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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려면…"

'초록 대안' 농업<9> 시골 아이들 키우기

교육에 많은 문제점을 느끼고는 있지만 개선을 위해 학교 참여를 활발하게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안학교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학부모다. 단지 아이들이 소중한 성장기를 성적 경쟁으로 희생시키는 일만은 피하고 싶어 일찌감치 시골로 들어왔다. 생계 기반을 도시에 두고 있으니 온전히 귀농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 교육에 관해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도 없는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다만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정 잘 모를 테지 하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딸 둘을 키운다. 5년 전에 여섯 살, 여덟 달 된 코흘리개들 손을 붙잡고 서울을 떠나왔다. 지금 경기도 여주에 산다. 큰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한 학년이 한 반씩이고 한 반 인원이 25명 안팎이다. 넓은 세상에 나가 남과 경쟁하며 실력을 쌓아야 할 아이들을 시골로 끌고 들어가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들로 만들어 놓았으니 우리 부부는 남들 보기에 대책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이나 우리나 자잘한 불평거리는 있지만 대체로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다. 어려서는 집에서 놀 때 뛰지 말라, 좀 커서는 학원 갔다 왔느냐, 학습지는 했느냐는 잔소리를 안 하고 사는 것만도 다행스럽다. 마음껏 뛰어 놀 시간은 부족하지만 또래 누구보다 많이 뛰어 놀며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으니 시골로 온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믿고 있다.

시골에서 살면서 가장 크게 받는 혜택은 역시 자연이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이 나무와 풀꽃 이름 대기, 곤충 알아맞히기 같은 퀴즈에 참가한다면 도시 아이들보다 결코 나을 것 같지 같다. 게으른 부모 탓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자연을 지식으로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싶지는 않다. 책 속의 지식이 아니라 내가 일부분으로 속해 있는 환경으로, 암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는 대상으로 자연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큰 아이는 올 여름 방학 숙제로 가족 신문을 만들면서 이렇게 쓰고 그렸다. 집 안에 들어온 개구리, 나방, 거미와 '어떻게 해?', 하며 난감해하는 자기를 그리고는 '우리 가족, 곤충과 함께 살아갑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깁시다', 하고 썼다. 여섯 살인 둘째는 겨울에 텅 빈 화단을 보고는 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도교육청 지정 특기적성시범학교다. 방과 후 중국어, 바이올린, 미술, 사물놀이, 골프 따위를 가르친다. 아이는 수업 끝나면 특기적성 교육에 참여한다. 보습학원이나 학습지는 하지 않고 있다. 피아노를 좋아해서 피아노 학원에만 다닌다. 학교 공부는 많이 안 하지만 하루해가 짧다. 이곳에도 학습지를 하거나 보습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적지 않지만 도시에 비하면 한결 느슨한 분위기다. 도시 학교들은 방학이면 외국으로 영어 연수를 떠나는 학생들이 상당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영어 연수 갔다 온 아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여주 교육청은 근래 원어민 영어 교사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규모가 작아 교사를 단독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학교들이 많아 서너 개 학교를 묶어 한 명의 교사를 초빙했다고 들었다.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남아공에서 온 선생님이 영어를 가르친다. 특기적성교육 강화나 원어민 영어교사 배치나 모두 '돌아오는 농촌 학교를 만들기󰡑를 위한 시책이라고 한다. 내가 사는 지역은 반경 20㎞ 안에 골프장이 8개쯤 있다. 그런 지리적 여건을 고려한 듯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는 골프반이 있다.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교정에 골프 연습장도 지었다. 주변에 골프장 안내판이 아무리 흔해도 초등학교에 들어선 골프 연습장은 아무래도 이질적이다. 그것 때문에 농촌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차라리 도서실이나 실험실을 실속 있게 운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는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통째로 필요하다고 했다. 이곳엔 아직까지 '마을󰡑의 전통이 그런 대로 남아있다. 그 󰡐마을󰡑을 잘 활용하는 방안이 있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스승의 날 일일교사체험이란 것이 있다. 학부모들이 교사가 되어 아이들과 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대개는 만만한 미술 전공 학부모들이 불려가 그리기나 만들기로 한 시간을 때운다.

시골은 도시와 달리 부모와 자녀가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동문 가정을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 세대 전에 학교를 다녔던 학부모를 불러 학교와 지역의 지난 역사를 듣는 것은 어떤가. 짚풀로 못 만드는 게 없는 누구네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방이나 모자를 삼아보는 것은 또 어떤가. 지역 사회와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새로운 역할과 기능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닫힌 학교󰡑가 아닌 󰡐열린 학교󰡑가 되기 위해선 학교를 운영하는 주체에게 무엇보다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리더십이 요구된다.

아이를 둔 사람들이 시골 와서 힘든 문제가 교통이다. 나도 시골에 와서 어쩔 수 없이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마련했다. 시골은 도시처럼 아이들이 걸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보행자를 위한 인도가 아예 없다. 그렇다고 버스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지금 다니는 학교는 작은 학교 버스가 한 대 있지만 학교 버스가 닿지 않는 곳에 살고, 집에 차도 없는 아이들은 학원 차를 이용해 하교를 한다.

