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전방 GP 총기참사사건 최종 수사결과를 23일 발표했으나 기존 발표 내용과 거의 차이가 없고, 유족 및 언론이 제기한 의혹은 거의 풀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국회 진상조사반의 조사결과가 주목된다.
***GP 총기난사 최종수사결과 기존과 별 차이 없어**
홍종설 육군 헌병감(준장)은 이날 오후 경기 성남 국군 수도병원에서 유족들과 생존 소대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부는 육군 합동조사단의 중간수사결과발표에도 불구하고 의혹만 증폭되자 보강수사를 벌이기로 하고 지난 21일 수사본부를 설치했었다.
수사본부는 우선 “김동민 일병이 내무실에 수류탄 1발을 투척하고 K-1 소총으로 실탄 44발을 연발 사격해 GP장 중위 등 8명을 사망케 하고 4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사건”이라고 이번 사건을 정리했다.
수사본부는 김 일병의 동선과 관련해서는 내무반에 수류탄을 먼저 던지고 체력단련실과 취사장에서 GP장인 김 모 중위와 조 모 상병을 사살한 뒤 상황실에서 나오는 신임 GP장 이 모 중위에게도 총을 발사했으며 내무반에 난사한 것은 그 이후라고 기존 발표 내용을 유지했다.
유족들은 그동안 생존자들의 일부 증언 등을 토대로 김 일병이 복도에서 소대장 등에게 먼저 총격을 가한 뒤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난사했다고 주장했으나, 수사본부측은 수사본부는 그러나 "생존 소대원 25명중 22명이 '수류탄의 폭발음을 먼저 들었다'고 진술하고 있고, 나머지 3명도 '불분명하다'고 말해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한 것이 먼저"라며 유족측 주장을 부인했다.
그러나 생존자인 유모 병장은 "수류탄 폭발음이 들린 후 '비상이다'는 소리를 지른 뒤, 방탄 헬멧을 착용하는 순간 총기가 난사됐으며, 그 간격은 수초였다"고 말했고, 부소초장도 "처음 폭발음이 들려 모포를 갠 뒤 옷을 입고 나가려는 순간 총격 소리가 들리고 상황이 종료됐는데 순식간이었다"고 말해 여전히 의문점이 남았다.
수사당국측은 그러나 "상황이 급박해 시간 감각에 착각이 있을 수 있다"고 일축했다.
***“상병 비율이 높아 많이 희생돼. 사고 4일전 술 없이 송별회”**
수사본부측은 또 사상자 대부분이 상병인 이유에 대해서는 GP에 근무하는 소대원 26명중 상병이 14명으로 전체계급의 53%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아울러 “수류탄 폭발지점이 주로 상병들이 잠자던 침상 쪽이며 내무실 입구 쪽에서 연발사격할 당시 사선방향이 상병들의 침상방향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수사본부는 사고당일 TV 시청 및 음주 여부와 관련해서는 사고 당일 23시부터 새벽 1시까지 근무자와 취침자를 제외한 19명이 GP 체력단련실에서 세계청소년 축구경기를 시청했으며 전후반 시청 인원은 12명, 전반만 시청 1명, 후반만 시청 6명이라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아울러 “사고 GP에서는 사고 당일 4일전인 15일 저녁시간에 사고자를 포함해 GP장 김 중위의 송별회식을 과자류와 음료수로 했다면서 "소주 등의 주류에 의한 음주는 없었다”고 음주 의혹을 강력 부인했다.
수사본부는 생존 소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질의 응답 시간에 12시까지 경계를 섰던 근무자 4명이 근무를 마친 뒤 1시경사망한 박의원 상병 등이 야식으로 감자를 먹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전 근무지인 000GP에서 김 일병이 폭행을 당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2005년 1월 21일부터 3월 31일 000GP 경계근무시 정 모 상병과 김 모 상병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멱살을 잡고 흔들며 ‘X새끼’라는 욕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으나 상해는 없었다”고 신체적 폭행은 부인했다.
***박 상병 수류탄 일부러 덮치지는 않은 듯 **
수사본부는 박의원 상병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사고발생직후 현장 사망한 것을 목격한 동료병사 진술과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군의관의 판단을 종합시 수류탄 폭발로 인한 복부파열창에 의해 현장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고자가 투척한 수류탄이 출입문 쪽을 향해 옆으로 누워자던 박 상병의 복부 부위에서 떨어진 후 폭발했다”고 밝혔다.
