고 치부해 버릴 것인가?

***척박한 과학문화, 이 기회에 '쇄신'해야**

동일한 관점에서 용기 있게 사건의 진실을 보도한 〈PD수첩〉과 MBC에 연일 비난과 광고 탄압을 가하고 있는 국민들도, 이러한 행동이 그네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황우석 교수의 국제적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든다는 사실을 직시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

황우석 교수 사과 이후에 언론과 국민에게 맡겨진 사명은 황 교수의 고백처럼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게 만든' 척박한 한국의 과학 문화를 일신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아무리 엄청난 과학적 발견이라도 상호 견제와 공개 검증의 원리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기본 원칙이 과학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각인될 수 있도록 언론이 중심을 찾아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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