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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산골 아이들 <22> 자신을 찾아가는 길, 세 번째 이야기

***식구가 우르르 아래채를 지으며**

몇 년을 미루던 아래채를 짓는다. 일꾼 손 빌리지 않아도 집이 뚝딱뚝딱 올라간다. 마술인가!

아래채는 내 숙원사업이다. 그러나 일을 벌리기 싫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올봄 탱이가 군불 방에서 살고 싶단다. 땔감을 하고 군불을 지필 자신이 섰단다. 그 말이 떨어지자 남편이 나섰다. '집짓기 공부 삼아 한번 지어보자'면서 탱이에게 '네 방을 네 힘으로 지어보겠냐' 한다.

탱이는 속으로 뭔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선선히 그러겠단다. 와아. 갑자기 일꾼이 여럿 나섰다.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설계를 하니 마루방과 구들방 두 칸으로 모두 다섯 평짜리 작은 집이다. 말이 난 김에 식구 모두 우르르 나가 아래채가 설 자리에 말뚝을 박아 표시를 했다. 남편이 벽이 들어갈 자리를 파고 거기 잔돌을 주어다 넣어 줄기초부터 해야 한다니 탱이가 냉큼 손수레를 끌고 잔돌을 주워오고 상상이가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대들어 일을 시작하니 시작이 반이라고 벌써 반은 끝낸 기분이다.

잔돌을 다 채우고 줄기초를 하기 위해 목수 실을 띄워 수평을 잡고 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벽돌을 쌓을 때 상상이는 네모난 삽을 잡고 시멘트를 반죽하고 대주는 일을 맡았다. 나와 남편 그리고 탱이 셋이 벽돌을 쌓으면 상상이가 시멘트를 한 삽씩 떠다 주었다. 연장이 많지 않아 나는 이 빠진 식칼을 흙손 삼아 벽돌을 쌓았으니 우리 아마추어 일꾼의 모습을 어림짐작할 수 있으리라.

줄기초를 끝내고 목재를 사러 갈 날이 왔다. 아래채는 귀틀집으로 짓기로 했다. 귀틀집은 나무를 우물정자로 쌓아올려 짓고 나무 사이사이를 흙으로 채우는 우리식의 통나무집이다. 우리는 그 나무를 중고 목재로 하기로 했다. 주먹밥을 쌓아가지고 온 식구가 중고 목재상으로 갔다. 한낮에는 한여름처럼 뜨겁다. 네 식구가 차에서 내려 모두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나서니 중고 목재상 아저씨가 웃는다. '재들도 일하냐?'면서.

보통 '오비끼'라고 하는 공사장에서 가장 흔히 쓰는 목재를 고를 차례다. 장정들은 혼자서 번쩍 들어 옮기겠지만 나는 탱이와 맞들어 옮겨야 한다. 그런데 한쪽에 길이 없고 겨우 상상이가 드나들 좁은 여유 공간만 있을 뿐이다. 결국 상상이는 누나하고 한번, 엄마하고 한번. 육십 개를 다 날랐다.

***내게 '일'이란 무엇인가?**

자식을 부려먹는 앵벌이인가?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고 미안한 줄 모르고 흐뭇해하며 이렇게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시킨다고 고분고분 일을 할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이 일을 할 때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하는 거리라. 아이들 이야기에 앞서 내게 일이란 무엇인지부터 돌아보자.

