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민족대축전 기간 현충원 참배, 국회 방문 등 북한 대표단의 행보는 정말 '파격'이었다. 하지만 그 파격만큼이나 이제는 지난 6.15 공동행사 이후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통큰 정치'의 배경과 지속성이 관심거리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변화가 단순히 남쪽을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그래서 언제든지 다시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이 여전하다.
이에 대해 김영삼 정부 시절 통일원 장관을 역임했고 남북 관계를 계속 다뤄 온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한때 '통미(通美) 봉남(封南)' 정책을 써 왔던 북한이 '통남(通南)' 정책으로 전환한 가장 큰 배경으로 남측 저력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점을 꼽았다.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남측 당국의 태도와 신세대가 갖고 있는, 열린 민족적 자긍심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면서 이제는 통남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北의 '通南', 독자 목소리-신세대 민족 자긍심 등 남측 저력 평가 변화 결과"**
한완상 총재를 만나기 위해 18일 서울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한적 본사를 찾았다. 지난 8.15 때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라 한 총재의 표정은 밝았다. 화상 상봉이 비록 볼을 부비고 부둥켜안을 수 없다는 한계는 있지만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훌륭한 기제임을 충분히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의 밝은 모습은 단순히 화상 상봉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 8.15 민족대축전이 보여준 여러 '파격'을 통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엿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인터뷰의 초점이었던 '북한의 변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이번 북측 대표단의 행보는) 북측의 남측에 대한 평가가 변화한 결과"라는 말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북한이 과거 '통남 인식'과 '통남 의지'가 낮았던 것은 워싱턴의 말대로 움직이는 객체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남측의 역량을 낮게 봤기 때문"이라며 "북한은 노무현 정부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들으면서 남측의 자주역량과 의지를 새로이 평가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신세대가 갖고 있는 열린 민족적 자긍심에 대해 북한이 객관적으로 파악을 하면서 이제는 통남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위협도 북한의 전략이 변한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北 민족공조 진지해져…정상회담도 가능성 있다"**
한 총재는 아울러 최근의 평화 무드를 유지하기 위해 남북간에 각종 회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화상 통신의 활용도 그 모멘텀 유지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또한 "현재의 흐름을 봐서는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점치면서 "올해는 해방 60주년, 분단 60주년이므로 참다운 광복의 역사를 열기 위해 정상회담을 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날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의 질의로 이뤄졌다.
프레시안 : 8.15 이산가족 화상상봉이 사상 처음으로 이뤄졌다. 잘 진행됐나.
한완상 : 정말 잘 됐다. 화면 정지 등의 기술적인 문제나 사소한 절차 문제 등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으나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측 상봉자들은 9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라 북측 가족들을 상봉할 때 혹시 감정이 격한 나머지 충격을 받지 않을까도 염려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다. 상봉을 마치고 나오는 여러 가족들을 만났는데 이들 가족들은 볼을 부비고 부둥켜안을 수 없는 안타까움은 표시했으나 모두 감격스러워 했다.
프 : 새로운 형태의 상봉이 시도된 것인데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한 : 여러 의미가 있다. 적십자 운동은 억울한 고통을 덜어주는 운동인데 우리나라는 지난 60년간 '억울한 분단에서 오는 억울한 고통'을 상당히 많이 겪어 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억울한 고통은 이산가족들이 겪는 고통인데 이번에 정보통신혁명의 열매를 통해 그 고통을 덜어줬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어느 나라도 분단된 가족의 아픔을 화상 상봉을 통해 해소시켜 주지 못해 왔다.
두 번째는 남북간 60년 동안 두절됐던 통신이 다시 연결됐다는 점이다. '기절된 상태의 냉전 60년에서 깨어났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세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연결된 통신 시설을 이산가족 상봉 이외에도 다른 유의미한 여러 회담, 예를 들면 수산회담, 군사회담 등에도 이용할 수 있고 심지어 정상회담도 이 방식으로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그런 뜻에서 화상 통신을 '평화의 회로'라고 부르고 싶다.
