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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건희 회장이 결단을 내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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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제 이건희 회장이 결단을 내릴 때다"

<역사비평> 경고…'삼성 독재'에 더 늦기 전에 대응해야

삼성 그룹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 독재'의 실체를 바로보고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갖고 삼성 개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다.

***"'삼성을 벌(罰)할 수 없다'는 대중 심리가 확산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최근 출간된 <역사비평> 2005년 가을호(제72호)는 '삼성의 힘, 삼성의 그늘'이란 특집을 마련하고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삼성의 명암을 집중 조명했다.

<역사비평>은 "지금 삼성에 주목하는 좀 더 본질적인 이유는 이 재벌 기업이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경제' 분야에 국한된 '주체'가 아니라 정치와 사회, 그리고 문화 전반에 걸쳐 매우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치는 거대한 공룡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며 "특히 국내적으로 아무리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한국 경제의 자존심이자 최후 보루이며 경제 성장의 가장 강력한 동력인이기 때문에 삼성을 벌(罰)할 수 없다는 대중 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더욱 더 큰 문제"라고 기획 이유를 밝혔다.

<역사비평>은 "오래 전부터 삼성 특집을 준비해 왔지만 필자 선정 문제로 곧장 현실화하지 못한 데는 삼성을 학문적으로 접근할 자료가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더 본질적 이유는 삼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자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정치 권력보다 경제 권력 삼성이 학자들에게도 더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특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닥친 어려움을 토로했다.

***"'국민기업' 삼성, 정작 국민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우선 송원근 진주산업대 교수(경제학)는 '삼성의 경제력과 성장의 그늘'이라는 글에서 삼성의 경제력의 실체를 구체적인 자료를 토대로 정확하게 가늠하는 기회를 가졌다. 특히 이 글에서는 삼성이 그간 알려진 것처럼 국민을 '또 하나의 가족' 같이 생각하는 기업과는 거리가 먼 현실이 구체적으로 지적됐다.

이 글에 따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은 철저하게 '인원 감축'을 위주로 이뤄졌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인력 감축이 진행돼 1997년 말 삼성의 총 피고용자 수는 16만7000명이었는데 1999년 말에는 11만3000명으로 2년 사이에 무려 32%가 줄어들었다.

이렇게 5만4000명의 노동자가 길거리로 내몰렸으니 기업 경영의 성과 가운데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1987년 이후 삼성 계열사들의 부가가치 생산액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인 '노동소득 분배율'의 추이를 살펴보면 1980년대 후반 노동소득 분배율은 40% 이상을 차지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를 지나면서 이 비율은 20% 이하로 급격히 하락했다.

삼성이 '나눔 경영', '사회공헌 활동' 등을 강조하고 있는 최근에는 이 비율이 좀 올랐을까? 2004년에 이 비율은 오히려 10% 대로 더 떨어졌다. 자본 집약도가 높은 반도체 산업 중심의 삼성전자가 삼성 전체 매출의 54.9%를 차지하는 현실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낮은 비율은 뜻밖이다. 안정된 일자리 공급과 그를 통한 소비 촉진이 국민 경제의 화두였을 때 삼성은 나 몰라라 했던 것은 아닐까.

***"5만4000명 길거리로 내몰면서 2세, 3세들 재산 분리에 몰두"**

특히 삼성이 5만4000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동안 정작 '삼성家'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삼성은 인력 감축에는 신경을 쏟으면서도 정작 외환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과잉 중복 투자를 해소하기 위한 구조조정에는 인색했다. 자동차 산업 등 그 한계가 분명한 사업만 정리됐을 뿐 신세계, 제일제당(現 CJ), 중앙일보 등 계열사 분리는 재벌 2세 혹은 3세들의 재산 분리의 의미가 더 강했다.

그나마 재벌 3세 이재용 씨를 그룹의 후계자로 양성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시도한 인터넷 분야의 신규기업 설립이나 주식 취득 등으로 계열사 수는 다시 증가해 2005년 4월 현재 9개의 금융ㆍ보험 계열사를 포함해 총 62개에 달한다. 이는 1997년 외환 위기 직전의 80% 수준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삼성은 '경영 능력을 가진 이재용'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무려 16개의 계열사를 가진 'e-삼성(주)' 등을 설립해 인터넷 관련 사업을 추진했으나 결국 2000년대 초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큰 실패를 하게 된다. 결국 이재용 씨의 소유 지분은 초기 투자액을 상회하는 비싼 가격으로 삼성의 다른 계열사들이 떠안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가만히 앉아서 수백억 원의 손실을 떠안게 된 계열사 주주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었음은 물론이다.

