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들어서 '의료 양극화'가 '소득 양극화'보다 더 큰 폭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 서비스 산업화 계획이 본격화되면 이 의료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진석 교수, "소득 양극화보다 의료 양극화가 더 큰 폭으로 심화"**
참여사회연구소는 4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참여정부의 의료 정책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서 이진석 충북대 교수(의료관리)는 '참여정부 의료정책 평가와 시민사회의 대응전략'이라는 발제를 통해 참여정부의 의료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 이 교수는 "소득에 따른 소비 지출의 격차보다 보건의료 서비스 지출의 격차가 더욱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다"면서 "의료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소득이 줄면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우선적으로 줄이기 때문에 소득 양극화보다 의료 양극화가 더 큰 폭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전하는 의료 양극화의 실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우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보건의료 서비스 지출 격차가 1997년 1.87배에서 2005년 3.93배로 증가했다. 고소득층의 지출은 1997년에 비해 2배 수준으로 증가했지만 저소득층은 9년째 제자리 수준인 것이다. 의료 서비스 이용량도 격차가 크다. 고소득층은 1997년 대비 50% 증가한 반면, 저소득층은 오히려 30% 감소했다.
경제적 이유로 의료 서비스 이용을 포기한 저소득층도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 평균 경상소득 50만원 이하 계층의 30.1%가 의료 이용을 포기한 경험이 있으며, 의료급여 2종 수급권자의 31.8%가 의료 이용을 포기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 지역 가입자의 5분의 1이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것도 큰 문제다. 2005년 4월 현재 건강보험 지역 가입자의 23%가 3개월 이상 보험료를 체납해 건강보험 혜택 중지 대상자로 전락했으며 보험료 체납 세대의 규모는 계속 증가 추세다. 이들 체납 가입자의 34.1%는 보험료 체납 후 병원과 약국을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정책이 오히려 의료 양극화 심화시켜"**
이진석 교수는 "이렇게 의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데도 정부의 의료 정책은 오히려 이를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대표적인 것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의료 서비스 산업화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 계획이 현실화되면 의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고소득층을 위한 고급 의료 서비스가 집중적으로 발전하면서 의료 서비스 이용의 상대적 격차가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최근 영리병원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의료 서비스 산업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민간의료보험의 팽창을 정부가 부추기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2005년 현재 민간의료험의 보험료 수입은 10조6천억원 수준으로 2004년 국민건강보험 보험료 수입의 55% 수준이다. 민간의료보험 지출만 놓고 보면 2004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1%로 독일(1.0%), 영국(0.2%), 프랑스(0.4%) 등 주요 선진국보다도 높은 수준. 이 교수는 "민간의료보험이 확대될수록 양질의 민간의료보험을 구매할 수 있는 고소득층과 그렇지 못한 저소득층 간의 의료 이용 격차도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담뱃값 인상해서 공공보건의료 양적 확충에만 신경 써"**
정부가 의료 서비스 산업화 계획을 보완하기 위해 내놓은 공공보건의료 확충 계획도 도마에 올랐다.
이진석 교수는 "2009년까지 공공보건의료 확충을 위해 4조3천억원을 투입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다"며 "고작 담뱃값을 인상해서 재원을 마련하는 게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는데 공공보건의료 확충이 '담뱃값 인상'에 좌우되는 게 말이 되냐"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또 "공공보건의료 확충의 철학이 없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며 "사립대학 종합병원과 전혀 차별성이 없는 국립대학 종합병원과 같이 민간과 다르지 않는 공공보건의료 확충은 '의료의 과잉'이 고질적인 문제인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서비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도 이런 지적에 공감을 표시했다. 고 의원은 "현재 8%에 불과한 공공 의료기관도 민간 의료기관과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마저도 환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라며 "무작정 급성병상을 늘리고 보건의료기관을 짓는 식의 양적 확충이 아니라 질적인 변화부터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