프 : 이산가족 화상상봉의 확대 내지 정례화 계획이 있나.
한 : 그 문제는 다음주 23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제6차 남북 적십자 회담에서 공식 의제로 다룰 것이다.
***"현충원 참배 역사적인 거보"**
프 : 이번 8.15에서는 화상 상봉 이외에도 '사상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행사들이 참 많았다. 남북 정부-민간 대표단이 공동으로 광복절 기념행사를 한 것도 처음이고 북측 대표단이 국립 현충원을 참배하고 국회를 방문한 것도 사상 처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현충원 방문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어떻게 짚어볼 수 있나.
한 : 짧은 시간의 방문이었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역사적인 거보(巨步)라고 평가한다. 첫째 북한 당국은 그동안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흔쾌하게 인정하지 않아 왔으나 현충원에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많은 분들이 안치돼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방문은 남측 독립운동 인사들에 대한 북측의 정당한 평가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민족 정통성 회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두 번째로 현충원에는 6.25 전몰장병들도 함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방문의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 남북간 죽고 죽이는 소위 '주적들의 무덤'에 찾아 왔다는 것은 6.25전쟁에 대한 재평가와 지난 60년간 냉전으로 이어져 온 비극의 역사를 끝내자는 냉전 극복 의지를 담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현충원은 한편으로는 남북간 냉전적 감정을 고조시키는, 냉전 대결의식을 재생산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냉전 대결을 끝낸다는 극복 의지는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번 방문에는 앞으로 민족끼리 힘을 합쳐 평화로운 조국을 만들자는 미래지향적 뜻이 담겨 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탈북자 대량 입국 남측 기획 아니라는 인식 전환 따라 북 변화"**
프 : 최근 남북관계의 급속한 화해는 사실 6월 초까지만 해도 기대하지 못했다. 멀리 보면 노무현 정부 초반의 대북송금 특검 문제가 있었고 지난해에는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불허, 그리고 4월에는 대북 비료지원을 당국 회담과 연계시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6.15 행사가 진행되면서 북한의 자세가 달라졌다. 김정일 위원장은 정동영 장관을 만나면서 '한반도 비핵화는 김 주석의 유훈'이라면서 NPT 체제에 복귀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이렇게 갑자기 바뀐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 :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을 때 북에서는 상당한 기대를 했지만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핵문제로 미국과 북한 관계가 악화됐고 그 때 노 정부는 핵문제와 남북 관계를 병행하는 문제가 아니라 선후 문제라는 입장을 보였다. 게다가 특검과 조문파동, 탈북자 대거 입국 등이 한꺼번에 발생했는데 이는 북한을 불편하게 만든 요인이 됐다.
북한은 당초 북미 관계가 최악으로 악화돼 자신들의 생존 자체가 위협 받을 때 이런 위협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남측과의 관계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북한이 그렇게 느낀 가장 큰 요인은 탈북자 문제로 보인다. 부시 정부가 인권법과 민주주의 증진법을 통과시키면서 북한을 위협할 법적 장치를 마련했고 탈북자 문제는 바로 이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체제 붕괴를 위한 정책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탈북자 입국을 기획한 것이 아니라는 북측의 인식이 6월 전후에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탈북이라는 것은 부시 정부 내 네오콘들의 프로젝트이지 남측 정부의 프로젝트는 아니라는 상황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아울러 6월 초 한미정상회담에서 위협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6.15를 화끈하게 푸는 마당으로 활용할 의지가 생겼을 것으로 판단되며 실제로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미스터 김'이라는 발언을 통해 깍듯이 예우했고 그러는 가운데 남측 정부가 탈북 문제와 관련한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러면서 6.15 행사가 최초로 민과 관, 여-야, 진보-보수를 다 아우르는 민족 대잔치가 됐고 이 행사는 8.15에서 파격적으로 더 확대됐다. 이번에 더 의미 있는 것은 바로 6.15 정신과 8.15 정신이 만났다는 점이다. 6.15는 6.25를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6.15는 6.25의 민족상잔 대결 의식을 극복하는 계기였는데 이것이 8.15 광복과 이어지면서 '앞으로 정말 광복해 보자,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민족의 힘을 합치자'는 큰 잔치로 승화됐다. 이것이 더욱 분명하게 각인된 계기는 물론 현충원과 국회 방문 등의 북 대표단의 파격적 행보라고 볼 수 있다.