나는 매사에 열심이다. 또 진지하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이 '진지파'라고 나를 놀린다. 내 성질이 이러니 살이 안 붙는다. 일을 그저 형편껏, 여유롭게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나는 자라면서 일은 거의 안 했다. 차려주는 밥 먹고, 방도 생각나면 한번씩 치우고. 빨래는 세탁기 돌리면 끝. 그저 학교 열심히 다니고 공부 잘하면 되었다. 결혼해서도 두 식구 살림. 겨우 밥만 해 먹고 살았지. 탱이가 태어나서는 친정으로 이사를 가서 더부살이를 했다. 그러니 일이라면 머리 굴리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

나이가 들어 시골로 오니 눈에 보이는 게 일이다. 집안밖에 일. 농사일. 집 짓고 손님 치르는 일. 뒤늦게 배워가며 일을 치러내야 했다. 머리로 살아오다 몸으로 살려니 한동안은 '정신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새 일이 몸에 익어, 비바람 몰아쳐 일을 못하는 날은 온몸이 근질거린다. 서울 가서 두 밤을 자고나면 얼른 집에 가서 일을 해야 살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해가 뜨면 집밖으로 나간다. 닭과 오리 밥 챙겨주고 텃밭에 가서 아침거리도 해 오고, 간밤에 궁금했던 밭을 둘러본다. 맨손으로 설렁설렁 돌아다니면서 곡식한테 안부 인사 하고, 잔손질하면서 곡식이 자라는 걸 본다.

아침에 집 둘레와 밭을 돌아보고 오면 손에는 아침에 먹을거리가 푸짐하다. 오늘의 자연이 아침 밥상에 올라온다. 풋고추, 가지, 양배추, 밭에 김매며 따로 모은 비름나물……. 싱싱한 먹을거리로 아침밥상을 차리면 밥맛도 좋다. 그런데 늘 설렁설렁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이번처럼 열흘 가까이 비가 이어져 오고 나면, 마음이 바빠진다. 감자를 캐고 장마 전에 대충 털어놓았던 밀과 보리도 꺼내 알곡을 추슬러야 한다. 한낮에는 고추와 토마토에 식초 물을 뿌려줘 병을 예방하고....... 할일이 쌓여있다. 이럴 때 일은 해 치워야 하는 대상이 된다.

일이 해 치워야 할 대상이 되면 동시에 내 몸은 종이 된다. 몸을 종처럼 부린다. 밭에 가서는 한 이랑을 다 하자 하고 마음먹는다. 그러면 그게 무슨 규칙처럼 되어 끝장을 본다. 그리고 그만 끝나는 게 아니다. 하는 김에 한 이랑 더 할까? 결국 힘에 부쳐 몸이 나가떨어져야 욕심도 ‘으흠 으흠’ 하면서 그만 하라고 뒤로 물러선다.

***아이들은 일을 좋아하는가?**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아이들은 일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이 일을 좋아한다고? 그렇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10년 전에 탱이가 지금 상상이보다 어릴 때. 그때만 해도 아이들이 일을 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탱이가 조금 자라면서 농사일 집안일이 벅찰 때마다 나는 탱이만 보이면 거들어 달라 했다. 그러자 남편이, "아이들에게 시골서 자란 때가 좋은 기억이 되길 바라. 애들이 일을 해 봐야 얼마나 하겠어. 그러니 아이들이 하겠다고 하지 않으면 일을 시키지 맙시다", 그랬다. 시골서 자란 사람을 보면 시골이라면 몸서리를 치는 이가 있다. 농사일에 치인 거다. 그래 조심한다고 했지만 과연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틈만 보이면 일 하자했을 거다.

그 때는 탱이가 학교에 다닐 때다. 지금 돌아보면 탱이는 서울서는 공주님처럼 컸다. 외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버지 네 사람이 탱이 시중을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시골로 왔으니 일에 아무 관심이 없는 게 당연하다. 집에 돌아와도 학교 생각, 친구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그래도 눈으로 보는 게 농사일이니 엄마 아버지 따라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체험학습 한마디로 맛보기였다. 모내기를 해 본다고 논에 들어가 잠깐 심고는 칭찬을 들으면 그만 끝. 그래서 한동안 대통령시찰이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 있고나서 처음에는 별다르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아이들이 일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랐다. 틈만 나면 아이들 들으라고 일이 좋다고 저절로 헬스가 된다고 노래를 했다.

