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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입시안, '뻔한 타협' 그리고 남는 문제들"

[기고] 전직 강남 '스타 강사'의 도전적인 문제 제기

서울대학교 입시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EBS와 강남구청에서 운영하는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과학 영역을 강의하고 있는 이범 씨(36)가 글을 보내왔다. 이씨는 2003년까지 수년간 국내 학원계 전체를 통틀어 최고 수준의 연수입을 기록하던 스타 강사로 최근엔 학원가에서 은퇴한 뒤 일체의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씨는 과도한 사교육 팽창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사교육에 대한 우려를 앞세워 대입 전형을 내신 중심으로 획일화하는 것 또한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씨는 이 기고를 통해 ▲왜 정부는 서울대와 타협할 수밖에 없는지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이 갖는 장점은 하나도 없는 것인지 ▲정부와 서울대 사이의 '타협'이 불가피하다면 그 이후에 대비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오랜 사교육 경험에서 우러난 지적을 하고 있다.

서울대 입시안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기고문을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왜 타협이 불가피한가**

서울대 입시안을 둘러싼 대립이 대학 자율권의 범위에 대한 논란으로 치달았다. 정부가 국립대는 물론이요 사립대에도 상당 수준의 재정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입 제도에 관해 일정 수준의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대 사이에서 벌어진 한판의 힘겨루기는 결국 어정쩡한 타협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교육부의 '원죄'로 말미암아 서울대를 완전히 제압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교육부는 본고사를 금지하면서도, 본고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몇 년째 '국영수 위주의 필답고사'라는 게으른 답변으로 일관해 왔다. 이제 와서 본고사라는 개념의 범위를 아무리 확대 규정한다 할지라도, 대학에서 이를 회피한 새로운 유형의 논술고사를 개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둘째로 교육부는 2008학년도 입시부터 수능 과목별 등급을 '최저 학력 기준'으로만 활용할 것을 권장해 왔다. 그런데 오히려 이 권장을 받아들인 것은 서울대이며, 많은 사립대는 상위 등급을 받을수록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서울대가 뒤떨어지는 수능의 변별력을 논술, 면접 등 다양한 전형요소를 통해 보완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때 이를 반박하기가 궁색해진다.

결국 현재의 역학 관계와 여론의 추이를 냉정히 따져볼 때, 정부와 서울대 가운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이기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교육부가 예고한 대로 8월까지 '본고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보다 확대되고 정교한 규정이 발표될 것이고, 이에 대응해 서울대는 그 규정을 위배하지 않는 유형의 논술고사를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 입시안의 긍정적 함의**

널리 퍼진 오해와 달리, 서울대 입시안은 교육적으로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신 강화를 통한 공교육 정상화'라는 2008학년도 입시안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행 내신 시험의 질이나 동원되는 평가 방법의 협소함을 고려해보면, 내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게다가 이미 학생들은 좁은 범위의 시험 범위를 달달 외우고 친구들을 직접적인 경쟁 상대로 삼아야 하는 '내신 지옥'에 항의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 정원의 일부를 대학별 고사(논술, 구술) 위주로 선발함으로써 내신 지옥에 탈출구를 마련해주는 것도 학생들을 위해 의미있는 일이다.

혹자는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이 학교 교육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사교육을 부채질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행 수능과 내신이 모두 객관식 시험 위주로서 '답은 맞추지만 글도 못쓰고 말도 못하는' 불구 학력자를 양산해 왔음을 고려해 보면, 논술이나 구술 형태의 새로운 전형 요소를 개발하려는 시도를 가로막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처사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차피 학교는 진작부터 시행되고 있는 현행 일반 논술시험 또한 감당하지 못해 왔다는 것이다. 더구나 '통합 교과형 논술' 수준이 되면 웬만한 학원에서도 제대로 대비시키기 어렵다. 발상을 전환해 EBS의 인터넷 강의 등을 통해 학원보다 수준 높은 교육 공공재 서비스를 제공하고, 여기에 더하여 학교에서의 독서 교육과 쓰기 교육을 꾸준히 강화해 나간다면 논술형 전형요소에 대한 대비를 공교육의 틀 내에서 소화하는 것이 나름대로 가능할 것이다.

***타협 이후가 더 문제다**

벌써 타협적인 귀결이 예상되는 이 싸움에서 양측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타협은 나름대로 한국 교육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중요한 긍정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챙겨야 할 것들은 이 긍정적 요소를 잘 발전시키고, '타협' 이후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위험 요소들에 대비하는 일이다.

첫째, 결과적으로 전형 요소가 내신, 학생부 비교과 영역, 수능, 대학별 고사(논술, 구술) 등으로 다양해졌는데, 여러 가지 요소를 비슷한 비율로 섞어서 반영하면 학생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사교육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수능 9등급제로 인해 수능 부담이 줄어든다고 주장해 왔지만, 많은 대학에서 상위 등급을 획득할수록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수능 부담도 여전히 작지 않다.

따라서 교육부는 내신, 비교과 영역, 수능, 대학별 고사 가운데 한두 가지만 잘 해도 합격을 기대할 수 있도록 대학들의 전형 방식을 정교하게 지도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내신 반영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것도 좋겠지만, 적어도 입학 정원 가운데 일부는 학생들이 내신 성적상의 불리함을 다른 전형 요소로 극복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

둘째, 논의가 서울대에 집중되는 와중에 고려대, 이화여대 등에서 '수리 논술'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실질적인 수학 본고사를 치르고 있는 것이 간과되고 있다. 아예 수학 과목의 특성을 고려해 수학에 한하여 본고사를 허용하거나, 아니면 이를 전면 금지하는 등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

셋째, 최근 다소 가라앉은 특목고 열풍이 대학별 고사의 강화로 인해 다시 불 붙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고교 평준화 정책의 향배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경기도에만도 2007년까지 특목고가 14개나 증설 예정으로 있는 등 평준화 정책이 실질적으로 붕괴할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외국어고의 경우 그 명목적 정체성과 실질적 기능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고, 현재 입학 정원이 과학고의 5배에 이르며 계속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가장 심각한 위험 요소다. 특목고 증설 계획을 보류하고 평준화 정책 전반에 대한 국민적 토론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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