수류탄 폭발로 인한 사상자가 적은 이유에 대해서도 “수류탄 파편에 의한 사망자는 박 상병 등 2명”이라며 “비산된 파편을 이들이 대부분 흡수해 타 병사들의 피해가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상병이 수류탄을 몸으로 덮쳤다는 유가족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박 상병이 ‘움직였다’는 진술이 없고 천정에 비산된 살점을 고려해 볼때 수류탄을 덮쳤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그러나 "박 상병이 통로쪽이 아닌 관물대를 향해 머리를 두고 있었고, 12시 근무를 마치고 들어와 축구를 시청한 뒤 씻고 감자를 먹었으면 취침 시간은 새벽 2시 이후이기 때문에 잠 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박 상병이 수류탄을 덮쳤을 가능성을 여전히 주장했다.
출입구에서 이태련 및 차유철 상병 2명이 숨진 이유와 총상을 많이 입은 까닭에 대해서는 “이들은 적의 침투로 오인하고 대응할 생각으로 출입문 쪽으로 이동하였거나 내무실 형광등을 켜기 위해 출입문 앞에 서 있다가 사고자의 실탄 연발사격을 받아 많은 총상을 입고 그 곳에서 숨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출입구 가장 앞에서 등쪽에서 5발을 맞아 숨진 차 상병에 대해 김동민 일병은 "차 상병이 자기를 아껴주고 보살펴 줬는데 죽었다니 가슴이 아프다. 유족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차 상병의 유족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져 유족들이 오열하기도 했다.
***수사본부, “김 일병 일주일 전부터 범행 계획” 성격 탓 강조**
수사본부는 아울러 김 일병의 행동과 관련해서는 “사전 계획된 범행으로 판단된다”면서 “범행 일주일전인 13일부터 ‘GP 소대원들을 모두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일주일 전부터 범행을 준비해왔음을 강조했다. 김 일병은 이어 사고 전날인 18일 농구시합과 취사장 청소 당시 고참으로부터 질책을 듣고 범행을 결정했다고 수사본부는 덧붙였다.
수사본부에 따르면 김 일병의 최초 계획은 GP장을 포함해 모든 GP원을 살해한 뒤 수류탄 및 유류 등을 이용, GP 시설물을 폭파후 민통선 이남으로 도주해 은둔생활을 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평소 자신에게 잘해 준 선임병까지 살해하려 한 것은 “증거 인멸 및 도주하기 위해서였다”고 진술했다고 수사본부는 덧붙였다.
수사본부는 이 김 일병의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사고자 개인적인 측면과 부대적인 측면 두 가지로 확인한 결과 동료들의 과도한 언어를 보통 사람의 경우 친근감 등의 표시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으나, 사고자의 경우는 내성적 성격으로 상당히 심각하고 심정적 충격을 받았다”고 김 일병의 심리 구조 탓으로 돌렸다.
수사본부는 그러나 “김 일병은 수색중대 근무 선발규정상 특이한 문제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고중대에서는 신교대 입소 2주차 토요일에 중대장 및 행정보급관이 신교대를 방문, 신상명세서, 입소자원 분석결과, 양친 생존여부, 건강상태, 부모와의 동거 여부, 성격, 취미 등 문제점이 없는 자 위주로 선발하고 있으며 전입 후 대기기간에 중대장이 면담을 통해 환자 및 본인의 GP 투입 희망여부를 확인 후 불희망자 등을 투입인원에서 제외시켰다는 것이다.
수사본부는 또한 김 일병에 대한 정식 정신감정 의뢰 전에 정신과 전문 군의관들이 간이 진단을 한 결과 "정신적으로 특이한 상황이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계근무 규정위반행위 있으나 김 일병 괴롭히는 부당 편성 없어”**
사고 당일 경계근무관계와 관련해서도 수사본부는 규정위반행위가 있지만 “김 일병을 힘들게 하기 위해 부당하게 편성한 사례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소대원들에 대한 질의 응답 과정에서 사고 발생 당시 초소의 경계병들이 인터폰으로 상황실에 연락을 취하려 했으나 정전으로 인터폰이 불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통신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위반행위로 지적된 부분은 ▲사고당일에 소초장 또는 부소초장에 의한 근무자 신고 및 군장검사 등이 실시되지 않은 점 ▲소초장 및 부소초장이 해야 하나 상황병에 의해 간이 탄약고 열쇠 관리 및 탄약 분배가 실시된 점 ▲후방초소 근무자 중 신임자가 내무실에 내려가 깨운 점 등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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