아이가 이전에 다니던 학교는 학교 버스도 없어서 아이들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은 피아노 학원엘 몇 년 씩 다녀야 했다. 학원 차는 아침부터 아이들을 이 동네, 저 동네에서 학교로 실어 날랐다. 지자체와 교육청이 나 몰라라하고 사설학원에 아이들의 통학 문제를 떠넘겨버리고 팔짱 끼고 있는 꼴이다. 남편 따라 외국으로 연수를 다녀온 도시의 친구들은 우리 집에 와보곤 교육 여건이 외국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농담을 한다. 부모 없이 통학하기 힘든 점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가끔 평일에 골프장 버스가 텅 빈 채 오가는 것을 보면 낡은 학원 승합차에 콩나물 시루처럼 실려 다니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시골은 복지의 사각지대다. 도시에는 종합사회복지관 같은 시설이라도 동네마다 있어서 저소득층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시골은 그렇지 못하다. 부지깽이도 거들어야 할 정도로 바쁜 농번기에 아기를 맡길 데가 없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이 농촌 여성의 현실이다. 부모들은 돈 벌러 도시로 떠나버리고 조부모가 어린 손자녀를 돌보는 가정도 있다. 부모가 있어도 농사만으로 먹고살 수 없으니 엄마들도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한 공장으로 일하러 간다. 이런 가정의 아이들은 방학이면 방치되다시피 한다. 아이들이 점심 대신 봉지라면에 끓는 물을 부어 먹는다는 이야기를 큰애한테서 들었다. 재미로 그럴 수도 있고, 엄마가 챙겨놓고 간 밥을 제 손으로 차려먹기 싫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디선가, 누구라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차려 먹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라도 말이다.

시골에 살다 보면 가끔 아쉬운 것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다. 영화관도 가깝지 않고, 연극이나 클래식 음악 같은 이른바 고급 문화를 누리려면 서울까지 원정가야 한다. 집에서 멀지 않은 양평의 리조트시설에서 주말에 열린 야외 콘서트에 가본 적이 있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관객들은 모두 끼리끼리 도시에서 온 이들이었다. 비싼 입장권이 시골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멋진 음악을 들으며 낭만에 취해 있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곤 남의 잔치에 온 불청객 같은 위화감을 맛보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음악 숙제가 1년에 10편의 공연을 보고 보고서를 써오는 것이었다. 덕분에 세종문화회관 같은 큰 공연장에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그 때도 입장권은 비쌌지만 다행히 1000원 짜리 학생석이 있어서 현기증 나는 3, 4층에 앉아서 수준 높은 공연을 큰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다. 서울 근교 지역에는 도시민을 위한 휴양 시설이 많다. 이런 시설들에서 문화 행사가 열릴 때 지역 주민이나 최소한 학생들에게라도 할인혜택을 준다면 문화적으로도 훨씬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시골에 들어앉아 있어도 알아야 할 것들은 다 들려온다. 남과 똑같이 사는 것에 관심이 없는 나도 강남이나 분당 사람들이 놀러 와서 아이들 교육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간 날이면 심란해지는데 다른 사람은 오죽하랴. 소외되어 있다는 생각에 뒤쳐질까봐 더 전전긍긍하는 것이 보통의 시골 부모들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도시로 뜰 작정인 부모들도 적지 않게 보았다. 자식 교육을 위해 무작정 고향을 등졌던 우리 부모 세대의 사연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중고등학교 진학을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을 자주 받게 된다. 어릴 때는 시골에서 자라는 것도 좋지만 본격적인 입시경쟁을 앞두고 어차피 도시로 돌아가지 않겠냐고 관측하는 시선도 느껴진다. 남편은 우리의 지향과 능력에 맞는 대안학교를 찾아보자는 쪽이지만 대안학교가 능사라고 생각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어차피 교육을 사서 소비하는 것 아닌가. 더욱이 누구나 원한다고 골라서 소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일단 이 지역의 중학교에 진학시키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고쳐가도록 노력해보고, 안 되면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든가 그 때 가서 다시 한 번 고민을 해보는 식으로. 결론은 내리지 못했지만 어쨌든 부모와 지역 사회가 집과 학교에서 아이들의 성장에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아이들에게 충분히 주어야 할 것은 돈보다 시간이다. 나는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가 저녁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하고, 아버지들은 아이 학교에 더 자주 가볼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라면 왜 출산을 기피하겠는가?

유별난 부모 만나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빼앗기고 있다는 힐난도 들었다. 하지만 교육도 행복해지기 위해 받는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공부에 짓눌려 산다. 입시경쟁이 끝나면 이 아이들에게 행복이 찾아올 것인가. 정말 그러기를 나는 바란다. 그런데 묻고 싶다. 경쟁의 끝이 있다고 당신은 믿는지. 언제까지 미래를 핑계로 아이들의 행복을 유예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인지.

***필자 소개**

글을 쓴 고진하 씨는 10년 동안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 5년 전, 직장을 그만 두고 지금 살고 있는 시골마을로 이사했다. 남편이 서울까지 멀리 통근해야 하고 가계 수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자신의 직업을 포기해야 했지만 아이들과 자연 속에 살면서 깨우치고 얻은 것이 훨씬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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