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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장소, 농촌에서 미래를 일군다"

'초록 대안' 농업<15> 풀무학교 반세기와 우리 농업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 풍경이 펼쳐지는 시골 작은 초가집 안에서 사립 중학 과정의 작은 학교가 개교를 했다. 18명의 어린 학생 앞에서 설립자면서 단 두 사람의 교사 중 한 사람이 개교를 선언했다.

"지금은 현대 문명의 총아인 도시를 중심으로 도시 교육, 선발 교육, 물질 교육, 간판 교육, 출세 교육을 하고 있어. 이때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총아인 농촌을 중심으로 농촌 교육, 민중 교육, 정신 교육, 실력 교육, 인격 교육을 통해 이 민족을 소생시키고 이 인간을 새로 나게 해야 해요." 지금부터 48년 전인 1958년 4월 23일었다.

반세기 전 한국 농촌이나 농업의 상태는 어떠했던가? 전 인구의 75%는 농촌 지역에 살고 있었지만 1년 내 농사를 지어도 하루 세끼 밥 먹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농민의 4분의 3은 소작이었고 농업 생산고의 39%는 고리대 이자로 지출되었다. 농촌은 가난, 무지, 질병, 인습의 대명사처럼 여겨진 반면, 근대화는 도시화와 동일시돼 농업과 농촌 이탈은 이미 일제 시대부터 식민지 권력과 농촌이란 비극적이고 비대칭적인 구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농촌이 한국의 어려운 현실을 극명하게 상징한 것이다. 같은 기간 전통적인 민간 교육기관이던 서당은 폐쇄되고 도시에 세워진 근대적 학교는 식민 통치에 필요한 인력 양성을 위한 것이어서 농촌은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 없었다. 그 시기 농촌에 남아 있던 농민은 약소국 한국의 현 주소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경향은 해방이 된 뒤에도 지속돼 도시 발전의 그늘 속에 농촌의 생산성은 더욱 악화되고 출세를 위한 도시 지향의 출세주의는 더욱 가속되었다. '현대 문명의 총아'라는 말에 걸맞게 산업화,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도시는 농경지를 빠르게 침식하면서 성장을 했다.

물론 농촌 현실을 외면할 수만은 없어서 1960년대에 다양한 이름으로 농촌구조 개선사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토지생산성 증가로 농업을 공업과 같이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목표였다. 그 결과 1970년대 쌀 자급이 달성되지만 급속한 근대화에 발맞춰 농업은 끝없이 경쟁력을 갖출 수 없었다. 농업 고유의 구조를 외면하고 발 빠른 개발과 근대화, 산업화 방식으로 농업 문제를 풀 수는 없었던 것이다.

***반세기 동안 더 악화된 우리 농업의 현주소**

한국 농업의 현주소는 농민 4명중 3명은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임차농이며 임차농이 빌린 농지의 70%는 농민이 아닌 외지 지주의 소유가 됐다. 농가의 부채는 10년 전에 비하여 3.4배 늘었고, 도농 간의 소득 격차는 1994년 99.5%에서 2004년 77%로 격차가 벌어졌다. 4000년을 이 땅에서 농사를 지어 왔음에도 먹을거리의 자급률은 25%에 불과하고 농가 경영주의 38.8%가 70세 이상이고 그나마 최저 생계비 이하로 사는 노인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오늘날 농촌의 실정이다.

이러한 농업과 농촌 소외 현실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경쟁과 성장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의 확장은 더 빠르게 진행되고 농촌은 더욱 도시화, 산업화에 압도돼 빠르게 쇠퇴하고 있으며 그 논리에 추중을 강요받고 있다. 성장률 곡선을 위해서 수입 개방은 물론 농지법도 외지인의 농지 소유를 더욱 쉽게 해주어 외지인 자본 투입으로 농촌이 활성화된다는 논리이다. 그것은 농민을 농촌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축출하는 정책이다.

아시아 영농 방식인 복합 소농의 육성보다 기계, 시설, 화학농업으로 기업적으로 경영하는 대규모 농업을 하려 하거나 줄어든 농지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해안 간척지를 막아서 확보하면 된다는 발상, 농촌의 경제성 제고를 위해서는 도시민의 관광 휴양지나 공원, 도시의 확장된 외곽으로 만들려는 발상도 같은 논리이다.

