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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에 구멍이 뚫렸을 때 대처법은?"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37> 인공피부

이제 점점 가을이 깊어가고 있군요. 운전을 할 일이 있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는데 문득 차 문손잡이가 어찌나 차갑던지, 새삼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밖에 세워두면 뜨거워서 제대로 잡지 못했던 것 같은데 계절이 빨리도 바뀌었군요.

차가워진 손을 문질러 열을 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앞으로 우리 생활에 로봇이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게 된다면 로봇의 겉은 금속이 아니라 다른 부드럽고 따뜻한 것으로 덮어 씌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요. 만약 모든 로봇이 영화 <아이, 로봇>의 써니처럼 온통 금속으로 덮여 있다면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차가워서 만지기 싫을 테니까요.

과학자들도 물론 이 점에 대해 고려하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 강성철 박사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로봇이 사람과 생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성"이라며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할 로봇에는 사람 피부와 같이 부드러우며 사물의 촉감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인공피부가 적용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실제 강 박사팀은 사람 피부와 비슷한 느낌을 갖는 인공피부를 실제 로봇에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어 곧 공개할 예정이라는데요, 노인들의 생활을 돕는 이 로봇의 이름은 '실버 메이트(Silver Mate)'라고 해요.

사실 로봇의 인공피부는 인간의 손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것과 함께, 미세한 감각을 느껴 힘 조절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습니다. 로봇의 손이 차갑고 뜨거운 것이야 약간 불편한 정도에 불과하지만, 힘 조절을 하지 못해 악수를 하는데 손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세게 잡는다는지 아기를 돌보면서 너무 세게 안는다는지 하는 것은 치명적인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요. 현재 실버 메이트에 적용되는 인공피부의 센서는 100g의 물체를 들었을 때 이 무게를 오차 범위 10g 이내로 인식해 그에 맞는 적당한 힘을 조절하는 센싱이 가능할 정도이고, 앞으로도 더 세밀한 자극을 인간의 피부처럼 구현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 진행할 예정입니다.

사실 인공피부에 대한 연구는 로봇에게 인간의 피부와 비슷한 외피를 덮어 씌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고로 피부를 잃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피부를 이식해 주기 위해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피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실제 우리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위'로 인식해 심장이나 뇌처럼 중요한 기관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피부는 우리 몸의 일차 방어벽 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한 조직입니다. 만약 우리 몸이 피부로 덮여 있지 않다면 인체는 당장에 온갖 세균과 바이러스의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건강한 피부에는 어떠한 세균도 침입할 수 없지만, 상처를 입어 피부가 찢어지면 감염의 위험이 늘어난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알고 있지요? 이것은 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가 내부 장기는 치명적인 상해를 입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할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피부가 손상돼 세균의 침입에 매우 취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즉, 피부는 우리 몸의 내부 장기를 든든히 지켜주는 만리장성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화상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피부의 손상으로 인한 세균감염으로 패혈증을 앓게 되는 경우랍니다. 심한 화상 환자의 온 몸에 붕대를 둘둘 감아놓는 것은 약이 침대 시트에 묻을까봐가 아니라, 피부의 노출로 세균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신장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면 사람들은 신장 이식 수술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피부는 어느 정도 재생 능력이 있어서 가벼운 상처 정도는 저절로 아물게 할 수 있지만, 심한 손상으로 조직이 죽어버렸을 때는 이식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이용된 방법은 자가 피부 이식술(autologous skin drafting)이었습니다. 이 방법은 환자의 화상 범위가 아주 크지 않을 때, 화상을 입지 않은 다른 부위의 피부를 떼어내어 화상 부위에 옮겨 붙이는 방법입니다. 주로 건강한 피부는 조금 떼어내더라도 재상되는 특성을 이용한 방법인데요, 이 방법은 환자 자신의 피부를 이식하기 때문에 면역 거부 반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장점이랍니다. 하지만, 피부의 재생 가능한 면적은 한계가 있어서 무한정 떼어낼 순 없고, 떼어낸 부위에 흉터가 남기 때문에(그래서 주로 엉덩이나 허벅지 등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의 피부를 이식하곤 하지요) 전신화상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쓸 수 없는 방법이랍니다.

자신의 피부를 이식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면 전신화상을 입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 심장이나 간장, 췌장 등 주요 조직은 장기 기증자가 사망하면서 기증한 장기를 주로 이식받습니다. 마찬가지로 피부도 다른 이에게서 이식받을 수 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1년 12월, 교통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은 20대 남자에게 기증자의 사체에서 떼어낸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이 성공한 이후 이 방법이 종종 이용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부를 이식받는다고, '양들의 침묵'의 '버팔로 빌'을 떠올리는 분은 없으시겠죠? 떽!

그러나 이렇게 남의 피부를 이식받는 방법은 좀 더 넓은 부위를 커버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다른 장기 이식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조직을 받을 때에는 면역 거부 반응에 대해 걱정해야 합니다. 실제로 사체에서 떼어낸 피부는 바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면역 억제제를 처리한 뒤에야 이식하지만, 그래도 우리 몸의 면역계는 예민하여 새로 붙여진 피부가 자신의 것이 아님을 간파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이식된 피부는 환자의 몸에 붙지 못하고 죽어버리기 때문에 이식이 소용이 없게 되지요.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의 피부를 이식하는 일인데 이 건 조금밖에 이식할 수 없고, 그렇다고 남의 피부를 이식하자니 면역거부반응이 걱정되고…. 참, 골치아픈 일이네요.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거부반응도 없고 충분한 양의 피부 조직을 얻어낼 수 있을까요?

이런 경우에 도입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가배양 인공피부랍니다. 이 방법은 환자의 피부조직을 조금 떼어내어 이를 시험관에서 배양하여 양을 늘린 후에 이식을 하는 것입니다. 환자의 정상 피부조직을 약간(약 1~3㎠) 떼어내어 이들을 효소로 처리해 세포를 하나하나 떼어낸 뒤 이를 증식시키면, 2주 안에 원래 떼어낸 양보다 1만 배 정도의 피부세포를 얻을 수 있지요. 사람의 피부 전체의 면적이 1.6~2.0㎡ 정도 되니까, 전신화상을 입은 사람에게 이식하고도 남는 양의 인공 피부를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단, 이 피부가 제대로 생착되어 완전히 재생되기까지는 3~5년 정도 걸리고,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생체 이식용 피부의 인공배양은 화상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매우 도움을 주는 발명임에는 틀림없을 듯합니다.

현재 이런 자가배양 인공피부는 '에피셀(Epicel)', '홀로덤(Holederm)' 등이 시장에 나와 있습니다. 또한 요즘에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인공피부의 개발도 눈앞에 다가와 있지요.

현대 의학은 점차 질병을 단순히 치료하는 것에서 벗어나 좀 더 근본적인 생체의 치유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즉, 환자가 신체에 이상이 생겼을 때 이 이상의 원인만을 제거하는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인 제거 이후, 인체를 원상태로 복귀시켜 제 기능을 수행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는 생체기관이 완전히 망가졌을 때에 대비해, 이를 복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로 인해 생명 경시라는 윤리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체세포 복제와 줄기세포 연구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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