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로 이름을 날린 명 앵커 봉두완 선생의 책 〈앵커맨〉을 받아들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얼마 전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뒤에 보내주신 책이라, 더더욱 생생한 느낌이 전해져 왔습니다.
자선전이라고 하기보다는 "인생 역정기"라고나 할까 또는 지난 세월에 겪었던 우여곡절의 일들과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그 예의 거침없는 말솜씨에 시원스럽게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세상의 안녕을 물으며 아침을 열었던 그가 이제 고희를 넘기며 자신의 안녕을 묻는다고 익살을 부리며 엮어나간 이야기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했습니다. 그가 만나고 겪었던 대통령들에 대한 이야기도 놓칠 수 없는 재미입니다. 한 2년 전에 나온 책인데, 지금 막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줄줄이 쏟아내는 달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봉두완 선생은 달변보다는, 마구 발음이 틀리고 엇갈리는 기묘한 눌변의 어조임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발언과 생각하면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표현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아 왔던 인물입니다.
신문기자, 방송인, 국회의원, 교수 등을 지내면서 지금도 원불교의 "원음방송"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를 보면, 솔직함과 쾌활함 그리고 열정이 넘치는 에너지가 콸콸 흐르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게다가 독실한 카톨릭 신도로서 나환자들에 대한 보살핌을 한결같이 해 온 그의 삶은, 겉으로는 잘 모르는 인간 봉두완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아직도 살아 있는 존재인지라 이렇게 저렇게 평가하는 것은 섣부르지만, 그의 책을 통해 만난 봉두완은 참으로 "이 시대의 귀여운 기인(奇人)"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앵커로서 방송을 진행해 온 그의 모습은 그의 책을 읽어 내려가는 저와 같은 입장에서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전했을까, 무슨 마음으로 권력에 대해 서슴없이 발언했던 것일까?
사실 그는 대중들의 마음은 시원하게 해주었는지 모르나 시사프로그램의 권위나 권력의 비위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 진행 때문에 오랜 방송생활을 했으나 한 프로에서 장수한 적은 없습니다. 타의에 의한 도중하차가 반복되었던 것입니다.
그건 지금도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가 맹활약했던 시절이 권력의 힘이 시퍼렇게 날이 서 있던 때인지라 더욱 그렇습니다.
앵커로서의 수명을 먼저 생각했다면 그는 장수프로를 만들어냈을지는 모르나 명앵커 봉두완으로 남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후 언젠가 그 길이 막히면서 깊은 좌절에 시달렸다가 방송으로 복귀하는 대목에서 인간 봉두완으로 다시 태어나는 대목은 여러 생각이 교차하게 했습니다. 국회 외무위원장을 두 번이나 지난 경력을 내세웠다면 아마도 그런 복귀의 결단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에 더하여 그는 신앙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았더군요.
봉두완 선생이 가진 정치철학이나 한반도의 현실을 바라보는 견해는 저와는 매우 다른 데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잠시 강연 차 귀국했을 때마다 방송으로 한 시간짜리 좌담을 여러 번 마련하는 등의 기회를 가진 것은 그의 인간적 넓이를 보여줍니다.
우파로서의 양심적 인사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 이가 있을 때, 좌우의 대화는 진솔해집니다. 진보-보수의 대화는 쓸데없는 핏대를 세울 일이 없게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확인하게 된 것은 인간적 진실에 대한 솔직함이 그에게 가장 큰 장점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 잡혀갈 만큼 일을 낸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권력의 모순에 대하여 그리도 겁도 없이 질타의 일격을 날렸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평생 남을 돕고 살겠다고 자신의 결의를 밝힌 그는 지금도 유머가 꽉 찬 인생입니다. 날 것 그대로의 대중들의 언어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려 하는 그의 어법은 누가 흉내 내기 어려운 친근감과 포복절도의 깨우침이 있습니다.
자신의 철학과 자신의 개성과 자신의 주장을 담아내는 시사 프로 진행자 앵커의 출현과 성장을 바라는 그의 목소리에는 방송언론의 자유에 대한 깊은 기원도 담겨 있는 것이었습니다. 봉두완 앵커철학입니다. 그건 기계적 중립을 넘어서는 방송 언론학이라고 할 만 합니다.
실로,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방송언론은 그만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의 자유, 그로써 세상이 보다 진실되고 지혜로워지는 그런 현실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방송언론의 책임은 실로 막중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은 〈프레시안〉의 편집위원인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에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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