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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이외엔 아무도 얘기할 게 없단 말인가?"

[긴급 기고] 실기는 단 한번으로 족하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규제기관들이 임상시험 또는 임상연구의 결과를 심의할 때 제일 먼저 확인하는 전제 조건이 있다. 즉 임상연구에서 지켜져야 하는 원칙들이 해당 임상연구가 실시된 국가나 병원에 제도와 시스템으로 정착됐는가를 검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흔히 '임상시험관리기준(Good Clinical Practices)'이라고 부르는데 임상연구의 윤리적 실시 원리를 포괄적으로 규정한 '헬싱키 선언'이 법 규정으로 구체화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1995년 이래 우리나라도 이를 실정법으로 준수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임상시험관리기준이 제도로 정립돼 실제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으면 규제기관은 예의 임상연구 결과를 심의에 반영하지 않는다. 요컨대 비록 해당 임상연구의 결론이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환경과 여건이 타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도출된 어떤 결론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얼핏 일반인들이 '뭐, 그렇게 할 것까지야?'라고 의아해 할 만한 이 원칙은 그러나 질 관리 또는 질 보증 부문에서는 이미 국제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많은 국민들이 황우석 교수의 대국민 사과 발언을 착잡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봤다. 물론 이미 신원이 드러난 연구원의 개인적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네이처> 등의 반복된 질문에도 '연구원 난자 제공이 없었다'라고 부인했다는 대목에서는 궁색함을 느껴야 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연구원 난자 제공이 있었느냐?' 즉 '예' 또는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했던 것이지 난자 제공자의 신원을 드러내도록 요청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황우석 교수의 사과는 국내 과학계에 여전히 기댈 만한 것이 남아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이런 점에서 진실 앞에 자신을 최대한 투명하게 드러낸 황 교수의 용기와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

***여전히 남는 문제들…'황우석 이외'엔 아무도 얘기하지 않을 건가?**

그런데 정작 문제는 황우석 교수가 아니었다.

필자는 이전 기고문을 통해 연구 대상의 윤리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실을 인정하고 적절한 후속 조치를 취함으로써 조기에 수습 가능했던 이 사태가 반복되는 거짓말과 부인으로 결국 연구자의 윤리, 즉 연구자의 정직성 문제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된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단연 압권은 <PD수첩>의 방영을 앞둔 몇 시간 전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이 서둘러 난자 매매 사실을 시인함으로써 그 동안 반복해 부인해 온 진실 앞에 마침내 두 손을 들던 때였다. 동시에 이 예는 우리에게 시기를 놓친 해명이 얼마나 심대한 도덕적 손상을 가져 올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황우석 교수의 사과에 앞서 서울대 수의대학 기관윤리위원회(IRB)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보건복지부도 이를 추인했다. 이들의 보고서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난자 매매는 법 제정 이전으로 문제가 안 되고 연구원 난자 제공도 한국적 상황에서 발생한 자발적 행위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을 도출한 위원들이 스님 한 분을 빼 놓고는 모두 직간접적으로 황 교수와 어떤 형태로든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분들이란다.

위에서 든 규제기관의 예를 적용해 본다면 이는 명백히 결론을 도출한 환경과 여건의 객관성 또는 타당성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위원회가 내린 결론의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출발 자체가 타당성을 인정받기 힘든 위원회의 구성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이해상충 배제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위원회의 결론을 제발 타당한 것으로 믿어 달라고 또다시 국제 과학계에 들이댈 것인가? 이것도 한국적인 특수 상황이 있으니 이해해 달라면서 말이다.

더욱이 이들은 이미 생명윤리학회가 제기했던 많은 의혹들, 예를 들어 한양대병원 기관윤리위원회의 불투명한 심의 과정과 관련 교수들의 역할, 연구계획서에 언급되지 않은 미즈메디병원이 난자 채취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이유, 동의서 내용 및 취득 과정, 모 고위 관리의 애매한 행적 등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필자를 더 당황스럽게 한 것은 서울대 수의대 기관윤리위원회에 참석한 위원들이 대부분 학계에 계신 분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필자는 이분들이 자신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저자의 논문을 심의해 주도록 요청 받았을 때 이를 거절하는 것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학계의 원칙임을 몰랐다고 믿지 않는다.

하긴 황우석 교수도 극히 최근에 와서야 헬싱키 선언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니 이분들이 이러한 원칙을 반드시 알고 있었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황우석 교수를 진정 아낀다면…**

<네이처>가 진작 '객관적' 규제기관의 개입을 거론했을 때에는 이와 같은 상황을 예견한 것이다. 다시 말해, 또 다시 기회를 놓쳐 버리고 그나마 허물어진 국제 과학계의 신뢰를 아예 나락 수준으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정중하게 요청한 것이다. 요컨대 비록 문제는 있었으나 한국 과학계가 자정 기능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어렵게 성취한 생명과학계의 선도적 위치를 회복해 줄 것을 기대한다는 메시지였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어쩌자고 이렇게 어렵사리 주어진 능동적 해명의 기회를 헌신짝처럼 내 버리는가? 황우석 교수를 대국민 사과의 현장으로 내 몰았던 지난 1년 반의 학습 경험도 모자랐단 말인가? 그러나 명심할 것은 풀리지 않는 의혹은 항상 암울한 그림자를 뒤에 달고 다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적절한 기회를 보아 매우 기괴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가래로도 안 될 때가 온다.

황우석 교수를 진정 아끼는가? 그렇다면 이분이 모든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관련자들이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 기자회견 1시간을 앞두고 혼자 다시 내용을 수정하셨다는 황 교수의 결단에 부응할 만한 용기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이 문제를 가장 쉽게 털고 가는 길이며 황 교수를 다시는 부끄럽지 않게 하는 첩경이다.

정녕 실기는 단 한번으로 족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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