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잠에 취해 있을 시간인 이른 새벽, 문득 몸을 스치는 한기에 눈을 떴습니다. 어찌나 추운지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더군요. 더위에 시달려 에어컨을 끌어안고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부터 새벽녘에는 싸늘한 공기 때문에 따뜻한 이불이 그리워지네요. 이제 정말 가을이 왔나 봐요.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지나간 여름날의 더위를 대신해 우리 곁에 찾아온 새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에 새삼 기분이 좋아집니다. 맑고 청명한 가을 날씨는 기분만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여름 더위에 지쳐 잃어버렸던 입맛도 되찾아 줍니다. 게다가 가을은 풍요의 계절, 결실의 계절이니 제 철을 맞은 햇곡식과 과일들이 군침을 가득 돌게 하네요. 오죽하면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하겠어요. 물론 가을에 음식이 당기고 살이 찌는 게 꼭 말(馬)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그런데 가을이 되어 잃었던 입맛을 되찾은 것은 좋은데, 너무 식욕만을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확 불어나 버린 몸무게로 고민하기 십상입니다. 도대체 왜 가을이 되면 입맛이 당기고 살이 찌는 걸까요? 여기에는 어떤 근거가 있는 걸까요?
가을이 되면 입맛이 살아나고 살이 찐다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1999년 미국 조지아 주립대에서는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봄보다 하루에 222칼로리 정도를 더 섭취하면서도 더 쉬이 배가 고파진다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더군다나 가을이 되면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기초 대사량도 줄어들어 에너지도 덜 필요하면서 말이에요. 여름에는 날씨가 더워 체온을 낮추기 피부 표면의 혈관이 확장되고 땀을 발산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소모되기 마련인데, 가을이 되어 살아가기 딱 좋은 날씨가 되면 이런 행동들을 할 필요가 없어서 에너지 소모가 줄어들게 되지요.
에너지 소모는 줄었는데 오히려 식욕은 늘고 배도 빨리 고파져서 먹을 것을 많이 찾게 된다? 그 결과는 당연히 몸 여기저기에 지방층을 쌓아놓는 것으로 결론 나게 됩니다. 우리 몸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순응하도록 진화되어 왔습니다. 가을이 가면 추운 겨울이 옵니다. 사람을 비롯한 온혈동물들은 아무리 추워도 항상 같은 체온을 유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추운 겨울, 조금이라도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피부 아래 지방층이 두꺼운 것이 유리합니다.
지방은 자연적인 단열효과가 있어서 내장의 열을 외부로 빼앗기지 않도록 하고, 외부의 차가운 공기가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차가운 얼음바다에 사는 바다코끼리나 바다사자가 빙산 위를 맨몸으로 기어 다녀도 끄떡없는 이유는-만약에 사람이 이렇게 맨몸으로 다니다가는 온몸에 동상이 걸려 얼어 죽고 말 거에요- 그들의 피부 밑에는 아주 두꺼운 피하지방층이 버티고 있어서 훌륭한 단열재 역할을 하기 때문이랍니다.
따라서 우리 몸은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몸 속에 지방을 충분히 쌓아두어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추위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동물들 중에는 같은 종류라도 더운 지방에 사는 동물들보다 추운 지방에 사는 동물들이 몸집도 크고 더 뚱뚱하지요.
곰 중에서 가장 덩치가 작은 말레이 곰은 동남아시아에 살지만, 육중한 북극곰은 추운 극지방에 삽니다. 같은 호랑이도 추운 지방에 사는 시베리아 호랑이가 더운 곳 출신인 벵골 호랑이보다 평균적인 덩치가 더 크지요. 덩치가 크다는 것은 같은 체중 당 노출되는 피부의 면적이 작다는 것으로 이는 열의 손실이 적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한 큼지막한 몸집은 지방을 더 많이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추위를 견디는 데 유리하답니다.
또한 지방을 몸 속에 저장하는 것은 추위를 막기 위한 것 외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겨울철은 계절의 특성상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입니다. 겨울은 추위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허기는 겨울을 더욱 혹독하게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따라서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을 무사히 버텨내기 위해서는 먹을 것이 풍부하여 많이 먹을 수 있을 때 실컷 먹어두어 지방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겠지요. 특히나 이런 현상은 겨울동안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답니다.
가을이면 기초대사량이 떨어지고 식욕이 늘어나며, 봄이 되면 기초 대사량은 올라가지만 나른해지고 식욕은 떨어집니다. 이는 각각 추위와 더위를 좀 더 수월하게 이겨내기 위해 우리 몸에서 계절을 미리 준비하는 현상이랍니다.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계절의 변화를 우리 몸은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발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아직 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던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참고로 체중조절을 원하신다면 봄에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것이 가을에 시작하는 것보다 유리하겠지요. 가을은 체중을 불리는 계절이지, 날씬한 몸매를 원하는 시절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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