프 : 정부와 민간이 함께한 것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
한 : 처음이다. 과거 북한 당국은 통일전선전략에 따라 민-관을 항상 별개로 취급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민과 관이 합쳐 잔치를 치르지 않았나. 북한이 냉전적 정책인 통일전선전략을 수정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北 민족공조 주장, 이제 진지하게 느껴져…총체성-지속성 중요"**
프 : 한 총재께서는 93년도에 통일원 장관 겸 부총리를 역임했고 지금도 적십자사 총재로 남북간 인도적 차원 문제를 다루고 있다. 6.15 직후에는 북한에 다녀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 인사들과 만났을 때 남한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이 느껴졌나.
한 : 6월 21일에서 24일까지 서울에서는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릴 당시 평양을 방문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북측 적십자회 위원장 등을 만났다. 이들은 민족 공조의 중요성을 상당히 강조했다. 93년도에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물론 민족공조를 강조했으나 당시 만난 북측 고위층에게는 '평양의 민족공조 강조가 공허하게 들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북측은 그 때 핵문제 등 민족 생존에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서울을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갔을 때는 매우 진지하게 느껴졌다. 이와 관련해서 김영남 위원장을 만났을 때 민족공조가 잘 되려면 두 가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는 민족공조의 총체성이다. 민족의 생명과 운명에 영향을 주는 모든 문제에 대해 남북 당국자가 진지하게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5년 이 시점에서 생명과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핵문제이므로 이 문제야 말로 '통남 통미'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둘째는 민족공조의 지속성이다. '불구하고'의 정신이 아니라 '때문에'의 논리로는 민족공조를 지속할 수 없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아니라 눈을 때림에도 불구하고 껴안아 주는 인도주의 정신이 필요하며 이 점에서 '불구하고'의 정신을 중시하는 적십자의 할 일이 크다. 이 점을 강조하니 북측 인사들도 매우 공감했다.
***"北의 '通南'은 南의 독자 목소리-신세대 민족 자긍심 등 평가한 결과"**
프 : 북한이 자신의 고립을 푸는 전략을 보면 여러 가지가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미국과만 직접 협상을 하는 '통미 봉남' 방식이 있는가 하면, 2002년도 무렵에는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하면서 일본을 우회하는 모습도 보였고, DJ 정부 시절에는 한국과 관계를 강화했다. 이를 두고서 시기와 필요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이번 북한의 변화가 총체적이고 지속적으로 갈 수 있는 것인가.
