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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한국은 '젊은 농군'을 볼 수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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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한국은 '젊은 농군'을 볼 수 없는 사회"

'초록 대안' 농업<5> 세계화 광풍 막아내는 현장

2015년 우리나라 시군별로 채 10명이 안 될 경이로운 한 집단의 이름은 무엇일까? 바로 '40세 미만의 농업 경영주'라고 한다. 얼마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른 내용이다. 앞으로 10년 뒤 2015년에는 농가 수가 지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0만 호로 이 중 40세 미만 농업 경영주는 기껏해야 2000명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200여 개 시군으로 평균을 내보면 군 단위로 10명이 될 수가 없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20년 사이에 100분의 1로 줄어든 수치다.

***농민, 소비자, 지자체가 함께 일군 희망의 싹**

전국토가 개발 광풍의 칼바람에 농지를 내어주고 있다. 어제까지 멀쩡하게 농사 짓던 땅이 하루아침에 아파트 단지나 공단으로 바뀌고 일년이 지나면 길을 찾기 힘들 정도로 무수한 도로가 닦인다. 농업 소득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감당되지 않는 많은 농가들은 자신의 땅을 내어주고 도시로 떠나거나 농촌에 주저앉는다 해도 농업이 아닌 다른 생계 방편을 찾는다.

그나마 농업에 애정을 가진 이들도 끝없이 높아진 땅값으로 더 이상의 농지 구입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웃한 논과 밭을 임차지로 경작하고 있다. 대부분의 농민이 자신이 소유한 경지 면적보다 몇 배의 땅을 임차해 농사짓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생산수단을 잃어버린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다 농업을 통한 생활이 점차 불가능해져 가는 마당에 2000명이 아니라 200명라도 남아 있을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총체적인 농업 파탄의 위기에 대해 농민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1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달라졌다. 전국의 수만 농민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채우고 "쌀은 우리 목숨이다"라고 제 아무리 처절히 외쳐봐도 그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시위 군중으로 인해 퇴근길 도심 교통이 혼잡하다는 교통방송만 되풀이될 뿐….

농업의 문제, 농민의 문제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을 함께 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정부 당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개방 농정을 넘어선 농업 포기 정책의 수위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회 풍토 속에서도 작지만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곳이 있다.

지역 농민들이 스스로 농민 조직을 만들어 생산과 유통, 소비 문제를 총체적으로 고민하고 이를 함께 해결할 지역 도시민과 쉼 없이 대화한다. 도시민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와 지역 농업의 정책 방향을 함께 의논하는가 하면 지역의 농협과 대학, 연구기관과도 농업과 관련한 많은 문제를 협의하며 군 단위 농업의 문제를 모두가 함께 풀어나가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한살림 아산시생산자연합회'다. 이 기구를 통해 우리는 작은 지방 정부라도 농민과 함께 농업에 대한 바른 농업정책을 수립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소비자들이 조금만 관심을 보여준다면 우리 농업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작은 희망을 엿보게 된다. 아산의 예는 농업이 우리 삶의 근간이자 생명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지역 사회가 깨닫고 풀어나가는 방식에 따라서는 우리 농촌의 미래가 바뀔 수도 있음을 시사해주는 귀중한 사례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세계화의 광풍도 넘어설 수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산은 농업 지대였지만 고속철도가 놓이고 행정수도 바람이 불고 난 뒤 아산은 이미 농도가 아니었다. 거대한 수도권 아랫녘에 묶인 또 하나의 서울일 뿐….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농업을 통해 그 희망을 찾으려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1990년대 후반에 30여 명의 농민이 모여 출발한 아산시생산자연합회는 채 10년이 되기도 전에 회원 농가 500여 명에다 지난해 이들이 생산한 생명의 먹을거리가 10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120여만 평에 이르는 논과 50여만 평의 밭에 밀과 콩을 농약과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무농약 이상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으면서 크고 작은 시설 하우스에서는 제철 채소 50여 가지를 생산하고 있다. 이들은 농업 생산물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 농업의 희망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아산연합회에 참여하는 농가들은 마을별로 '반'을 결성하고 한 해 농사에 대해 반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농사지을 작물을 결정한다. 작물 결정뿐만 아니라 파종 시기까지도 함께 의논해 정하고, 농산물의 가격도 이 즈음에 이미 결정된다. 농민 자신은 농사 지으면서 생겨날 각종 병균과 벌레 퇴치 방법만 고민하며 열심히 농사 지으면 된다. '올해는 무얼 심을까', '소득은 얼마나 될까' 하는 일반 농민들의 시름은 이미 절반을 덜고 가는 셈이다.