탱이는 학교를 그만 두자 자기 밭을 가꾸겠다고 했다. 야, 기특해라. 그렇지만 밭만 차지하고 방콕하고 지냈다. 가끔 밭에 가보면 풀이 무성하다. 내가 풀을 쳐야겠다고 하면 탱이는 자기는 곡식이 보이지 풀이 안 보인다나. 결국 내가 못 참고 풀을 쳐버렸다. 농사를 한다고는 했지만 소출은 없었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그렇게 두 해 지나고 셋째 해 탱이는 삿갓배미 같은 작은 밭을 찾았다. 그렇다. 자기 힘에 맡는 밭을 찾는 건 좋은 조짐이다. 삿갓배미는 아니지만 작은 텃밭을 내주었다. 탱이는 우리 식구가 먹을 쌈거리를 댔다. 그러면서 먹는데 관심을 가지기 시작을 했다. 지금 돌아보면 탱이가 그때를 고비로 여기 살기 시작한 거다.

농사에 재미를 붙였는지 넷째 해는 좀더 넓은 밭을 찾았다. 기꺼이 밭을 내주었다. 그 밭은 집 뒤에 있어 가깝지만 산밭이라 거름을 져서 날라야 했다. 탱이는 나름대로 마음을 먹었는지 등에 닭똥거름을 져서 날랐다. 그런 탱이는 꼭 나였다. 거기에 홍화를 심어 가꾸어 우리 식구 일년 먹을 홍화씨를 거두었다. 올해는 그 밭에 탱이가 녹두를 심었다. 녹두를 먹고는 싶은데 제대로 못한다는 걸 알고 탱이가 해 보겠단다. 해결사가 따로 있나. 내게는 탱이가 해결사다.

탱이는 일을 하면 잡생각이 없어져서 좋단다. 몰입의 맛을 즐긴다. 농사일은 어떠냐고 물으니 농사일은 무언가를 기르는 일이란다. 날마다 갈 곳이 있고 밭에 가면 자기를 기다려 주는 곡식이 있다. 이제는 거름 내는 일부터 거두어 갈무리하는 데까지 자기 힘으로 해낸다. 그런 탱이를 보면 부럽다. 그 나이에 무언가를 길러 식구들을 먹여본 경험을 가지다니.

상상이는 탱이와 다르다. 아기 때부터 일하는 걸 보고 자랐다. 자기키보다 큰 삽을 들고 자기도 해 보겠다고 낑낑대던 기억이 난다. 상상이가 어릴 때 “나도 해 볼래.”하면 솔직히 귀찮았다. 한창 바쁠 때 그러면 더욱. 하지만 귀엽고 신기해 웬만하면 아이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다.

상상이가 조금 자라 힘이 넘쳐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던 9살. 상상이가 애라고 생각하면 일을 곧잘 한다. 그러나 일을 하겠지 하고 기대하면 영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상상이 대신 상상이가 하는 일을 일기로 적어보았다. 입춘에서부터 시작해 대한까지 일년. 일기를 쓰며 아이 눈으로 보면 아이는 많은 일을 하면서 자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상상이는 자발성이 없으면 꿈쩍도 안 한다. 그러다 해보겠다고 마음먹으면 못 말린다. 내 욕심으로 보면 방도 자기 밥그릇도 제대로 안 치우는 것 같지만 상상이 눈높이로 보면 자기 몫은 다 한다. 보통 때는 밥 할 때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손님이 와서 나 혼자 순두부를 한다고 쩔쩔 맬 때 ‘어디선가’ 상상이가 나타나 콩물을 짜준다.

***한 듯 만 듯 일하기**

상상이가 일을 배우는 과정을 돌이켜 보면 밖으로 나와 혼자 논다. 그러다 뭔가 새로운 게 없을까 한바퀴 둘러보다 어른이 일하고 있으면 다가간다. 섣부르게 나서지 않고 처음에는 지켜본다. 그 일을 지켜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충분히 알 때까지 앞뒤를 살핀다. 그리고 일할 만하다고 느낄 때 해 보겠다고 나선다. 한번 일을 손에 잡으면 한 몫을 한다.