한 : 최근 들어 북한이 보인 통남 현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문제는 두 가지로 풀어봐야 한다. 하나는 북한이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위협이다. 아울러 과거에 북한의 통남인식과 통남의지가 낮았던 것은 남쪽이 워싱턴의 말대로 움직이는 객체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남측의 역량을 낮게 봤기 때문이다. '객체와 왜 이야기 하나, 실세와 이야기해야지'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미국 네오콘의 공격이 실질적이고 위협적으로 다가오면서 북한은 초기에는 노 정부에 대해 실망하긴 했으나 그 후 몇 가지 노 정부의 독자적인 목소리에 담긴 의미를 새로이 해석한 것 같다. 이를테면 균형자론과 '왜 북한이 핵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냐'는 LA 발언 등을 통해 '서울이 자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고 그런 목소리를 낼 정도로 저력이 있구나'라고 느낀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으로서는 한국이 IT, CT, BT 등의 분야에서 급속히 발전하고 있고 지금 일부 어려움이 있지만 세계 11대 경제 강국으로서의 힘을 구축하고 있으며 최근에 매우 민족적인 자기 능력을 가지려는 열린 '민족적 세대', '디지털 세대'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8.15를 계기로 한 보수신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쟁이 나면 신세대의 3분의 2는 북-미 갈등 있을 때 북한 편을 들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신세대가 갖고 있는 열린 민족적 자긍심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을 하면서 이제는 통남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워싱턴의 위협이 세면 셀수록, 그리고 남측의 역량을 알면 알수록 전술적으로 '이렇게 저렇게(왔다갔다) 해선 안 되겠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과거 전술적으로 불규칙적이고 예측을 할 수 없던 북측의 모습은 남측의 저력에 대한 북한의 평가가 낮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제는 남측 당국의 태도가 독자적으로 보여지고 디지털 세대 등 새로운 국민들의 인식이 민족 자긍심이란 방향으로 나아가는 흐름을 보고서 남측 자주역량과 의지에 대한 평가를 새로이 내렸을 것으로 보인다.
***"평화적 핵 이용 주장 계속 부인할 경우 미국이 6자회담 틀서 고립될 수도" **
프 : 남북간 민족공조 강화, 협력강화 등이 남북관계와 현재의 북한 문제를 푸는 전부일 수 있는가. 그리고 북의 평화적 핵 이용은?
한 : 12년전 통일원 장관을 할 때 보수적 정치인들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은 것이 김영삼 대통령 취임사에 나온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다'는 문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돼 가고 있다. 만일 상암 경기장에서 북-미 축구시합이 벌어지면 관객의 80%는 북한 편을 들 것이다.
이런 현실을 보고서도 미-일처럼 열려 있는 소위 자유국가가 우리 국민의 도도한, 정당한 여론의 흐름을 무시한 정책을 세운다면 그것은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도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을 남북간 공조차원에서 풀어보려는 것은 정당하다고 본다.
최근에 김계남 북한 외무성 부상은 CNN과 인터뷰하면서 '우리는 에너지 문제로 경수로가 필요하다. 북한이 지금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남을 공격하는 핵무기가 아니라 국민에 도움이 되는 에너지다. 남측에서 200만kw의 전력을 준다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자체 경수로를 통해서 에너지를 생산하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런데도 미국이 계속 NPT 회원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누릴 수 있는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권리마저 부정한다면 이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 문제와 관련해서 차기 제4차 6자회담 2단계에서 너무 강하게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북으로서는 '우리가 NPT에 다시 들어간다면 회원국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겠다'는 정도를 촉구하면 된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이 이마저 반대한다면 미국은 6자틀 내에서 고립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수로 문제에 대해서는 그 운용을 못 믿겠다면 미국인이 와서 직접 체크하면서 운영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김계남 부상의 발언이 일리가 있다고 본다. 이런 이야기를 미국이 긍정적 받아들였으면 한다. 하지만 경수로가 이번 6자회담의 아젠다가 아닌 것도 사실이므로 북한이 합의문에는 이 경수로 부분을 보류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념비적인 문건이 나올 수 있게 보다 융통성있는 자세로 나오기 바란다.
