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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서울대총장 "대학 자율성, 허울조차 안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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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운찬 서울대총장 "대학 자율성, 허울조차 안 남아"

개교59돌 기념사…"일일이 지침 받아야 하는 지경"

최근 국정감사에서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의 본고사화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치권과 공방을 벌였던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14일 대학의 다양성 강화를 위한 자율적 노력을 제한하는 정부의 정책태도를 비판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정 총장은 이날 59주년 개교 기념식에서 "자율성은 대학 존립의 으뜸 원칙인데 안타깝게도 대학의 자율성은 허울조차 남아 있지 않다"며 "(정부는) 창의적 인재를 선발하고자 하는 대학인의 노력을 정책으로 묶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입시안 논란을 염두에 둔 듯 "지식의 단순암기 능력이 아니라 통합적인 사고능력을 측정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서도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는 지침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참담한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서울대는 다양성 확보를 위해 입시제도를 고쳐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했고 타교 및 타학과 출신의 채용비율을 높였다"며 "우리 대학이 세계 일류의 지식을 창출하는 교육 및 연구기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다양성과 자율성 확보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생산적 경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균등주의가 만연해 있다. 국가의 장래가 대학교육의 수월성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 절실하다"며 "다양한 구성원이 자율적 책임으로 수월성을 추구할 때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정 총장의 기념사 전문.

***기념사**

오늘 서울대학교는 개교 59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뜻깊은 날을 빛내기 위해 이 자리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존경하는 전임 총장님, 총동창회장님과 동문 여러분, 내빈 여러분, 그리고 동료 교수, 직원, 학생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서울대학교를 빛내시고 국가와 인류사회에 크게 공헌하신 두 분 동문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모시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신양문화재단 이사장이신 정석규 동문께서는 공과대학 화공학과를 졸업하시고 모범적인 기업인으로서 한국의 고무산업 발전을 선도하신 분입니다. 정석규 동문께서는 신양학술정보관 건립과 신양학술기금을 통하여 교육 및 연구 여건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하셨을 뿐 아니라, 다양한 장학사업으로 후학양성에도 진력하고 계십니다.

이종욱 동문께서는 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일찍이 세계보건기구(WHO)에 투신하여 남서태평양 지역의 질병퇴치를 이끌어오신 분으로, 지금은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맡고 계십니다. 세계 곳곳의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와 인술로 한 평생을 살아오신 이종욱 동문께서는 전 세계에 한국인의 위상과 서울대의 명예를 드높이셨습니다.

서울대학교의 긍지와 명예를 드높이시고 후학들에게 자랑스러운 모범을 보여주신 정석규, 이종욱 두 분 동문께 다시 한번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올해는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우리 서울대학교는 그러한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우수한 인재를 길러왔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이제 우리는 날로 치열해지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헤치고 국제사회의 중심으로 나아가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우리 대학은 세계 일류의 지식을 창출하는 교육 및 연구 기관으로 발돋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성과 자율성의 확보가 핵심적 관건입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한데 모여 자율적인 여건에서 학문에 매진할 때, 비로소 대학은 지성의 전당으로 제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서울대학교는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먼저 서울대는 입시제도를 개선하여 신입생 구성을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지역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재들을 골고루 선발하여, 그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하였습니다. 그 결과 올해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한 전국의 고교 수는 모두 813개교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2000년 250여명에 불과하던 외국인 유학생 수는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 현재 1,000명 내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학생 구성의 다양화는 학습효과를 배가시키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국민통합에도 기여하여 서울대학교가 명실상부하게 국민의 대학으로 거듭나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교수의 구성을 다양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최근 3년동안 타교 및 타학과 출신의 채용 비율이 40%를 넘었으며 여성 교수의 채용 비율도 20%에 이릅니다. 또한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외국인 교수를 100여명까지 모셔올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서울대학교는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교수와 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교수님, 그리고 교직원 여러분,

우리 대학이 세계 일류의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하여 또 한가지 풀어야 할 과제는 자율성의 문제입니다. 헌법에 명문화된 대학의 자율성은 연구와 교육은 물론이고, 재정운용, 시설관리, 학생선발에 이르기까지 대학운영 전반에 걸쳐 대학 존립의 으뜸가는 원칙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대학의 자율성은 그 동안의 많은 노력과 건의에도 불구하고 허울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재정, 조직, 인사를 불문하고 대학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창의적 인재를 선발하고자 하는 대학인의 노력을 정책으로 묶고 있습니다. 지식의 단순 암기능력이 아니라 통합적인 사고능력을 측정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서도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는 지침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참담한 현실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생산적인 경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균등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국가의 장래가 대학교육의 수월성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 절실합니다. 거듭 강조합니다만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자율적 책임으로 수월성을 추구할 때 국가 경쟁력의 바탕이 되는 훌륭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교수, 직원, 학생 여러분

우리는 불 같이 성장했던 기적의 한 시대를 보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제 2의 기적을 창출하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대학의 주인인 우리 스스로가 자율과 책임에 걸맞게 자기혁신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 대학은 지금까지의 성과에 안주하느냐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서울대학교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 대학의 법인화 문제도 검토되어야 합니다.

겸허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희생으로 공적 가치의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줄 때, 서울대학교는 국민 모두에게 사랑 받는 민족의 대학으로 굳건하게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서울대학교가 세계 최고 대학의 반열에 서고, 우리나라가 인류평화에 기여하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벅찬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모두 다 같이 정진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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