지난가을 상상이가 낫으로 벼를 베었다. 지지난해는 메뚜기를 잡던 상상이였는데 자기 아버지 낫을 잡고 벼를 베었다. 남편 낫은 나도 다루기 겁날 만큼 날이 선다. 나는 낫질을 하다 낫을 잡지 않는 오른손(나는 왼손잡이다)을 자주 다쳤다. 그러니 오른손에 장갑을 꼭 끼고 낫질을 한다. 상상이가 맨손으로 날카로운 낫을 잡았으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하지만 벼 베기가 끝났을 때까지 상상이 손은 말짱했다.

일년 양식인 벼 타작. 그 일에 한 몫을 하고 나서 상상이는 많이 자랐다. 어린애 취급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엊그제 뙤약볕에 감자를 캐는데 옆에서 끙끙 소리가 난다. 그래서 힘들면 계곡에 가서 놀라 했다. 전 같으면 계곡으로 갔을 텐데 땀을 흘리며 끝까지 감자를 캤다.

탱이는 어느덧 자기 집을 손수 지을 만큼 일을 해낸다. 남편이 마루방을 지으면 탱이 그걸 따라 자기 방을 지어나가 지붕을 얹고 흙벽을 치기에 이르렀다. 열여덟 여자애. 그냥 보면 무슨 일을 할까 싶지만 자기 힘껏 집을 짓는다. 사이사이 공부도 하고, 자기 할일 다 해가면서. 그렇다고 나처럼 저녁이면 아고고고 하면서 일한 티를 내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한 듯 만 듯한다.

탱이는 맨발로 공사장을 돌아다닌다. 여러 가지 공구와 못, 나무, 자재가 쌓여있는 곳을. 발이 찔리면 어쩌려고? 온통 나무인데 가시는 안 박히나? 나는 긴 바지에 장화를 신고 다니는 곳에 탱이는 맨발로 돌아다니며 일을 한다.

이렇게 일을 하며 자라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일을 하는 자세를 배운다. 일을 잘 하려 하지 말고 즐겁게 하자. 지금까지 일 욕심을 부려 힘에 넘치게 일을 벌이고 그 뒷감당을 하느라 힘겨워하곤 했는데 이제는 한 듯 만 듯 일을 하는 걸 배우고 싶다.

***다시 '일'이란**

며칠 전 장마 때다. 이렇게 '일'이란 무언가를 한창 생각할 때. 아침에 일어나니 우르릉 쾅쾅 천둥이 치며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일찍 일어날 일도 없고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안방 창 위 처마에 딱새가 날아 세찬 비를 뚫고 나간다. 새끼 먹이를 구하러 나가나? 저 딱새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삶 그 자체겠다. 얼핏 그런 생각은 드는데 명확하지는 않다. 비가 멈칫한 시간에 밭에 가서 한바퀴 둘러본다. 콩밭에 김을 매면서 위순도 질러주는데 다시 딱새 생각이 난다. 딱새에게 일이란 살아있음 그 자체라. 그렇다면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고 일을 못하는 순간 죽을 수밖에 없으리라. 거기 견주면 사람에게는 병원이 있다. 그러니 병원 믿고 몸에 무리를 한다. 자기 몸을 스스로 돌보지 못하고 몸을 대상화해 부린다.

연이어 탱이가 얼마 전에 한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탱이에게 이 담에 무얼 하고 살 거냐고 많이 물었나 보다. 그러면 탱이는 적당히 얼버무리곤 했단다. 사실 뭐라 대꾸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겠지. 앞날을 어찌 알겠는가. 한데 탱이는 어째서 그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었던 건지 알겠단다. 탱이 말이,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으니까 이담에 무슨 일을 할까 그걸 생각하게 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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