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폭력 시위와 정상들 간의 설전으로 얼룩졌던 제4차 미주정상회담의 후유증이 멕시코와 베네수엘라 간 대사 소환이라는 외교 관계상 최악의 상황을 불러오며 양국 정상 간 감정 대립으로까지 비화, 막말이 난무하는 난타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양국 정상들 간의 감정 싸움은 미국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꼽히는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과 중남미 맹주를 자처하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주 대륙 남북을 대표하는 대리전 양상까지 띠고 있다.
폭스 대통령이 미국의 대변인 격이 된 것은 미국과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회원국이라는 통상문제 외에도 미국 정부가 자국의 빈곤 퇴치와 실업자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행보로 평가된다.
미국 정부는 지난 9월 9일 미주정상회담 실무자 회담에서 "미주자유무역(FTTA) 협정이 발효된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우선적으로 중남미의 빈곤 퇴치와 고용 창출을 위해 멕시코 이민자들에 대한 국경 개방을 고려하고 있으며 지역경제 발전에 적극 협력한다는 입장을 보였었다. (2005년 9월 10일자 '남미 리포트' 참조.)
폭스로서는 FTAA의 최대 수혜국은 멕시코가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을 것이고 미국의 제안에 딴죽을 거는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정상들에게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해 부시 미 대통령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했다는 것이 현지 언론들의 평가다.
폭스 대통령은 마르 델 쁠라따 정상회담장에서부터 대규모 좌파 민중단체들이 회담장 주변에 폭력 시위를 벌인 것을 문제 삼아 키르츠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차베스 대통령을 싸잡아 '대중선동가'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해 3자 간 고성이 오가기도 했었다. 또한 차베스 대통령이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회담장 내의 분위기를 전한 것을 두고 "비공개로 진행된 회담 내용을 공개하는 경솔한 행동"이라고 사사건건 비난의 톤을 높였다.
이에 대해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이 내세운 FTAA에 대한 반대를 포함해 부시 미 대통령과 첨예한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어 이런 폭스의 태도에 발끈하고 반기를 든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최근 폭스를 향해 "미 제국주의의 강아지"라며 "(부시에게 중남미를) 헌납한 자"라고 몰아세웠다. 차베스는 또 "내 일에 참견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다친다"고 막말을 퍼부었다.
이에 폭스 대통령은 차베스를 향해 "24시간 내에 이 발언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대사 소환 등으로 외교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선언하고 14일 카라카스 주재 멕시코대사를 공식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베네수엘라 정부 역시 폭스의 최후통첩에 맞서 "문제의 발단은 멕시코가 제공했는데 사과할 일이 무엇이냐"며 바로 멕시코 주재 자국 대사를 15일 오전 본국으로 소환해버렸다. 이로써 두 나라는 상무관이 통상 업무만을 보는 사실상의 비수교국이 된 것이다.
이렇게 멕시코와 베네수엘라 양국이 정상들 간의 감정 싸움으로 '외교 단절'이라는 최후선택으로까지 비화되자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위원회가 두 사람 사이의 싸움에 중재를 하겠다고 나섰다.
메르코수르 임시의장을 맡고 있는 레이날도 가르가노 우루과이 외무장관은 15일 "오는 12월 13~18일 홍콩에서 열리는 제6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양자 간의 화해의 자리를 마련,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회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동업자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키르츠네르 대통령이 오는 20일 베네수엘라를 전격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미국과 멕시코에 대한 모종의 반격이 시도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대두하고 있다.
키르츠네르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방문은 표면상으로는 2006년 양국 간 투자프로젝트와 마르델 쁠라따 미주정상회담의 후속문제 논의, 미국이 주창한 FTAA 추가논의 반대를 위한 조율 등의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폭스와 차베스, 키르츠네르에 이르는 3자 간의 갈등은 미주 대륙이 NAFTA(북미자유무역지구)와 남미의 메르코수르의 두 그룹으로 완전히 나뉘는 전초전 아니냐는 다소 성급한 전망도 대두하고 있다.
또한 이번 갈등의 근원을 짚어보자면, 성급하게 미주대륙의 자유무역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남미 정상들을 향해 강공을 구사한 미국이 평지풍파를 불러온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미국의 뒷마당'이라는 중남미가 이번에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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