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식인 사회에서 비판적 지성을 대표하는 <창작과비평>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속 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로 평가한 것에 대해 정면 비판이 제기돼 주목된다.
***"백낙청의 박정희 재평가는 '양립 불가능한 화해 시도'"**
강국주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 강사(국문학)는 최근 발행된 <녹색평론> 7~8월호(제83호)에 기고한 '발전ㆍ개발 논리에 대한 의문'에서 최근 백낙청 교수의 박정희 시대 재평가를 전면적으로 비판했다.
앞서 백 교수는 <창작과비평> 여름호(제128호)에 기고한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생각할까'에서 "독재만 하고 경제성장을 못 이룬 독재자가 많다는 점에서, 또 한국에서와 같은 극적인 성장을 이룩한 일은 더욱이나 드물다는 점에서 '주식회사 한국'의 CEO 박정희의 공을 인정해주자"면서 "단 박정희식 개발이 계속 지속되기는 불가능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는 '지속 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였다"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다. 그의 이런 지적은 <프레시안> 등을 통해 보도돼 큰 논란이 됐었다.
강국주 강사는 "1990년대 말부터 '박정희 살리기'가 시도되면서 경제개발의 유공자 박정희와 정치적 독재자 박정희를 모순적으로 봉합하는 일이 있어 왔다"며 "이번 백낙청이 박정희를 모순적으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 텐데 이것은 양립 불가능한 화해 시도"라고 운을 뗐다.
***"백낙청은 '발전ㆍ개발' 고정관념 못 벗어나…발전의 동력은 바로 '빈곤'"**
강국주 강사는 이어 "백낙청 본인도 '발전' 혹은 '개발'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백낙청 교수는 경제 성장으로 상징되는 '기술의 근대'와 민주주의 및 인권 시장 등으로 상징되는 '해방의 근대' 양자가 모순 없이 통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근대란 산업화의 결과물인 '기술의 근대'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 자유ㆍ평등ㆍ박애와 같은 근대의 해방적 요소가 실현되고 있다면 우리 삶은 더 생동감 있고 자발적이며 행복해야 할 것이고 실질적 민주주의 역시 삶의 저변에 뿌리내렸어야 하지만 실제로 현실은 그 반대"라고 덧붙였다.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수탈되거나 약탈되는 지역 및 민중이 꼭 필요했던 역사적 사실을 백 교수가 간과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강국주 강사는 "백낙청 본인도 지적하듯이 박정희는 일본 제국의 식민지 경영을 누구보다도 '모범적으로' 계승했다"며 "20세기 남한 자본주의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발전ㆍ개발은 식민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덧붙여 강국주 강사는 발전ㆍ개발은 근대적 부와 함께 근대적 빈곤을 함께 야기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발전ㆍ개발은 '깨끗하고 세련된' 고층빌딩 사이에 '불결하고 위험하며 악취를 풍기는' 슬럼도 발전ㆍ개발(?)한다"며 "발전의 동력은 사실 빈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읽지 못한다면 발전ㆍ개발이 진전될수록 더 많은 이들이 궁핍해지고, 궁핍하지 않은 이도 삶의 기쁨이나 행복감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강국주 강사는 또 "백낙청은 박정희 시대의 발전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 당대의 요구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은 (동서 냉전 하에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안정화하려는 미국과 이에 종속된 일본의 동아시아 전략의 일환"이라며 "지금 그와 같은 박정희식 고도성장 대신 '지속 가능한 발전'이 요구되는 것 역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당대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백낙청 교수가 박정희식 발전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이 제기됐다. 그 자체가 '불가능한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강국주 강사는 "백낙청은 환경친화적인 새로운 경제 모델의 창출을 당면 과제로 제시하면서 중국이 일본과 남한의 방식을 좇는다면 공멸하는 길이라고 경고하고 있는데 과연 이를 중국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남한은 경제개발을 해도 좋지만 중국이나 인도는 지구 생태계를 위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그럴듯한 수사로 포장한다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논의라는 것이다.
***"백낙청의 '현실주의'는 기회주의적 현실추수주의"-"불의에 끝까지 싸워야 하지 않나"**
강국주 강사의 논리대로라면 발전ㆍ개발을 전제하는 백낙청의 구상은 파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는 "백낙청은 기존의 부자 나라 따라잡기가 아닌 '자기방어적 성장' 혹은 '최소한의 경쟁력 확보'를 논의하고 있지만, 성장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한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백낙청의 바람과는 달리 성장의 환상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는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는 순간 체제 자체가 붕괴될 것이기 때문에 결코 그 속도를 늦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강국주 강사가 보기에 백낙청 교수가 이런 '허점투성이의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약육강식의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현실주의'에 기반을 둔 인식이라는 얘기다.
강국주 강사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기 전에 이 약육강식의 세계가 정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불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최소한 윤리적 물음은 던져보아야 할 것"이라며 "이런 최소한의 윤리적 물음도 없이 냉큼 주어진 현실을 껴안는 것은 자칫 기회주의적인 현실 추수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만약 이 세계가 불의에 바탕을 둔 세계라면 이에 굴복하지 않고 인간적 위엄과 존엄을 지키며 끝까지 싸워가는 자세야말로 진정한 현실주의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식량ㆍ에너지 문제 해결이 관건"-"생태주의자들의 비전에 편견 없이 눈 돌려라"**
강국주 강사에 따르면 '진정한 현실주의'에 기반을 둔 '최소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은 식량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 시대 이래 근 반세기를 '수출만이 살 길이다'는 수출 신화에 세뇌 당해 온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주장이겠지만 우리가 따라잡으려는 선진국들은 이미 자국 농업 육성책 및 에너지 자급책을 마련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다"고 지적했다. 우리의 식량 자급률이 30%도 안 되는데 비해 미국 133.5%, 영국 99.6%, 프랑스 194.5%, 독일 123% 등 선진국들은 거의 100% 내외의 식량 자급률을 확보하고 있으며, 에너지 문제에 관해서도 유럽연합이 2050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2000년의 절반 이하로 줄이고 그 가운데 90%를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를 추진하고 있는 것 등이 그 예다.
강국주 강사는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백낙청이 현실적으로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한 '생태주의적 발상의 소유자'들이 오히려 진정한 현실주의를 견지해 왔다"며 "주류 사회나 '진보적 지식인' 사회에서 주목하지 않았을 뿐 '생태주의적 발상'의 소유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식량과 에너지 자급을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마련해 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녹색평론>과 이 잡지를 중심으로 한 생태주의자들은 1991년 창간 때부터 또 그 이전부터 일관되게 소농 중심의 농업 회생 정책을 주장해 왔다. 에너지 문제 역시 에너지대안센터를 중심으로 석유 시대를 극복할 방안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심화시켜 왔다.
강국주 강사는 "산업화=근대화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구상의 실질적 장애 요인은 바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이 있음에도 그것을 일언지하에 무시해버리거나 아니면 으레 불가능한 제안이라고 일축해버리는 '발전주의자'들의 편견"이라며 "편견 없이 사태를 목도하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혜안이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백 교수의 인식의 한계를 꼬집었다.
강국주 강사의 이와 같은 비판은 최근 <창작과비평>이 계속 제기해 온 일련의 대안 기획에 대한 <녹색평론> 측의 정면 반박의 성격이 짙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발행인은 "이번 문제제기에 대해서 <창작과비평> 쪽이 성실한 답변을 한다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짚고 그 대안을 마련하는 데에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창작과비평>과 백낙청 교수의 성실한 답변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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