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응하고 동아시아의 역사인식 공유를 촉진하기 위해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동의 역사교과서 제작을 넘어 공동의 역사자료집(역사자료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하자는 제안이 국제 심포지엄에서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역사자료집 만들어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교재로 활용하자"**
오타 오사무 일본 불교대학 인문대 교수는 12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의 공식 문화행사 중 하나로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등이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아시아의 새 질서와 연대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의 이틀째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제안했다.
오타 교수는 "2001년에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진 이후 몇몇 한중일 간 및 한일 간 그룹이 진행해 온 공동 역사교과서 제작과정에서 공동의 역사자료가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지적됐다"며 "역사자료를 동아시아 공유의 재산으로 만들고, 그렇게 구축된 역사자료집을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교재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역사자료 공개에 소극적인 일본이 문제"**
오타 교수는 이어 "역사자료의 공유화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역사자료의 공개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한국에서는 지난 8월 한일교섭 관련 자료를 전면 공개하는 등 최근 '과거사 청산' 노력의 일환으로 역사자료의 공개를 진척시켜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문제는 일본"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01년부터 국립 공문관 내에 '아시아 역사자료센터'를 설치하고 각 정부부처 등에 보존돼 있는 역사자료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이를 통해 공개되는 자료는 해당 기관에 가면 얼마든지 관람할 수 있는 문서뿐이고 새로운 자료의 공개는 없다.
일본 정부는 특히 한일교섭 관련 문서의 공개에 대해서도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이유로 외무성 내규를 근거 삼아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관점 인정하고 토론해 '대화적 진실' 추구해야**
그러나 일본에서도 ▲시민단체와 초당파 의원 모임인 '항구평화의원연맹'이 전쟁 때 자행된 강제동원이나 성적 학대행위 등의 진상을 조사하는 기구인 '항구평화조사국'을 국립 국회도서관에 설치하는 것을 뼈대로 한 '항구평화조사국 설치법'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난 7월 도쿄에서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를 설립해 가동하고 있으며 ▲역사자료 공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자나 일반 시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역사자료의 공개 및 공유를 실천하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고 오타 교수는 소개했다.
오타 교수는 "일본에서 역사자료의 공개와 공유화를 향한 작업이 좀처럼 진척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은 노력들이 하나하나 실천되어 간다면 역사인식을 둘러싼 '화해'를 향해 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며 "동아시아 사람들이 역사자료와 역사적 사실에 토대를 두고 서로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서로 다른 역사인식에 대해 철저히 토론하고 자극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진실에 도달하는 것, 즉 '대화적 진실'을 부단히 추구해가는 것이야말로 동아시아에 평화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영서 연대 교수 "역사자료집 편찬도 '역사관' 문제에 부닥칠 것"**
오타 교수의 이런 제안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공동 교과서에 대한 대안으로 역사자료집 형태의 역사교재를 편찬하자는 제안은 흥미로운 발상이며 실제로 그런 것이 간행되면 아주 유익할 것 같다"고 일단 환영했다.
백 교수는 그러나 "역사자료집은 자칫하면 너무 많은 사료를 제공해 혼란을 일으킬 위험도 있고 그러다 보면 그 해석이 너무 개별 강의자의 역사관에 의존하게 될 우려도 있다"며 "이런 위험을 피하려면 역사자료집을 편찬할 때 일정한 관점, 즉 역사관에 의해 사료를 선별하고 배치해야 한다는 근원적인 문제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또 한중일 공동으로 제작돼 지난 5월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6월에는 중국어판이 간행된 역사교과서 <미래를 위한 역사>가 중국과 일본의 서점에서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어 다행이라면서 "한국에서도 이 대안의 교과서가 제도 안에서 교과서로 채택된다면 보급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네시아 사회과학연구소의 아스위 와르만 아담 연구교수도 "오타 교수가 제안한 공동의 역사자료집에는 관련된 국가들이 모두 동의하는 역사자료들만 포함될 것"이라며 "그렇다면 역사자료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각국의 역사학자들 사이에 관점, 용어 등을 둘러싼 토론이 있겠지만, 그것이 일단 만들어진 뒤에는 더 이상의 토론을 저해함으로써 오타 교수가 중시하는 '대화적 진실 추구'라는 목표에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후지나가 다케시 일본 오사카산업대 교수는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자료집을 편집, 간행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수긍하면서도 "그러나 그러한 작업에 앞서 이미 출판돼 있는 역사 관련 자료집이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조사해볼 필요가 있고, 문헌자료뿐만 아니라 영상, 음악, PC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부교재로 개발할 필요도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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