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반가운 만남**
<산수간에 집을 짓고>(안대희 엮어옮김, 돌베개)는 조선후기 실학자인 풍석 서유구(1764~1845)의 방대한 저서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중에서 건축과 관련된 부분 즉 이운지(怡蕓志), 상택지(相宅志), 그리고 섬용지(贍用志)를 번역한 책이다. 각각 '은자가 사는 집', '터 잡기와 집짓기' 그리고 '집 짓는 법과 재료'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다산 정약용과 더불어 조선 후기 실학파의 양대 거두로 일컬어지면서도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았던 서유구의 저술을 직접 대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주는 기쁨은 크다.
건축가인 나는 상당한 호기심과 동시에 가슴 한 쪽이 답답해오는 심정으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만약 우리나라 전통 문화가 일제의 침략 등으로 인해 단절됨 없이 자연스럽게 현재의 우리에게 전해졌다면, 그래서 건축을 배우는 방법이 지금과 달랐더라면 나는 이 책을 훨씬 빨리 만났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책은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건축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기초적인 필독 도서의 하나로 권해졌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다음 예를 들어 12세기에 송나라의 이계(李誡, Li Jie)가 쓴 <영조법식(營造法式, Yingzao Fashi)>이나, 기원전 1세기 경 로마의 건축가인 비르투비우스(Vitruvius)가 쓴 <건축십서(Ten Books of Architecture)> 등을 접했을 것이고, 서로 다른 목적과 내용으로 저술된 이러한 책들의 내용을 비교하고 토론하면서 동서양의 고전 건축에 대한 이해를 키워갔을 것이다. 만약에 교육이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더라면, 우리나라 건축계의 지적 풍토도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늦게나마 이 책을 접한 것은 한편으로는 커다란 행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자체가 총 16지, 114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로서 근래에 들어서야 완역이 시도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임원 즉 향촌에 살기 위한 모든 지식을 망라한 백과사전적 성격을 갖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은 실로 다양하며 동시에 구체적이다. 대충 목차만 들여다봐도 농업, 기상, 목축, 요리, 술, 건축, 의학, 육아, 관혼상제, 독서, 취미, 상업 등 실로 광대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심지어 섹스 기법에 해당하는 방중술과 관련된 내용까지 있다고 하니 생활이라는 문제를 이토록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 철저한 시선에 놀랄 뿐이다.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 전서>와 더불어 20세기 이전 한 개인의 저작물로서는 우리나라 최대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심지어 국사 교과서에서조차 농업을 다룬 책으로만 서술되어 왔을 정도로 그 내용이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임원경제지>의 실체를 이제야 부분이나마 접하는 것이다. 안대희 교수의 이번 출간이 갖는 의의는 그만큼 크다고 하겠다.
***"집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나무를 심는 일"**
<산수간에 집을 짓고>는 간단히 말해서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집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건축에 대한 고전적인 입장에 의하면 인간은 건축을 통해서 자연, 그리고 나아가 우주와 관련을 맺는다. 따라서 건축은 인공물이면서도 자연의 일부이며 동시에 인간의 신체적, 사상적 연장(extension)이기도 하다. 집과 자연이 어떻게 서로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면서 인간을 위한 조화로운 환경을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절실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건물의 입지와 배치에서 시작하여 에너지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자연에 대한 인공의 압도적 우위를 전제로 지어지는 대량 생산 아파트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주거의 근본적인 문제로 다시 돌아가 생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집터를 고르고 거기에 집을 어떻게 앉힐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실상 건축적 문제이기 이전에 삶의 의미 있는 선택 중 하나다. 오늘날 우리가 과연 어떤 기준에 의해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돌이켜보면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실물 건축을 다루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은 일종의 실험 실습서와 다름없다. 평소에 우리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아니 그런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를 바라보는 서유구의 생각까지 드러나 있으니 금상첨화다.
실제로 이 책의 내용 중 상당수는 지금이라도 현장에서 실천해볼만 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집짓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무를 심는 일이라 했다. 왜냐하면 나무는 성장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혜나 재력을 가지고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오늘날 현대 건축에서 갈수록 자연적 요소를 건물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우리 건축가들조차 '한 그루 나무만한 건축이 없다'는 말을 종종하지 않는가.