***"8.15 행사 보며 국가연합 전단계 모습 보는 기분"**
프 : 제한적이긴 하지만 미국도 협상에 적극적으로 보이고 남북공조도 심화되고 있고 징조는 좋다. 앞으로 이런 모멘텀을 살려야 하는데 6자 틀 내에서 할 일이 있고 남북이 할 일이 있다. 그와 관련해 평화협정 문제도 나오고 있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한 : 이번 8.15에서 정동영 장관도 평화체제 이야기를 했고 북은 예전부터 그것을 제기해 왔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면 정말 큰 변화다. 평화체제로 확고히 바뀌면 우리는 평화가 완전히 국제적으로 보장되는 틀 위에서 번영을 이루어 마침내 스위스 중립국 같은 체제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우선 이번 8.15 때 생긴 민족공조 평화무드 모멘텀을 살려야 하며 이를 위해 앞으로 남북 간에 온갖 회담이 계속될 것이고 이번 이산가족 화상상봉에서 활용된 화상 통신이 각 수준에서 활용된다면 모멘텀을 살리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개성공단과 금강산이 보다 활짝 열리길 바란다. 그밖에 앞으로 북한 인프라 구축에 남측 기업이 참여하고 북한의 공공 보건 분야에 적십자도 앞장설 테지만 이와 관련한 남북간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12년전 부총리 할 때 3단계 통일 단계를 상정했었다. 1단계 교류협력에서 2단계 국가연합, 3단계 남북통일이었다. 정치적 통일은 먼 미래라 하더라도 이제는 국가연합 단계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국회간, 행정부간 정례적 만남이 이뤄진다. 이번에 북측 대표단이 국회, 청와대를 방문한 것을 보니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격적인 행보를 보니 꼭 국가연합 전단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12년전 통일부총리로서,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할 수 있다면 YS 5년 임기를 마치는 시기에는 국가연합 단계까지 가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럴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그런 뜻에서 올해 안에 화상회담이든지 면대면 회담이든지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기를 고대한다.
***"남북정상회담 이뤄질 가능성…올해가 회담하기 가장 좋은 기회"**
프 :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나. 현재 무슨 장애가 있는 것인가.
한 : 이번 6.15 때 정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이번에 북한 대표단이 노 대통령을 만나고 국회, 현충원을 방문한 흐름을 봐서는 정상간 대화가 반드시 회담이 아니더라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엄격히 말하면 분단 상태 하에 광복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해방 60주년, 분단 60주년이므로 참다운 광복의 역사를 열기 위해 정상회담 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다.
***"'불구하고'의 인도주의 정신 필요"**
프 : 총체적 지속적 민족공조를 강조했는데 그런 면에서 적십자사 차원에서 구상하고 있는 것을 소개해 달라.
한 : 남북간 민족공조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적십자사의 '불구하고'의 인도주의 정신이 필요하다. 12년전 이인모 노인을 북송할 때도 인도주의 논리를 따른 것이었다. 당시 '왜 대가도 바라지 않고 보냈느냐' '왜 협상의 카드로 사용하지 않느냐'는 비판을 많이 받았으나 내 대답은 남북관계를 풀려면 인도주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이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으나 이제는 실천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적십자의 가치는 평화, 생명, 건강이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국가에서 일하는 적십자는 그 가운데 평화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다. 평화가 깨지면 생명 건강은 자동으로 깨진다. 평화를 세우는 일을 위해 적십자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조국의 평화를 위해 애쓸 생각이다.
프 : 국군포로, 납북어부 문제가 풀릴 가능성은 있나.
한 : 이는 다음 남북 적십자 회담의 의제 가운데 하나다. 그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는 절박하게 요구하는 문제지만 북은 이를 무거워 하는 거북스러워 하는 상황이다. 북은 국군포로 문제가 나올 때마다 귀순자는 있으나 억류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공식 입장을 얘기한다.
하지만 정 장관이 지난 6월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 북한은 그런 입장이긴 하지만 의제로 다루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번 적십자회담에서는 이에 따라 우선 '전쟁 시기에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생사 확인'에 관해서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적극 논의해보자고 했다.
프 : 이산가족 면회소는 어떻게 되고 있나
한 : 6000평 규모다. 정식 이름이 금강산 면회소다. 북의 적십자 직원과 우리 직원이 상주하고 생사 확인, 서신교환, 고향방문 등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봉은 정례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설날, 단오, 6.15, 추석 등의 계기에 말이다. 완공되면 그 건물은 이산가족을 위한 장소뿐 아니라 온갖 남북간의 회담 장소로 활용되며 그것을 위한 숙박시설도 갖출 것이다. 금강산이라는 아름다운 경치 속에 가장 아름다운 세계적 평화센터가 개설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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