생산된 물품을 아산연합회 물류센터로 보내면 농산물의 인수와 운송은 연합회에서 책임 진다. 생산된 농산물은 한살림이라는 단체로 전량 계약 출하된다. 혹여 생산물에 하자가 발생해 반품된다 하더라도 큰 걱정은 없다. 인수 과정에서 꼼꼼히 검수된 농산물만을 인수하기에 그 이후 발생한 문제는 연합회가 모두 처리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자신들의 출하금액 1% 정도를 생산안정기금으로 모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러 이상기후나 자연재해로 농사가 망가질 경우에도 이 기금은 유용하게 활용된다. 물품대금 역시 공동으로 구입한 자재나 기타 비용을 제외하고 농민의 손에 직접 전달된다.

벌써 20년 전부터 우루과이라운드나 WTO로 표현되는 국경 없는 농산물 교역시대를 예상하고 농민 스스로 살아남을 준비를 단단히 해 온 노력의 결과다. 그뿐만 아니라 500여 명의 농민들이 아산시연합회의 활동방향을 믿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단합된 모습을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투기 광풍과 수입 농산물을 넘어서기 위하여**

이들에게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천안과 아산 시가지를 중심으로 공단과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들 또한 농토에서 점점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땅을 잃어버린 농민들은 또 다른 변두리로 자리를 옮겨보려 하지만 이미 높이 치솟아버린 땅값은 외곽으로 나서 봐도 별반 차이가 없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점차 늘어나는 수입 농산물의 영향도 무시 못 할 일이다. 얼마 전 모 대기업에서 엄청난 양의 중국산 김치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문제를 두고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이 항의하는 사태가 있었다. 이 중국산 수입 김치의 판매로 인해 서울도매시장의 배추 반입량이 30% 정도 감소되었다는 보고도 잇따랐다. 김치는 그야말로 종합식품이어서 배추, 무뿐만 아니라 양념채소인 고춧가루와 마늘, 양파, 파 등 이 땅의 주요 농산물의 소비량에도 줄줄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값싼 수입농산물이 점차 우리 식탁을 점령하는 여파로 인해 애써 농사지은 농산물의 출하가 올해 들어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수입 유기 농산물의 문제는 더욱 심각한 지경이다.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도시민들이 자칫 '안전성'에만 관심을 갖는 자기 보신주의로 흐른다면, 재배조건이 훨씬 열악한 이 땅의 생명 농산물이 버텨날 재간이 없다. 그래도 이들은 이 틈바구니 속에서 농민 스스로 살아남을 조건을 만들고 농촌을 지켜나가고자 한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은 지역 농산물을 가공하는 여러 가지 식품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지역에서 생산된 콩을 이용하는 자그마한 콩나물 공장을 시작으로 2000년에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여 두부 생산을 시작했고 2005년도부터는 무농약 콩을 원료로 하는 두유 생산까지 시작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내 50여만 평에서 재배된 무농약 밀의 정선과 제분까지 감당하고 있고 이를 전량 한살림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농민들이 식품 공장을 경영하는 일이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어 보였지만 이들이 이 어려운 일을 시작하고 성공하게 된 이유는 지역 농산물을 적절히 가공할 기반시설이 없이는 안정적인 농업 생산도, 소득도 기대할 수 없다는 나름의 자기 전망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놀라운 일은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이 소수 농민들의 출자나 참여가 아닌 생산자연합회 구성원 모두가 크든 작든 자신이 참여하는 조직의 운영의 주체로 당당히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이들이 얻는 수익은 연합회에 소속된 생산자 개인과 지역사회에 고스란히 환원되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다. 뒤늦게 참여하는 농가들의 생산기반을 지원하는 데에도 그 몫이 쓰이고 있다.