***전통 건축에 대한 맹신 경계해야…온돌 단점 까발려**
한편 서유구의 서술방식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이 책은 수많은 인용문의 나열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방대한 중국의 고전은 물론이고 조부인 서명응의 저작, 서유구 자신의 이전 저작, 그리고 실학자들인 박제가, 홍만선, 이익, 박지원 등의 저작 등이 풍부하게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용문의 출처를 꼬박꼬박 밝히고 있어 책의 구성에 대한 설명을 읽기 전에 본문을 대하면 책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아마도 당시의 학문적 풍토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추측되지만,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자칫하면 자기 주장이 없이 남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하는 것 같이 느껴질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실학자 중에서도 실용적 학풍을 중시한 인물이고, 본인 스스로도 '이 책은 오로지 우리나라를 위해서 쓰였다'고 한 것에 비하면 역시 현대의 독자 입장에서는 중국 저술의 직접적 인용 내지는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여전히 많다는 느낌이 든다. 당시의 선진 문명국가인 중국의 제도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선택적으로 따르려 하는 그의 입장이 강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가 중국과 우리나라의 건축제도를 비교하면서 기본적으로 중국의 제도가 갖는 우수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 상당한 아이러니다. 왜냐하면 기초를 놓는 방식에서 시작하여 건축 재료에 이르기까지 그가 그렇게 통렬히 비판한 조선의 건축 제도를 지금 우리는 자랑스러운 전통 문화라는 입장에서 다분히 맹목적적으로 찬양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을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가 중국에서는 일정한 척도에 의해 건축의 각 부분이 결정되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제각각이어서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아직도 섬뜩하리만큼 유효하다. 한옥이건 양옥이건 우리나라의 건축은 아직도 이런 표준화(standardization)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미리 만들어 놓은 문이나 창을 사다가 그대로 집에 다는 것은 그리 보편화된 방식이 못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건축은 여전히 일회성 주문 생산품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으며, 결과물의 질에 비해 비용이 과다하게 들어간다. 그러나 오히려 이를 우리가 그만큼 획일화를 꺼리는 것이라고 '문화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다른 예로는 온돌을 들 수 있다. 온돌과 마루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기본 단위와도 같다. 온돌과 마루의 조합에서 우리나라 건축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만큼 온돌의 우수성과 독창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서유구는 이러한 후대인들의 소박한 기대를 여지없이 박살낸다. 그는 박지원의 저술까지 동원해가며 우리나라 온돌의 단점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오히려 중국 북방 내지는 만주식 온돌인 항(炕)의 제도를 채택할 것을 권하고 있다. 연료의 효율적 사용에서 구들장이며 굴뚝의 구조에 이르기까지 항이 훨씬 더 우수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마침 요즘 한옥이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어 새로 짓거나 고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전통 온돌을 적용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그의 이러한 의견은 충분히 실증적으로 검토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서유구는 좌식 생활은 사람을 게으르게 하고 지나친 난방은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거나 혹은 우리나라의 기와 잇는 방식이 중국에 비해 훨씬 뒤떨어져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의 우리보다 우리의 조상인 서유구가 오히려 더 전통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서유구와 지금의 우리 중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인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겠으나, 적어도 그가 무비판적으로 중국의 문명에 경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자국의 문화에 대한 철저한 비판적 성찰의 태도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할 것이다.
***"군자는 풍수를 취하지 않아"…'자기 사는 곳에 대한 이해'가 중요**
이 책이 주는 감동은 무엇보다도 그 실용적인 태도에 있다. 현실을 읽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낙관과 긍정을 바탕으로 한다. 현실을 무시하고 내세를 기원하는 기복적인 태도도 아니고 관념론에 사로잡혀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태도는 더욱 아니다. 우리 눈앞에 있는, 이 피할 수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려는 의지가 담긴 내용인 것이다.
이러한 서유구의 입장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것은 소위 풍수에 대한 그의 의견이다. '향배와 순역의 자리를 따지고, 오행과 육기의 운수를 살피는' 일에 대해 그는 "그런 술수는 군자는 취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태도로 임한다. 그러면서 집터를 고르는 자는 그런 쓸데없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추운지 따뜻한지, 물을 마시기가 편한지 등을 보라고 권한다. 한 마디로 실재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이를 기준으로 판단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머문 곳 어디서나 소요하면서 살 곳을 선택할 방법"을 일러주는 것이 자기 글의 목적이라고 하였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디서나 살 수 있으며 다만 자기가 사는 장소에 대한 이해와 적절한 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편으로 마음 속에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서유구처럼 우리도 우리의 현실을 읽고 해석하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와 다른 제도로부터 많은 것을 도입하고 배워야 하겠으나 어디까지나 그 판단의 기준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의 현실이 곧 우리의 텍스트'라는 자각이야말로 서유구를 비롯한 조선 후기 실학자들과 지금의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귀중한 생각임에 틀림없다. <산수간에 집을 짓고>는 이러한 거대한 생각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안내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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