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폭탄 테러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의 상관관계**
북한은 9일 지난 1년 동안 교착국면에 빠졌던 6자회담의 재개를 전격 선언했다. 복귀 선언도 사뭇 기습적인 형태로 이뤄진 감이 없지 않다. 그동안 뜨거운 팥죽 솥단지 주변만을 맴돌던 고양이처럼, 6자회담장 주변만 빙빙 돌던 북한이 왜 그 뜨거운 팥죽 솥단지(6자회담틀)로 갑작스레 뛰어 들었을까? 자신들이 주장했던 6자회담 틀이 변경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북한의 복귀 전제조건으로 미국이 북한경제 부흥 계획을 약속했기 때문일까? 북한의 6자회담 복귀선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금까지 북한은 자신의 6자회담 복귀 전제조건으로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카드 철회, 북한에 대한 주권국가 인정,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취소, 6자회담틀 내에서 북미간 직접대화 등을 주장해 왔다. 그리고 이런 조건들이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6자회담장에 복귀해봐야 실질적인 핵문제 타결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여기서 더 나아가, 북-미간 직접담판을 요구하며 6자회담 틀의 성격까지 변경할 것을 요청했었다.
심지어 6자회담 틀은 북핵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기 위한 기제가 아니라, 강제로 북한의 핵개발을 포기시키기 위한 다자간 압력기구라고 비판했었다. 그러던 북한이 왜 갑자기 6자회담 복귀를 선언했을까? 미국이 북한의 요구조건을 모두 수용했기 때문일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기존입장에서 0.1mm도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북한은 <중앙TV> 를 통해 " 미국측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주권국가라는 것을 인정하며 침공 의사가 없으며 6자회담 틀거리 안에서 쌍무회담을 할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면서 "조선측은 미국측의 입장 표시를 자기에 대한 미국측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철회로 이해하고 6자회담에 나가기로 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북한의 주장과 달리 그 시점에 부시 대통령은 오히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한-중-일에 파견해 대북압박정책을 본격화하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6자회담 재개를 선언한 핵심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7.7 런던 폭탄테러 사건이다. 북한을 6자회담장으로 복귀시킨 핵심 촉진세력은 엄격히 말해 한국, 미국, 중국도 아닌 알카에다였던 것이다. 이들의 런던 테러가 없었다면, 북한은 앞으로도 보다 많은 시간동안 6자회담장 주변을 맴돌았을지도 모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비록 7월에 복귀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날짜를 제시하지 않았던 것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미국이 보다 구체적인 6자회담 복귀 명분을 제시하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었지, 복귀하겠다는 최종 결심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6자회담 재개가 계속 늦춰질 경우, 그 1차적 책임을 언제든지 미국에 넘기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였던 것이다.
물론 회담 참가국들로 하여금 북한을 6자회담장으로 복귀시키도록 미국이 보다 많은 양보를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미국에 넣도록 만들기 위한 정치적 계산도 담고 있었다. 북한은 핵문제 타결에 관한 한 부시 공화당 행정부보다는 새로운 차기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기다린다는 대미핵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와의 핵협상은 시간을 끌면서 더 큰 대미 핵 지렛대를 확충하는 것이 기본 핵 정책인 것이다.
그런 북한을 6자회담장으로 황망스럽게 복귀토록 만들었던 즉각적인 요인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7.7 런던테러였고, 이런 테러 발생 상황이 최근 감돌기 시작한 워싱턴의 대북 강경 분위기와 결합돼 미국의 대북 핵정책이 '제2의 테러와의 전면전쟁' 선언으로 융합돼 전개될 경우 북한은 워싱턴으로부터 불어 오는 토네이도에 함몰될 수 있다는 긴박한 위기의식을 가졌던 것이다.
실제 최근 들어 워싱턴의 분위기는 매우 미묘한 상황을 맞고 있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지연 전략으로 워싱턴의 부시 대통령과 네오콘들은 점차 인내심을 잃어가기 시작했으며, '악의 축'이자 '폭정의 전초기지'로 명명했던 '테러 지원국가' 북한과 핵문제를 놓고 대화한다는 것은 더 이상 무용하다는 입장이 강력한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네오콘들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큰 신임을 얻고 있는 라이스 국무장관의 외교 능력에 대해서도 불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미동맹에 대한 비판의 포문도 서슴지 않고 열었다.
워싱턴 매파들의 씽크탱크이자 네오콘의 본산인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는 <어메리컨 엔터프라이즈> 7-8월호를 통해 한미동맹에 임하는 한국정부의 태도를 강력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한국과의 외교적 관계를 고려해 부시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하지 못한 모든 불만들을 작심하고 대신했다. 한국에 대해 '달아난 동맹국', '우호적 이혼시점', 심지어 '좌파정부'로까지 무차별적으로 규정했다.
