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소크라테스를 죽여야 민주주의가 산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소크라테스를 죽여야 민주주의가 산다"

[화제의책] 전체주의 꿈꿨던 반민주주의자 소크라테스

누구도 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는 이 시대에 역설적으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평범한 사람들이 그 중심에 서는 민주주의는 아득히 먼 옛날 그리스에서 이뤄졌던 실현 가능성 없는 것으로 간주돼 교과서에서만 '직접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평범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는 개혁과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지식인들에 의해 '철 모르는 좌파의 꿈' 또는 '(현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매도당하는 게 현실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왕성한 생산력을 자랑하는 영남대학교 박홍규 교수(법학)가 최근 출간한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필맥)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한다. 민주주의를 지독히 불신한 '반민주주의자' 소크라테스를 미화하는 사회에서 과연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과연 소크라테스는 어리석은 대중의 그릇된 판결에 희생당한 위대한 성인일까?

***민주주의가 아름다운 나라, 약하고 불행한 이들을 위한 나라**

그리스의 정식 국명은 'Elinike Demokratia', 바로 '민주주의가 아름다운 나라'다. 이름처럼 '민주주의의 꽃'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만개했다.

비록 여성과 노예 또 외국인을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시민권을 가진 모든 이들은 추첨을 통해 누구나 공직에 나설 수 있었다. 공직의 임기는 1년으로 제한돼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것은 시민이라면 누구든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자 실천해야 할 의무였다. 한 마디로 엘리트 정치인과 관료가 지배하는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이었다.

아테네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은 민회였다. 시민권을 가진 이들은 누구나 그 집회에 참가해 발언할 수 있었고, 1인 1표의 투표권을 행사했다. 특히 18세 이상의 성인 남자라면 노구나 토지 소유 여부나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평등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시민들은 1년에 40회나 민회에 참가했으며 평균 참가 인원은 무려 1만 명이나 됐다. 하지만 이들 민회에서 불과 300여 명의 '선량'들이 틈만 나면 보여주는 '활극(?)'이 벌어졌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는 것.

이런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해 정치사상가 닐 우드는 그 평등주의적 성격에 특히 주목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가문ㆍ교육ㆍ재산ㆍ소득을 묻지 않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자면 '가난한 자들의 지배'였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는 약하고 불행한 이들에 대한 동정심을 함축하는 것이었다."(<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 홍기빈 옮김, 개마고원)

***"무능한 자들은 억압당해 마땅하다"…전체주의 꿈꿨던 소크라테스**

이런 민주주의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강력히 반대하고 비판했다. 이 책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면모를 그의 행적이 담긴 다양한 문헌을 총동원해 제시한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외모가 못 생겼고, 평생 거의 씻지도 않아 더러웠으며 사시사철 모직 외투를 입고 다녔다. 이것은 그냥 그의 독특한 '취향'이라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평생 무위도식 하며 살았다. (그는 '노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약간의 유산을 밑천으로 결혼을 늦게 한 뒤 세 아들을 두었지만 그들을 부양하기 위한 돈벌이는 하지 않고 한가롭게 이야기나 하면서 살았다. 악처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그의 처 크산티페는 동성애자인 남편에게 애정을 받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평생 동안 남편과 세 아들을 부양하며 고달픈 삶을 살았다.

소크라테스는 민중을 지독히 멸시했으며 더 나아가 철인에 의한 지배를 꿈꾸었다. 그는 무능한 자들은 억압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가멤논을 높이 평가하고 그에 대해 묘사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아테네 청년들에게 가르쳤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뒤집히기 마련이오. 지휘자나 임금은 하나면 족해! 제우스 신께서 권한을 주신 그 분(아가멤논) 하나면 족하단 말이오." 이런 반민주주의자를 민주주의 사회에서 재판에 회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돋보이게 하는 "악법과 법이다"와 같은 경구도 다르게 해석된다. 이 경구와 일맥상통하는 소크라테스의 다음 주장을 읽은 박홍규 교수는 법과 국가를 내세워 인간을 탄압한 나치나 유신 정권을 떠올린다. "국정과 법률에 있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먼저 조국을 납득시켜라. 그게 아니면 조국을 떠나라. 납득도 못 시키고 떠나지도 못한다면 조국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

***"소크라테스를 한번 더 제대로 죽여야 한다"**

물론 소크라테스를 사형시킨 것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치명적 오점을 남긴 판결이었다. 어떤 사회보다도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던 아테네 민주주의의 근본을 부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크라테스에 대한 처형은 200여 년 이상 지속된 아테네 민주주의의 몰락의 징후였을지 모른다.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아테네 민주주의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 의해 전복된다.

하지만 이런 사정으로 반민주주의자 소크라테스에 대한 평가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시장의 논리 밑에 모든 것을 종속시키는 '자유지상주의자'들로부터 절차적 민주주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개혁주의자'들까지 온갖 반민주주의자들이 득세하는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그 근본에서부터 부정했던 '소크라테스'를 제대로 읽는 일은 꼭 이뤄져야 할 과제다.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한번 더, 제대로 죽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