올해부터 농어촌 교육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군별로 우수한 고등학교를 육성한다고 한다. 이런 학교에는 시설의 현대화, 학사 운영의 자율권 등 집중 지원을 하여 우수 인재의 도시 진출을 막고 농어촌 학생의 도시 진출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농촌이나 지역에 고유한 교육이 아니라 도시와 같은 교육을 하여 농촌 인구 감소를 막겠다고 하지만 결국 출세, 일등주의, 선발형 도시 교육을 농촌에 연장하여 도시 진출에 유리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마치 농업학교는 농업과목을 줄이고, 진학중심으로 나가야 살아남는다는 논리와 같다. 도시로 나아가는 교육을 받은 학생이 농촌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견 자립 영농인 양성을 목표로 경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농업 중심으로 진행된 농업교육은 1980년대 한 도에 20여 개교씩 있던 농업학교를 1~2개교로 줄여놓았다. 이마저도 농업이라는 말 대신 생명,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농업을 가르치는 학교는 농촌에 없고 큰 도시에 있고 그 이상의 농업교육기관인 농업대학은 더 큰 도시에 있다. 거기서 농업을 배운 사람 중 과연 몇이나 농업과, 농촌문화와 농민을 이해하며 농업에 종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삶의 문제로 농업문제를 인식하자**

2000년에 들어서서 농업을 경쟁과 성장의 도시 산업화의 논리가 아닌 다른 각도로 농업을 보는 시각이 자라고 있다. 그것은 우리 지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시각이다. '지속 가능'이란 현재를 사는 모든 사람이나 미래 세대가 동등하게 살 권리를 인정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 사회란 말이다. 발전은 자연 파괴, 빈부 격차, 전쟁을 초래하는 경제 일변도가 아니라 환경, 경제, 사회가 상호작용을 하며 균형 있게 진보하는 것이다. 현재의 경쟁 우선주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기반으로 하난 발전은 미래 세대에게 큰 위험 부담을 준다는 한계를 자각하기에 이르렀다.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우리 생명의 지속이 위협을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 새로운 가치, 새로운 사회 질서의 개편을 요구한다.

농업에 있어서도 지속 가능성이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영국의 환경장관 마이클 미처는 올해 7월 14일 국제회의에서 "지금의 농업 구조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과거 40년 동안 세계에서 가뭄, 사막화, 대규모 허리케인, 홍수 등 기후의 큰 재해와 이상 사태가 10배나 많아졌고 그 결과 많은 농경지가 사용 불가능하거나 불모지가 돼 그 결과 세계 전 인구 중에서 5억 명은 먹고 살 경작지가 없다고 한다.

또 최근 유엔(UN) 보고로는 세계 여러 나라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30개 국가는 기후 변화 때문에 식량 부족에 직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거리의 국제 무역은 2배 이상 증가했다. 매일 같이 보도되는 먹을거리의 안전이나 먹을거리 자체의 절대량 부족에 직면하면서도 '경제 성장만 되면 먹을거리는 외국의 고급 농산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휴대폰, 반도체의 수출이 부진하거나 국제 신용등급의 하락에 더 신경을 곤두세울 뿐 국내 농업 자급률은 곤두박질 쳐도 신경을 쓰지 않는 주술에 우리는 걸린 것이 아닌가!

초가집 학교가 충남의 시골에 세워진지 반세기. 그때의 농촌과 도시 구조는 지금의 상황과 그대로 중복되고 있다. 그 때도 우리는 결코 농업과 농촌의 재생을 위하여 과학, 정책, 기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인간의 본래 의미를 찾는 새로운 삶의 문제를 절박하게 인식할 때 새로운 시대의 총아인 농촌, 농업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은 수난의 장소.
수난의 역사의 상징.
햇볕에 가려 그늘이 드린 곳.
정성 다해 힘을 다해 도시를 먹이고 길러냈건만,
제 어미를 학대하고 빼앗아 이 천대가 웬 말인가?
그렇다. 흙을 헤치고야 싹이 나오듯
농촌의 짐을 지고
허위의 문명 밝힐 영원한 나라 세우는 일에 우리 목표를 걸자.
바닷가 조개마저 기름 냄새로 먹을 수 없게 된 채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의 우맹들
새 시대의 총아는 농촌이다.
농촌의 미래는 사명을 자각한 인간교육에 있고
그것이 민족과 인류 문제 해결의 열쇠다."

-이찬갑, '풀무학교 개교를 맞이하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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