***"'이건희 신화' 과장돼…경영 개입 줄인 것이 삼성 성공의 원인"**

국민은 물론 주주도 외면하는 '이건희 왕국' 삼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삼성 게이트는 어디로'라는 글에서 삼성 개혁의 본질은 이건희 회장의 '황제 경영'을 혁파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기원 교수는 "삼성에서는 '반도체 성장을 주도했다'거나 '불량 휴대폰을 대거 소각함으로써 품질 경영을 달성했다'는 등의 이건희 신화를 많이 퍼뜨려 왔지만 이런 신화들은 과장됐거나 해프닝의 성격이 강하다"며 "실제로 이 회장이 독자적으로 벌인 자동차, 영상, 골프웨어 사업처럼 실패한 사업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실제로 이건희 회장이 '기업은 2류,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면서 안하무인이었던 1990년대 중반에 삼성은 이재용 씨에게 재산을 빼돌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자동차 진출 등 무리한 사업이 추진됐다"며 "그 결과 삼성이 위기를 맞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은 외환위기 이후 오히려 이 회장의 개입 폭이 줄어든 듯 싶고 바로 이 부분이 삼성이 대우, 한보와 다른 점"이라며 "삼성은 그룹 경영에 이 회장이 덜 끼어듦으로써 오히려 발전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개혁을 위한 네 가지 방안…"2세 경영권 승계 재고해야"**

김기원 교수는 "삼성의 발전을 위해서도 '삼성 독재'를 깨는 삼성 개혁이 필요하다"며 경영의 투명성, 책임성, 전문성을 담보하기 위한 네 가지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우선 "삼성은 과거에 저지른 비리를 투명하게 시정해야 한다"며 "이재용 씨 재산 증식에 관련된 비리를 총수 가문이 스스로 책임지고 털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빼돌린 재산을 원상회복하거나 그게 힘들다면 사회에 기부하는 길이 있을 것"이라며 "이때까지 삼성의 기부는 거의 회사 재산에 의해 이뤄졌는데 선진국에서 기업가들은 자기 재산을 기부하는 게 보편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에 더해 "조사가 중단된 삼성 채권 800억 원의 사용처를 검찰이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을 포함해 각종 비자금 의혹 역시 명확히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둘째로 '무노조 경영'을 끝낼 것을 주문했다. "삼성은 월급을 많이 주고 높은 복지 수준을 제공하고 있으니 노조가 필요 없다고 하지만 노조가 필요한지 아닌지는 총수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노동자가 자유롭게 결정할 문제"라며 "잘 먹여준다 하더라도 노예는 노예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삼성은 노조 설립을 방지하느라, 각종 감시 조직을 유지하느라, 노조 설립 탄압 사실이 알려지면 이를 무마하느라 치르는 비용이 상당하다"며 "이로 인한 기업 이미지 실추도 아주 크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세 번째로 "총수 3세 이재용 씨의 경영 승계를 재고해야 한다"고 쓴 소리를 했다. 그는 "외환위기 때 무너진 진로, 삼미 등의 재벌들은 대개 경영 세습이 원인이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경영 능력의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진국에서는 이 점에 대한 인식이 널리 공유돼 창업주 자손들은 주주총회에서 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하되 경영 일선에 나서지 않는 경우가 주류"라며 "우리처럼 거대 복합 그룹을 세습 경영하는 경우 망할 위험성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네 번째로 삼성생명을 계열에서 분리할 것을 조언했다. 그는 "삼성생명은 그룹에 속해 있기 때문에 부실 계열사에 돈을 떼인다든가 하는 부당한 희생을 치르며 이건의 회장의 그룹 지배권 강화 도구로 이용되는 성격이 강했다"며 "이런 부조리에서 벗어나 삼성생명을 진정한 국민의 금융기관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자금이 급할 때 삼성생명에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될 만큼 커졌기 때문에 삼성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며 "나아가 계열 분리된 삼성생명이 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의 주식 보유를 늘리면 우리 금융기관이 외국자본으로 넘어간다고 아우성칠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건희 회장 스스로 결단 필요…'삼성 독재' 경각심 필요**

김기원 교수는 마지막으로 "앞에서 열거한 삼성 개혁을 이건희 회장 스스로 결단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며 이 회장의 결단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이렇게 삼성이 스스로 개혁하면 우리 사회도 이제 존경받는 부자를 갖게 되고 다른 재벌 총수들도 이런 모범을 뒤따를지 모른다"며 "결국 삼성 개혁은 모두의 윈윈(win-win) 게임인 셈"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흔히 하는 '삼성이 하면 다 된다'는 말이야말로 삼성의 지배력을 상징하는 표현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삼성 독재를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여기게끔 한다"며 "군사 독재에 비해 삼성 독재에 대항하는 길이 신체적 위험은 덜하지만 더 어려울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서 "하지만 삼성은 자신의 지지 후보를 두 번이나 당선시키지 못 했고 삼성 게이트가 드러난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계를 또 한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적어도 아직은 '삼성 독재'가 완성된 단계가 아닌 셈이기 때문에 때늦지 않도록 분발해야 할 것"이라고 '삼성 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각성 역시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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