일방주의와 선제공격에 의한 미국의 북핵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 한국 정부가 동맹의 역할이 아닌 방해자 역할로 짐이 되고 있다는 불만도 드러냈다. 심지어 이 연구소의 니컬라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북한 핵문제에 대해 제1단계 한미동맹 철회, 제2단계 주한미군 철수, 제3단계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과 봉쇄라는 단계적 해결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나섰다. 9.11 이후 미국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으로 간주된 북한 핵문제 해결에 냉전의 동맹국이던 한국이 더 이상 반테러전의 동맹국으로서 그 역할을 함께 할 수 없다면, 선제공격에 의한 북핵 해결을 통해 자국의 안보위협을 줄이기 위해서도 한국과의 냉전적 동맹관계를 우선적으로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단계로는 북한 미사일 공격의 사정거리에 놓인 3만7000명의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군사적으로 공격했을 때, 북한의 미사일 반격으로부터 인질이 돼 희생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도 했다. 현 상황에서 미군은 더 이상 북한의 위협을 억지하는 방어용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의 핵 제조를 저지하기 위한 미군의 군사적 공격을 가로막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더 많이 보유할 수 있도록 시간만 허용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미군을 철수해 대북 공격에 대한 부담을 없앤 뒤 마음 놓고 군사적 공격을 단행해 영변 핵시설을 해체하는 것만이 핵문제 해결의 첩경이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은 외롭지만 '혼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지금 한국이란 동맹국의 사정과 입장을 들어주다간 결국 북한에 더 많은 핵 보유를 허용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북한은 틀림없이 자국의 핵탄두를 중동의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에 거금을 주고 판매할 가능성이 높으며, 알카에다가 북한산 핵탄두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경우, 미국이 감내해야 할 재앙은 형용할 수 없을 단계에 이를 것이란 예측이 네오콘들의 중심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동단계에서 북한 핵 보유를 완전히 제거해야 하며, 또 그 방법으로 '선제공격론'이 다시금 강력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이 작금 워싱턴의 상황이다.
그런데 바로 이같이 긴박한 순간에 런던에서 대형 폭탄테러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50여 명이 사망했고 700여 명이 부상당한 엄청난 대형 테러 사건이다. 2001년 9.11테러 사건 이후 이번엔 미국의 최대동맹국인 영국이 테러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영국은 2차대전 이후 최악의 공격을 받은 것이며, 나치 독일의 전폭기가 런던을 공습했을 때의 상황과 비교되기까지 했다. 부시 대통령은 블레어 영국 수상보다도 더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이마엔 주름살이 깊게 잡혔다.
미국의 CNN뉴스는 다시 2001년 9.11 당시 미 무역센타를 향해 돌진해 들어가는 비행테러의 악몽 같은 장면을 연일 탑 뉴스로 내보냈다. 뉴욕과 워싱턴 하늘 위로 연기가 피어올르던 광경을 다시 전세계에 내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전역은 또다시 9.11 테러의 충격 속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테러의 공포감에 휩싸였다.
부시 대통령에겐 제2차 테러와의 전면전을 펼쳐야 할 정책결정 상황이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에겐 대화를 통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인내심이 말라가기 시작했고, 북한이 핵을 보유해 알카에다에게 수출된다면 미국이 받아야 할 재앙은 2001년 9.11 테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재앙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미국의 여론도 부시 행정부의 북핵정책 실패에 더 큰 불안감을 갖게 됐고, 부시 대통령은 미국내 여론의 흐름에 더욱 민감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 미 국무성의 테러지원국가 목록에 올라 있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점점 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계속 지연시킨다면, 북한 핵시설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군사적 공격은 어쩌면 '달아난 동맹국'으로 표현되는 한국의 입장이나, 반테러의 동맹국가로 합승한 중국의 입장을 들어줄 시간적 여유도 없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게 된 것이다. 바로 북한은 7.7 런던 폭탄 테러 직후 자신의 핵개발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짙은 먹구름을 형성해 엄습해 들어올 것을 본능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7.7 런던 테러사건이 발생하자 영국에 위로의 전문을 보내는가 하면, 지체 없이 '6자회담 복귀' 선언을 발표했던 것이다.
북한은 자신이 6자회담을 더 지연시킬 경우, 전세계의 반테러 감정에 편승해 부시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속전속결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려 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미 F-117 스텔스 전폭기 15대가 한반도에 배치되어 있고, 10년 이상 북한에서 발굴 작업을 해 왔던 미 유해 발굴단 역시 철수해버린 상황 또한 북한의 위기 의식을 증폭시켰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제2차 테러와의 전면전쟁을 선포하면서 그 타깃을 북한 핵으로 지정하기 전에 극적으로 6자회담에 복귀함으로써 또 다시 미국의 위협을 피해 나가는 데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2003년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축출한 뒤 미국 내 여론이 그 다음 타깃으로 급속히 북한을 지목하기 시작하자 신속히 협상테이블로 나왔던 순간과 비견된다.
어쨌든 이번에 북한을 6자회담장으로 복귀시킨 것은 크리스토퍼 힐이란 직업외교관의 집요한 의지도 일정 부분 기여했으나, 결정적인 요인은 결국 유럽의 알 카에다였다. 그러나 워싱턴 매파의 최고 수장인 딕 체니 부통령이 7.7 런던 폭탄테러 발생 이후 생성된 국제 반테러 분위기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활용해 나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진전이 없을 경우 미국내 매파들이 제2기 테러와의 전면전 대상으로 어떤 나라를 낙점할지, 그리고 북한에 어떤 태풍이 불어닥칠지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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