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여에 걸쳐 일반 지하수를 정수한 물이 '먹는 샘물'로 둔갑해 소비자들에게 공급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런 사실을 검찰과 일부 언론은 이미 2003년부터 알고 있었으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 사실을 공익 제보한 이들은 결국 해고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수한 물이 미네랄 풍부한 '먹는 샘물'로 둔갑해 3년간 판매**
19일 검찰과 생수업계에 따르면 유력한 생수업체들 가운데 하나인 S사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여에 걸쳐 지하수를 역삼투압(Reverse Osmosis) 방식으로 정수한 물과 정수하지 않은 물을 7대 3 비율로 배합해 시중에 판매해 왔다.
역삼투압 방식으로 정수할 경우 중금속과 같은 해로운 물질뿐만 아니라 지하수에 녹아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미네랄 성분과 같은 인체에 유익한 물질도 제거돼 사실상 굳이 생수를 구입할 이유가 없어진다. 오히려 정수 과정에서 지하수가 합성수지로 된 여과막을 통과할 때 해로운 물질이 용출되거나 세균이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은 S사에서 근무하던 은모 씨(42) 등을 통해 2003년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은씨는 "이전부터 S사의 생수를 사먹은 뒤 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고 물을 먹은 뒤 배가 아프다는 소비자들의 신고가 많아 이상하게 여기던 참에 원수 일부에다 정수한 지하수를 섞어 판 것을 알게 됐다"며 "여러 차례 시정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도 다 이렇게 한다며 무슨 문제냐고 항변해 참을 수 없었다"고 공익 제보에 나서게 된 이유를 밝혔다.
공교롭게도 S사가 이런 식으로 생수를 제조해 판매하던 2004년 1월 한국소비자보호원이 "먹는 샘물의 미네랄 성분 함량은 표시대로 믿을 수 없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당시 S사의 생수는 실제 검사 결과가 제품에 표시된 미네랄 성분 함량의 3분의 1~4분의 1에 불과해 대표적인 예로 꼽혔다. S사의 제품은 칼슘이 16.60㎎/ℓ 함유된 것으로 표시돼 있었으나 검사 결과는 4.1㎎/ℓ에 불과했으며, 나트륨도 12.60㎎/ℓ 함유된 것으로 표시돼 있었으나 검사 결과는 3.7㎎/ℓ에 불과했다. 정수한 물과 원수를 7대 3으로 섞은 비율대로 미네랄이 줄어든 셈이다.
***검찰 "범법 혐의는 인정되지만 죄로 인정할 수 없어"-환경부ㆍ업계 "사기로 봐야"**
한편 S사의 시정 움직임이 없자 은씨 등은 결국 두 차례에 걸쳐 서울과 대전에서 S사 경영진을 '먹는 물 관리법 위반'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검찰의 주장에 따르면 "S사가 역삼투압 방식으로 정수한 물을 시중에 판매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S사가 환경부에 질의한 결과 법적ㆍ과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생산된 물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볼 수도 없다"며 각하 이유를 밝혔다. 또 다른 검찰 수사에서는 "S사가 환경부에 질의할 당시 답변을 애매하게 받아 S사는 역삼투압 방식으로 정수를 해서 판매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지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며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한 마디로 범법의 혐의는 있지만 고의성이 없는 데에다 정수한 물을 섞어서 팔았다고 해서 인체에 해롭지도 않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검찰 수사관의 보고서를 보면 검찰의 이런 결론은 납득하기 어렵다. 보고서는 분명히 "먹는 샘물의 제조는 미네랄 성분이 함유된 원수에 포함된 이물질을 제거하거나 감소시키는 한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역삼투압 방식으로 정수 처리한 물은 사실상 증류수와 비슷하기 때문에 천연일 수 없고 미네랄 성분이 없기 때문에 광천수로 볼 수도 없다"는 환경부의 답변 내용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익 제보자와 <프레시안>이 환경부에 수차례에 걸쳐 관련 내용을 질의한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관되게 "역삼투압 방식으로 정수 처리한 물은 미네랄 성분이 없기 때문에 광천수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환경부는 2004년 1월 "역삼투압 장치를 사용해 먹는 샘물을 사용하는 것은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S사를 비롯한 생수업체들에게 역삼투압 정수기에 대한 철거를 명령하기도 했다.
다른 생수업체 관계자도 "역삼투압 장치를 사용하면 사실상 먹는 샘물로 볼 수 없다"며 "미네랄 등이 거의 사라진 물을 먹는 샘물로 판매하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사기"라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심지어 S사도 자사 홈페이지에 "자연이 선사한 건강한 100% 암반수", "미네랄 성분이 균형 있게 함유된 물"과 같은 홍보 문구로 자사의 생수를 소개하고 있다. 또 정수기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 "정수기를 이용해 거른 물은 미네랄 함유량이 0이지만 샘물은 나트륨, 마그네슘, 칼슘 등의 미네랄이 함유돼 있다"고 차별화하고 있다.
***최초 공익 제보자는 '해고'-S사 "법적으로 '문제없다'"**
이렇게 검찰이 '문제없다'는 결정을 내리는 동안 은씨 등 공익 제보자는 결국 관련 사실을 공개하고 문제를 제기한 직후인 2003년 10월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은씨는 "나뿐만 아니라 S사 대리점을 운영하던 동생도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당해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 한두 곳 정도 언론에도 알려봤지만 처음에 관심을 가지던 기자들도 S사와 접촉한 뒤로는 '별 일 아닌 것 같다'며 보도를 회피했다"고 그 동안은 참담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은씨는 "몇 번이나 다 포기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볼 생각도 했지만 기필코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그나마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나아진다는 믿음 하나로 살아 왔는데 요즘은 자꾸 그런 믿음이 흔들려서 더욱 힘들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한편 이런 사실에 대해 S사 관계자는 "당시 공장에서 암반수의 미네랄 함량이 높아서 지하수를 정수해 섞어도 미네랄 함량에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환경부에서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검찰에서도 이미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한 일"이라며 "회사를 나간 직원들이 앙심을 품고 계속 문제 제기를 하는 바람에 그간 회사가 겪은 고통이 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들의 해고나 해고당한 직원의 동생의 일은 이 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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