이들이 생명의 농업, 희망의 농업을 아산 시 전역으로 넓혀나가면서 해결하고자 하는 고민거리가 또 한 가지 있다. 생명농업은 말 그대로 생명질서의 원리대로 화학합성농약이나 비료 대신 지역에서 활용 가능한 자원을 이용해 '땅심'을 높이고 병해충 방제를 위한 자연제제도 만들어 농사짓는 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땅의 많은 농민들은 이러한 생명 농업의 원리에 충실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기반이 취약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산 생산자들이 수 년 전부터 고민한 부분이 바로 '경종 농업과 유기 축산의 결합' 문제였다. 지금 우리나라 대부분의 축산 농가들이 소나 돼지, 닭을 키우면서 옥수수나 콩 등 값싼 수입산 유전자 조작 곡물 사료에 의존하고 좁은 공간에서 대량으로 밀식하는 사육 환경 때문에 사료에 다량의 항생제나 성장호르몬을 투여하는가 하면 수의약품에 의존해 가축을 기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축산의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 벼와 밀, 콩 등을 자신들의 전체 경작면적 200여만 평에서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볏짚과 콩대, 그리고 그 가공과정에서 얻어지는 쌀겨와 밀기울, 또 두부나 두유 생산과정에서 생기는 비지 등을 활용해 수입 곡물사료를 대체할 야심찬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런 사육환경에서 자란 가축의 분뇨를 농사 과정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유기재배용 퇴비는 대부분 수입산 원료로 만들어진 것인데, 이런 수입 유기농 자재를 대신해서 축산분뇨 등 지역 내 부산물을 활용하는 지역 물질 순환 원리 또한 충실히 실현할 수 있는 방도를 실현코자 하는 것이다. 덧붙여 규모화된 축산을 지양하고 경지 면적이 작은 농가를 중심으로 소규모 복합영농을 유도해 지역 내 농업 소득의 균형을 잡아가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자체, 소비자, 연구기관의 연대와 뒷받침이 있었기에**

이들은 이 모든 활동의 성과를 이뤄내기까지 지역 농민들의 참여뿐만 아니라 이를 실현하는데 도시 소비자와의 연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미 20년 전부터 한살림과 그 인연을 맺어 작지만 탄탄한 도시민과의 연대를 계속해 왔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농민들 스스로 천안과 아산지역을 중심으로 직접 도시 소비자 회원을 조직하고 자신의 농산물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3000여 명의 인근 지역 소비자와의 교류를 일년 내내 계속하고 있다.

특히 우리 농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쌀농사와 관련해서 체험단을 모집해 볍씨 뿌리기에서부터 못자리 만들기, 모내기, 피사리, 가을 수확에 이르기까지 일년 동안 쌀농사의 전부를 도시회원들과 함께 하면서 쌀농사의 중요성을 현장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잊혀져 가는 세시풍속을 계승하는 마을 내 단오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고 50여 가지가 넘는 채소 작물을 통해 다양한 농사체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함으로서 농촌문화의 소중함과 우리 농업의 가치를 널리 알려내고 있다.

게다가 지방 정부와 함께 아산의 농업문제를 고민하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지역 농업의 큰 그림 또한 함께 그려가고 있다. 이는 지방 정부와 농민이 함께 지역농정을 만들어가는 파트너십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역 내 각 대학과도 산학협동 체계를 굳건히 해서 현장의 농민이 필요로 하는 각종 연구 과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고 있다. 얼마 전 아산 지역은 이런 노력의 결과물로 지역물질 순환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농업 클러스터 사업을 획득했다. 이제 이 사업으로 농업을 중심에 두고 민·관·학이 연대해 그물망처럼 촘촘히 연대하고 지역 내 과제를 해결해가는 3년간의 사업이 진행될 것이다. 아마도 예전보다 더욱 짜임새 있는 지역농업을 고민해나갈 물적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모두가 이 땅의 농업 전망이 어둡기만 하다고 한다. 마을공동체는 해체되고 농촌은 공동화된다. 농촌에 젊은이는 보이지 않고 머리에 허연 서리 내린 영감님들만 늘어가고 있다. 학자들이 예측한대로 10년 뒤 젊은 농사꾼이 이 땅에 2000명이라도 남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농업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아직도 아산지역과 같이 농업을 통해 자기 삶을 실현하는 350만 명의 농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산시생산자연합회는 향후 3년 동안 아산시 농업인구의 20%를 현재의 자신들과 같이, 농사를 통해 행복과 희망을 만들어가는 생명농사꾼으로 만들어갈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을 실현시킬 농토를 개발의 광기로 파헤치고 뭉개지 말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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